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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Nov 27. 2021

테스형~

왜 이렇게 힘들어

'아빠 난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어' 하고 아빠와 대화 중에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빠가 깜짝 놀라시더니 누가 들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대꾸하셨다. "선율이 아빠한테는 그런 말 하지말어. 정말 큰일난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어쨌길래 정색을 하고 큰일난다고 말씀하시는 걸까.


새벽잠이 없으신 아빠는 시사 채널을 고정한 체 밤잠을 주무신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고루 듣다보니 생각도 많고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도 참 많은 듯하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아빠가 알아서 하시겠지만 직업에 있어서 만큼은 귀를 쫑긋 세우고 계시다 주목 받는 직종이 나타나면 전화하셔서 이게 좋다더라 저게 좋다더라 이런걸 해보면 어떻겠니 저런걸 해보면 어떻겠니 종종 말씀하신다.


어느 때는 새벽 여섯시에 전화를 하셔서는 다행스럽게도 아침 일찍 일어난 딸에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꼭 취득하라며 왜 그런지 어떤 전망이 있는지 두루 말씀하시고는 툭 끊으신다. 언제는 장사 잘되는 동네 미용실을 보고 와서는 아직 손이 녹슬지 않았으면 미용 기술을 좀 배워두는 게 어떻겠냐며 진심으로 말씀을 건내신다.


살아가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일이고 문제이고 또 그게 삶의 전부라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의 배고픈 소크라테스 타령은 배를 곯겠다는 것이 아님에도 아빠는 못내 걱정이 되셨는지 정색부터 하신 거다. 돈이 전부가 아닌 삶을 살겠다고 말씀드린 것이지 돈을 안 벌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아이들이 먹고 자고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면 난 내 일을 할 거다. 돈을 목적으로 직업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면서 돈이 따라오면 더없이 좋을 그런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건 마치 돈벌이 없이 집구석에 가만히만 있지는 않았다는 발표회를 하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고 또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낯선 시작은 그러하듯이 말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삶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인간으로서 그러해야 한다는 본질을 계속해서 질문하는 일, 방법을 제시하면 본질을 궁금해 하는 자세. 어떤 일을 할 때 '그냥 하면 되는데 뭘 따져물어'라고 귀찮아 할 수 있지만 왜 그래야만 하는지 궁금하고 적어도 '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함께 행동도 따라가는 난 그런 사람이다. 사회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처럼 외롭고 소외감에 힘들었을 때 다시 직업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막연한 희망만 있을 뿐 그 바람에는 나의 꿈 따위는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나의 관심을 따라 흥미를 따라 낯선 오솔길을 걷다보니 막연한 관심과 기대는 헨젤과 그레텔이 뿌려놓은 빵조각처럼 집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으로 그 희미한 것이 무엇일까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게 된다.


4년제 대학 씩이나 나온 딸이 집에서 애들이나 돌보며 일도 안하고 글씨를 쓰니 그림을 그리니 해가며 삶을 지켜주는 돈과는 먼 삶을 살겠다며 깝죽거리는 꼴이 못내 불안한 울 부모님께 우선 미안하다. 부모의 눈에 불안한 딸의 모습은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지만 나름대로 멋지게 늙어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허풍조로 말해보기도 여러번이다. 아빠는 대충 아셨을 거다. 내 생각의 깊이가 아빠의 생각과 퍼즐이 맞아 반짝하고 통하는 기분이 들었을 때 적어도 본인의 딸이 대충 살고 있지는 않다는 걸 말이다. 내 인생을 나못지 않게 진심으로 걱정하는 부모님이 계셔서 든든하고 힘이 되지만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나는 어느 구석은 떳떳하지 못하다.


매일 조금씩 오솔길의 끝에 있는 그곳으로 다가가고 있다 생각하면서도 이 길의 끝에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는 불안은 현실과 타협점을 찾을 것이다. 기대와 불안의 타협은 '배고픈 소크라테스' 가 돈을 적당히 버는 방법 뿐이다. 배부른 돼지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적당히 먹고 살만한 정도에서의 사유와 그 정신세계를 향한 탐구는 고단한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끌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말이 바람이다. 말이 분다. 말이 불어서 흩어진다. 글을 쓰고나니 허무하다.


배고픈 소크라테스... 아~ 테스형~ 세상이 왜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https://youtu.be/8cNz9awcVq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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