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 Jul 12. 2024

기계가 이상해

7 아빠 없는 결혼식. 내 옆의 당신

오랜만에 결혼식 사진을 꺼내 보았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붉어진 눈으로 애써 환하게 웃는 나, 그리고 내 옆에 듬직하게 서 있는 남편.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결혼식 날, 나는 고모부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 아빠는 뇌경색으로 병중이셨다. 이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셨고, 운동 감각 또한 사라진 상태였다. 목소리라도 들으면 좋으련만, 말하는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의사의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식장에 들어서는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모르는 사람은 아마 내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다고, 무슨 사연이 있냐고 걱정했을 것이다.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아 힘든 순간이었다.


결혼식 전, 엄마에게 "이 결혼 안 하면 안 돼? 난 아빠 옆에 있을래."라고 말했었다. 그때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결혼하고 잘 살아야 엄마도 숙제를 던 것 같을 거야." 갑자기 쓰러진 아빠를 홀로 감당하고 있는 가녀린 엄마의 어깨를 보면서 결심했다. 엄마 말대로 하기로. 그리고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고 소소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기로 했다.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지자 음악을 사랑하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부터 아무리 참으려 해도 울컥하는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고모부는 아빠와 오랜 친구이기도 했고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지만, 남편에게로 향하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남편은 건네받은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그 한마디에 나는 더 눈물을 쏟아냈다. 남편의 따뜻한 손길과 믿음직한 목소리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지만, 가슴이 시리고 뻥 뚫린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져만 갔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고, 맘껏 기분 좋게 웃고 행복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남편에게 기대어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버지가 바람처럼 사라질까 불안했고, 그 불안은 3년 후 현실이 되었다. 아직 갓난쟁이인 둘째를 안고 아빠를 멀리 보내드렸다.


장례식장에서 울지도 못하고 있는 나를 남편은 말없이 안아주었다. 하지만 남편은 부모를 보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아버지가 떠나신 후 숨조차 쉬기 어려운 나는 어린 아가들을 돌보며 꺼이꺼이 속으로 울었다. 울다가도 우는 아가들을 챙기고, 또다시 울고. 그런 세월이 쌓이고 반복되면서 나는 내 몸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는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 힘을 합쳐 아이들을 열심히 키웠다. 아버지의 부재는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있었지만, 늘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여전히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기둥 같은 남편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부스터프로를 사용하면서, 나는 고통 속에 흘러버린 나의 시간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늘 곁에는 당신이 있었음을 다시 깨달았다. 남편은 나의 빛나는 피부보다 더 빛나는 존재였는데, 아버지를 보낸 슬픔의 구덩이에서 너무 오래 버둥거리느라 남편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세월도 무심하다. 그런 것이 이제야 보이다니.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상처는 때로 우리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지만, 동시에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나는 이제 그 어둠에서 벗어나 당신이라는 빛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부스터프로는 단순한 미용 기기가 아니라, 나의 상처를 치유하고 당신의 사랑을 다시 발견하게 해 준 고마운 존재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