여백서원에 가 보셨나요?
‘2주 차 정체성을 되찾는다’에 “창조적인 존재로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후원이다.”란 문장이 있다. 전영애선생님이 떠오른다. 괴테를 연구하시는 분으로 지금은 여백서원을 만들어 후학을 위할 뿐 아니라 세계 석학들까지 찾아오게 만들고 계신다.
전영애선생님은 서울대 독문과에서 공부하고 졸업할 땐 서울대 전체수석을 하셨지만 학교에서 원하는 사람은 남자사람이었다. 학교서 조교를 하고 싶었지만 물러나 올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 어느 날 끌린 듯이 학교로 갔다. 독일에서 학술 교류처 장학생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시고 정말 열중하여 시험에 붙었다. 당연 학교에선 남자 조교가 되리라 기대했지만 선생님이 가시게 되었다. 결혼하시고 아이가 계속 유산되었다. 그런데 시험에 붙고 나니 아이가 덜컥 들어섰다. 그 바람에 한 학기를 미루고, 낳은 지 두 달 되는 아이를 맡기고 독일로 가서 공부를 하셨단다. 그러니 하루를 어떻게 보내셨겠는가? 그렇게 후원이 아니라 비난을 받아가면서 해내신 결과 대학으로 돌아오셔서 교수님이 되셨다.
처음엔 대학에서 누구의 후원도 받지 못했지만 독일서 공부하면서 또 괴테를 연구하면서 독일사람들에게 더 많은 인정과 후원을 받으셨다. 가장 권위 있는 괴테금메달도 수상하셨다. 여백의 호를 갖고 계신 아버지로부터는 정신적 후원이 컸다. 그저 한 사람이라도 나를 후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서 힘을 얻어 가 볼 일이다.
책에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라는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영애 선생님께서 처음 독일유학 가셔서 공부하시면서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하셨겠나? 오로지 공부가 하고 싶었고 그저 뜻을 세우고 충실히 당신의 가슴이 원하는 일을 계속해 오셨다.
“인간은 의식하든 안 하든 마음에 솟구치는 것이 있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인 존재다.”라고 했다. 지금은 대단한 인증도 받으시고 ‘책의 집’인 ‘여백서원’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도 “완벽함을 원하기보다 하나하나 인연이 되어지는대로 만들어질 것이다.”라고 하신다. 선생님의 바르고 우직함이 괴테의 마을을 이루어가신다. 그저 꾸준히 ‘7인분의 노비’ 란 표현을 쓰시면서 즐겁게 충실하게 하루를 만들어가시는 분이다. 나도 나아가고 있는가?
“당신의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스스로 자신을 격려할 때만 또 다른 응원을 얻을 수 있다.”라고 줄리아도 말했듯 전영애선생님도
“스스로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습니다.”라는 표현을 하며 자신을 다독이고 지금까지 오셨다. 그 와 중에 너무나 바르게 한 길을 걸어오시며 괴테연구에 집중하시면서 간간히 속에서 나오는 울림을 시로 쓰셨다. 그러면서도 전혀 시집을 발간할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독일의 위대한 시인 라이너 쿤체가 바로 시집을 출간하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또 다른 분은 괴테의 파우스트의 귀한 [세기의 단행본]과 괴테가 직접 쓴 [서동시집의 초판본]을 자식에게 주지 않으시고 선생님께 주셨다. 그것이 더 뜻있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선생님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응원과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하셨다.
그것의 시작은 자신을 옳은 모습으로 잘 가꾸어 오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는 괴테의 글귀가 나에게도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전교수님은 당신이 받은 그 후원과 사랑의 힘을 후학들을 위해 아낌없이 쏟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