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존해주세요 (2) 알록달록하게요!

30대 편집자의 취향 확립 프로젝트

by 선선


엄마는 꽃 선물이 세상에서 제일 아깝다고 말했다.

금방 시들어버리는 그 꽃이, 그런데도 싸지 않은 그 꽃이, 그 값이면 다른 것을 사먹을 수 있는 그 꽃이 아깝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꽃 선물이 좋지 않았다. 아니, 좋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디에서든 꽃 선물을 받으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디에 쓰지도 못하는 꽃을 선물했네."





그런 엄마에게도 좋아하는 꽃 하나가 있었다. 꽃 종류를 하나도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그 꽃의 이름만큼은 알 수 밖에 없었다.


'프리지아'


나와 동생의 모든 졸업식에는 프리지아 한 다발이 함께했다. 꽃이 아깝다 말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우리의 졸업식에 프리지아 한 다발을 사와 안겨주었다. 그래서 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사진 속에서 노오란 빛을 뚜렷히 내던 그 프리지아 한 다발이, 그 꽃의 이름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엄마에게 왜 많고 많은 꽃들 중에 프리지아를 좋아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향기가 좋잖아. 나는 프리지아 향기가 좋아."





그때였던 것 같다.


꽃이 돈 아깝다는 엄마에게마저도 단 하나의 좋아하는 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그 순간, 나는 내가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았다.


향기가 좋은 꽃, 꽃봉오리가 큰 꽃, 꽃잎이 벌어진 꽃, 자기 색깔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꽃.


받았던 꽃들과 선물했던 꽃들, 그리고 스쳐지나가며 마주했던 인생의 모든 꽃들이 떠올랐다. 그 꽃들 중에서 내가 '예쁘다.'라고 생각한 꽃들의 특징을 필름지에 적어 겹쳐보듯 모았다.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또 또렷했다.

꽃은 별로야. 나는 꽃 안 좋아해.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사람이라기엔 머리 속에 피어나는 꽃들은 화사하고 예쁜 모습이었다. 쏙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꽃 사고 싶다. 거실 한 켠에 꽂아두면 너무 좋겠다.'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에 냉큼 동네 꽃집을 찾아가 꽃 한 다발을 샀다. 이번엔 선물하기 좋은 꽃,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고르는 꽃, 적당한 가격대에 맞춘 꽃다발이 아니었다.



"알록달록하게요! 그리고 크고 풍성하게요!"


내가 생각한 꽃다발의 모습을 설명하며 꽃집에서 꽃을 고르고 포장을 맡기는 내 모습이 쇼케이스에 비쳤다. 쇼케이스 속 알록달록한 꽃 위로 내 얼굴이 일렁이며 겹친다.


생경한 기분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들떴다.

뭐야, 나 꽃 좋아하잖아. 꽃 색깔 너무 예쁘다. 그래, 꽃다발은 알록달록해야지.





어쩌면 나는 내 스스로마저도 지레 짐작으로 재단하며 살아왔던 것인지 모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관심 가져보기도 전부터 잘라내왔을까?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지금의 내가 진짜 내 모습일까?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뭘까? 포장한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나는 나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짐했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나가자. 언젠가는 좋아하는 것들로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게.






들뜬 마음 속에 나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하나 추가하고 거기에 나의 세세한 취향까지 태그달면서,

그렇게 나는 어느새 꽃 선물이 반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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