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과제와 씨름을 하다가 늦은 오후 다섯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를 했다. 과제는 결국 어떻게든 마무리되었고 아쉬운 마음까지 잘라내며 제출버튼을 눌렀다. 시간이 더 주어진다 해도 이번 과제의 주제를 속시원하게 표현할 재주는 없어 보였다.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가. 나는 어떤 작가이길 바라는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가. 그래서 결국 나는 누구인가. 2학기 중간과제는 '나'에 대한 것이었고 기말과제는 '내가 아닌 나'에 대해 미술재료를 제외한 기타의 재료를 사용해 '결국 나'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내가 나를 모르면 누가 나를 알까?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말해보라 하면 말문이 막힐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우선 '나'를 소개한다는 건 '부끄러움'부터 올라오는 게 사실이다. 말한다는 건 표현한다는 건 누군가 본다는 전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나를 솔직하게 표현하기는 쉽지가 않다. 어디까지가 나인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계속 그러했던 사실만이 나일지 아주 잠깐의 현상도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내가 나를 바라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구나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위 작업은 중간과제 '나'에 대한 결과물로 시골집에 내려갔을 때 쌓여있는 장작더미에서 발견한 재료들로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다. 고민을 하면 할 수록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재료들이 선택될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은 나의 태생이 어디인지 부터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체성이며 독창성을 지닌다. 우린 모두 각각의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변화를 겪으며 지금에 이르렀으니 그 원형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내가 그것을 찾았다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나를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재료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본다면 분명 그것은 나의 일부일 것이란 생각에 확신을 주게 된다. 아빠가 쌓아 놓은 땔감 나무들 틈에서 발견한 재료를 만지면서 불편하다거나 낯설다거나 혹은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마치 이끌리듯 손에 쥐었고 만드는 과정에 쾌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나는 투박해. 나는 거칠고 예쁘지는 않아. 그렇다고 멋스러운 건 더더욱 아니야. 어찌보면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처럼 울퉁불퉁하고 못생겼으며 쓸모없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그것처럼 재미난게 없어. 그래서 난 내가 좋아. 그런 맛에 이런 것도 만들어보고 참 신나는 일을 하고 있잖아. 순종적이지 않고 거칠어서 내가 가는 길이 순탄치 않아도 일단 해보는 도전도 할 수 있잖아. 그게 바로 나지. 하지만 마음 만큼은 예쁜 민들레처럼 노란 색으로 가득차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줘.
이번 기말과제는 나는 나인데 '내가 아닌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 모습은 어떨까. 생각해보니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숨은 감성을 알아보지 못한다. 말을 미화시키길 좋아하고 감정을 포장해 그럴듯한 순간을 만들어 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실제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일이겠으나 그런 것을 좋아하는 나는 망상에 빠질 때가 많다. 그런 나와 코드가 맞아 삶을 아름답게 하는 일에 동조해 준다면 그 누구라도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게 무슨 고달프고 쓸데없는 짓이냐고 앞에서는 말 못하겠지만 뒤에서는 수근거릴 수 있겠다 싶다.
그런 나는 현실과 부딪칠 때가 많다. 아주 현실적인 일들이 마구잡이로 나의 몸을 기어오르는 모양새가 참 안쓰러워보인다. 아들은 몸통을 만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단박에 해석을 한다. 엄마 몸에 뭔가 마구 기어오르고 있어. 우린가?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엄마를 못살게 괴롭히는 수 많은 것들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정신까지 잡아먹지는 못할것이다. 몸을 지배할 수는 있지만 정신까지 지배할 수 없는 이유, 그건 나 스스로 허락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을 자유롭게 두고 싶은 마음을 고대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이 아는 영역이기에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내가 아닌 나'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포르노 배우들이 온몸을 노출시켜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정신까지 노출되지 않고 지배당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간과제도 그렇고 기말과제도 그렇고 미완성 작품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자. 표현 기술이 부족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자. 죽을 때까지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게 숙제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삶은 굴러 가는 거고... 왜 작품은 자신과의 끝없는 대화 속에서 창조되는지 알 것도 같다. 아주 조금.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누구인가
#나라는사람은과연누구인가
#과제는끝났지만이질문은계속될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