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책임진다는 말
프리랜서 = 사업가 = 겁상실
"수익이 기대의 반 토막이다."
두 번째 스타일링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개인이 아니라 기관이라 첫 번째보다 훨씬 까다롭고, 어렵고, 정신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익이 좋으면 괜찮겠건만, 아직 행사가 진행되기도 전인데 수익 기대감이 0%다. 주원인은 내 대충스러운 예상과 계획이다. 덕분에 나와 함께하는 팀원들은 개고생 하고도 빈 손으로 돌아갈 판이다.
회사 다닐 때는, 가장 두려운 질문이 "왜요?"였다. 매 선택마다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충분한 이유와 근거를 준비해야 했다. 그게 정말 스트레스였다. 별생각 없이 한 선택들을 앞에 두고 예상치 못하게 질문을 받을 때는 더욱. '아, 아니.. 왜긴... 그냥 저게 제일 나아 보이잖아'라고 속으로만 되뇌었다.
지금은 "뭐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고 싶어요?", "어떤 걸 하고 싶어요?"가 제일 무섭다. 선택에 대한 이유가 아니라, 선택 자체가 무섭다. 어떨 때는 누군가 나 대신 선택만 대리해 주었으면 할 정도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건 더 무섭다. 그냥 시키는 일을 하는 게 마음 편한 거였다니. 선택이란 게 이렇게 무거운 일이었다니.
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효과적인지 혹은 효율적인지 아는 게 1도 없다. 조금이라도 알면 달랐을 텐데... 내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린 결정과 선택 때문에, 팀원들의 반나절이 그리고 수익 반토막이 허무하게 날아갔다. 이번 프로젝트 얘기다. 나 혼자 고생하는 거라면, 내가 내 수익을 깎아 먹는 거라면 툭툭 털고 교육비로 치겠는데 이렇게 모두가 힘들고 모두의 시간과 에너지가 날아가니 마음에 100kg 추가 달린 기분이다.
클레이 케이크가 비싸서 직접 만들겠다고 호기롭게 재료를 샀는데 아마추어 티가 절절 나는 케이크가 탄생했다. 결국 포기하고 완제품을 구매했다. 겁도 없이 천으로 무대를 꾸미겠다고 제안서를 냈다가 몇십만 원이 예산으로 잡혔다. 천을 직접 재봉해야지라는 계획을 세웠다가 동대문 방문 후 이건 범인의 영역이 아니구나를 깨닫고 전문가에게 맡겼다. 덕분에 예상치 못한 지출이 추가 발생했다. 이게 다 얼마인지....
스타일리스트 하겠다고 손을 들었건만, 그다지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손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보는 눈이 높으냐, 그것도 영 아니다. 시뮬레이션 역량도 뛰어나지는 않은 듯하다. 천, 목공, 꽃, 조명, 종이, 각종 공예 등 파티 스타일리스트가 알아야 하는 분야 중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초보 수준의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정도. 그나마도 잘하는 팀원이 있어 실상 보조 역할이고.
앞서 쓴 글을 읽어보면 나는 벌써 인생에 통달했다. 꼭 내 인생을 잘 책임지는 사람처럼 힘을 낼 거라는 둥, 포기하지 않겠다는 둥 허세를 부렸다. 지금 보니 오롯이 책임진다는 게 뭔지도 모른 사람의 객기였다. 오롯이 책임을 진다는 건, 내 선택의 무게를 안다는 거였다. 그걸 이제야 배우는 중이다. 내가 내린 결정이 어떤 영향과 파장을 일으키는지 충분히 예상하고 생각하고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적당한 합리화와 적당한 귀찮음을 섞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아무거나 선택하는 게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일을 두 번하지 않는 거였어. 회사에서도 이렇게 일을 했었어야 했네. 그랬다면 나는 좀 더 발전했으려나.
요새 나를 보면 이 따위 역량과 생각으로 어떻게 프리랜서를 하려고 했었나 싶다. 모든 선택을 오롯이 혼자 책임지는 프리랜서는 사업가나 다름없다. 즉슨, 프리랜서는 사업가처럼 일해야 살아남는다. 과거의 내가 정말 우습다. 나는 대체 뭘 얼마나 몰랐던 거야? 하루 강아지가 범 무서운지 모른다고 해도 나는 좀 너무했네...? 약간 원망까지 드는 기분이야.
괜찮은 정도로는 안 된다. 잘해야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번 일을 다시는 안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한 선택들에 마음 졸이고, 팀원들에게 미안하고, 잠 못 이루는 밤을 없애기 위해서. 해야 할 일, 해쳐나가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데 배워야 하는 분야와 배우고 싶은 일이 같이 증식한다.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려면 지금 공부해야 한다. 일어나자, 나야. 또, 이렇게 모두가 힘들면 안 되잖니. 사업가처럼 일하자,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