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아빠는 억울해

아빠의 새 밥

by 리썬이

- 프롤로그 -

누군가 그랬다. 아기공룡 둘리에서 고길동을 이해하면, 철이 든 거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직장에서 만년부장님을 이해하면....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고.

직장생활 주니어 시절에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한심하게 생각하다가, 연차가 쌓일수록 존경스럽다고 생각하게 된 존재가 바로 '존버 만년 부장'이다.

임원을 달지 못하는 직장인에게, 그 끝은 만년부장이다. 초반에는 그 만년 부장님들도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아 부장이 되었겠지만, 회사에서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순간 월급을 축내며 사무실에서 조용히 숨만 쉬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나는 그런 부장님들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들고 치사한 직장생활을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무시를 넘어 무관심을 견디며 은퇴까지 몇십 년을 일하는 만년 부장님들에게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모두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가장이요 아버지였다.

회사에서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모를 리 없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들은 회사를 그만둘 수가 없다. 왜냐면 그들은 가장으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 아빠는 억울해 -

자식이 성장하면서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당연히 대화도 많이 하지 않는다.

함께 하는 시간도 짧고, 대화도 많지 않으니 당연히 가족들은 아빠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써니의 아빠는 75세까지 오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하고 최근 3-4년 동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졌다.

아빠는 집안과 가족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만, 아빠의 직장생활 35년 동안 아빠는 일하는 사람이었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 가족에게 아빠가 보여주는 행동과 말은 때때로, 아니 자주 아빠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아빠는 머리로만 생각해도 되는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이야기해서 쿠사리를 먹는다는 것이다.

정여사와 아빠를 모시고 남동생과 싱가포르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싱가포르는 물가가 정말 비싸서, 부모님께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여행 경비가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한 번은 식당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택시를 불렀는데, 그나마 좀 저렴한 아반떼 크기 정도의 택시로 불렀다.

나도 속으로 '택시가 좀 작나? 살짝 불편하네...'라고 느끼고 있을 때, 아빠가 한마디 한다.

"싱가포르 택시는 크기가 다 이 정도냐?"

아빠의 그 말은 부모님 모시고 여행 다니느라 지친 남동생과 나에게 택시가 작아 불편하다는 불평으로 들렸고, 아빠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자, 작게 속삭이신다.

'정말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그 옆에서 가만히 있던 정여사가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느그 아빠는 그게 문제야. 그래서 나는 아~무말도 안 하잖아."


또 한 번은 할아버지의 제자로 가족이 오랜만에 집에 모였다. 제사음식을 많이 차리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집에 오는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정여사는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식사 준비를 돕기 위해 밥을 푸려고 밥통을 열었는데, 밥통에는 새 밥이, 밥통 옆에는 약간 식은 헌 밥이 있었다.

둘째 딸 써니는 남동생에게 "이거 우리가 안 먹으면, 정여사랑 아빠가 드시니까 우리가 먹자."라고 말하고 식탁에 앉았다. 아빠는 그때부터 귀에서 피나는 잔소리를 일장 연설하신다. 새 밥을 먹으라고.

그 헌 밥은 그렇게 먹는 밥이 아니고, 새 밥을 먹으라고.... 계~속 얘기하신다.

아빠의 잔소리를 듣다 듣다 또 우리는 화를 냈다. "내버려 두셔라. 알아서 먹겠다. 한 번만 얘기해라"

아빠는 말을 드디어 멈췄다.

한참 식사를 하다가 아빠가 엄마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묻는다.

"밥에 물이 너무 부족한가? 밥이 너무 땡글땡글하네.."

둘째 딸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가 밥 하신 거야? 그래서 그렇게 새밥먹으라고 난리난리 치신겨?"

흠.... 그렇다. 아빠가 밥을 지으신 거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새 밥을 자식에게 먹이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듣고 싶으셨겠지. 너무너무 맛있다, 감사하다는 말을.

그런데 그걸 알 리 없는 남동생과 나는 그만 좀 하시라고 아빠를 다그쳤다.


아빠와의 대화는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아빠는 자신만의 특이한 인생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이 되어서 우리에게 크게 지지받지 못한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아닌데, 표현이 다르고, 서툴다고 해서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 그렇게 핀잔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좀 죄송하다.


그렇다. 정여사의 어떤 행동에도 꿀이 뚝뚝 떨어지는 둘째 딸은 아빠에게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죄송하다. 아빠가 말로 표현 안 해도 자신의 자식사랑을 자식이 알아주길 바라듯이, 둘째 딸도 아빠에게 무뚝뚝하지만, 감사한 아빠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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