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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Apr 23. 2017

실수투성이

마음수련 명상일기 - 산다는 것


삶도 연습이 되나요?


두꺼운 연습장을 주문했는데 정말 뚜꺼운 연습장이 왔다.


중학교 때까지는 "수학"을 가장 좋아했었는데, 그 이유가 '답이 딱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인생"이라는 과목도 수학처럼 공식을 적용해서 답이 바로 구해지길 바랐던 것 같다.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인생은 단답형이 아닌 서술형이다. 게다가 주어진 시간 동안 뭐라도 쓸 수밖에 없고, 이미 써내려간 답은 고칠 수 없다. 그런데 골 때리는 서술형 문제에도 '모범답안'은 존재한다.


"모범답안"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돈은 좀 없어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일찍 '직장'을 얻어서 집에 생활비를 보태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효녀' 행세도 했다. 그리고 '연애'도 이어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적은 내 안에 있었고, 눈물로 지새는 밤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삶이 잘 사는 삶이라면, 그것이 행복이라면 나는 왜 여전히 불안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만난 마음수련 명상은 내가 이유도 모른 채 흘려야 했던 눈물의 시간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너무나 "잘" 살아왔기 때문에 감당해야 했던 마음이었다. 삶을 돌아보니 "잘한다"라든가 "착하다"라는 칭찬을 받은 '사진'들이 많았는데, 그 '좋은 기억'들 때문에 그렇지 못한 나를 인정해주지 못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잘해야 하고, 착해야 하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무거웠다.


역설적이지만, 그 부담을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서로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희생을 강요한 적이 없었으며, 다른 사람이 의견은 결코 '강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내 마음의 표상이었다. 막상 '다른 선택'을 하고 보니, 결심을 하고 보니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 뿐이다.


나를 가장 채찍질 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후회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 가장 미안했다. 아픔이 드러난 덕분에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에게 시간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 자신을 위할 줄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척'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제는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삶을 허락하려고 한다.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일이 모두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나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익숙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실수도 잦다. 주위의 부정적인 평가가 두려워서 눈치를 보며 안전한 선택을 해오던 나였는데, 지금은 실수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마음이 참 편안하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가처럼 새로운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기분이 든다. 언제 어른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한 아이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실수해도 괜찮아요.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처음이니까.


 by 선명한 새벽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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