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 Jul 06. 2024

기계가 이상해

6. 내 주름에 정면 돌파

눈을 뜨자마자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어제 한 인생 첫 피부 관리가 내 피부에 마법을 부려놓았을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거울 앞으로 다가갈수록 기대감에 부풀었다.  

내 모습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얼굴색이 조금 환해진 것 같았지만 팔자 주름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루 만에 기적을 바란 내가 잘못이지.‘

실망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 피부도 하루아침에 좋아질 리 없다.



"꾸준함이 답이다!"

앰플을 열고 끈적한 액체를 얼굴에 천천히 발랐다. 손가락으로 공들여 펴 바르는데 기분이 좋았다. 앱을 열고 기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첫 관리는 얼굴이 환해지는 모드를 선택했다. 늘 어둡고 칙칙해서 하얀 얼굴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었다. 물론 까만 피부의 매력을 다르지만 여자들은 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탐내는 법이니까.

다음으로 주름 관리 모드를 선택했다. 나는 거울 앞으로 내 얼굴을 더욱 가까지 가져갔다.


자글자글 연한 주름부터 진한 주름들이 더욱 존재감을 드러냈다. 작정을 하고 내 얼굴의 팔자 주름과 미간 주름을 그렇게 유심히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내 얼굴에 주름이 이런 선을 갖고 있었구나. 신기하게도 양쪽의 모양이 비대칭이네? 미간 주름은 어떻게 하면 더욱 진해지는데 보는 각도에게 따라 진하게도 연하게도 보이는구나. 눈가 주름은 별로 없다고 믿었었는데 자세히 보니 자잘한 주름으로 도배가 되어있구나.‘

주름 주변부터 정점까지 자극을 계속 주었다. 입술을 한껏 부풀리면 내 주름은 통통한 볼때기와 함께 마법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한참을 보는데 얼굴에 살이 많으면 더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지방이 많은 부위에서 떼어다 옮기기도 한다는데... 잠시 엉뚱한 상상에 빠져 웃음이 났다.  

 


마지막으로 은근히 자극을 주어서 근육에 탄력을 주는 기능으로 넘어갔다. 전혀 건드리지 않던 부위를 건드리고 자극을 주니 세포들이 ’못 살게 구는 주인‘한 테 시위라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원래 그냥 두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익숙한 법, 건드리면 더욱 자극을 받는 법이지 않은가. 내 얼굴 근육과 늘어져있던 세포들이 이제야 일을 시작하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움파룸파처럼. 내 피부 세상에도 그런 존재들이 있을까? 끊임없는 자극과 미용 기기가 준 진동 때문에 움파룸파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앱에 첫 번째 사진을 등록했다. 팔자주름이 선명하게 보이는 적나라한 사진이었다. 드라마틱한 일은 세상에 별로 없기에. 드라마틱한 미래를 꿈꾸며 앱을 닫았다.

"이게 현실이야. 뭐 어때! 이제부터 좋아질 일만 남았는데!"

사진과 함께 나는 글을 남겼다.

'팔자주름아, 오늘부터 너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피부의 변화보다 내 피부 속 잠자고 있던 움파룸파들을 깨웠다는 상상에 뭔가 새로 시작하는 것 같았다. 글을 올리고 나니 왠지 모를 뿌듯함도 남았다. 마치 나만의 비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처럼.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나의 주름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내 얼굴의 모든 선과 굴곡을 탐험했다. 자글자글한 잔주름부터 깊게 파인 팔자주름까지,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시간의 흔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괜히 더 나이 든 것처럼 느껴질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나는 과감하게 용기를 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는 용기.

그랬던 나를 칭찬한다. 나 자신을 피한다면 누가 나를 돌봐주고 안아줄 수 있을까. 내 안의 내가 얼마나 외로울까. 그러니 오늘부터 나는 나에게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소중한 사람을 다시 바라보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기계가 이상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