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책방 Jun 04. 2024

붓다의 가르침 속으로

마음공부

SNS를 보다 보면 나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의 삶이 굉장히 행복하고 화려해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자연스레 그들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고 좌절했다. 나만 힘겨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암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면서 삶의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을 때 화려해 보였던 그들은 하나, 둘씩 나에게 자신의 진짜 삶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밑바닥에 있는 나에게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도 자존심이 상할 것 같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사연은 다양했고 저마다의 이유로 SNS에서의 화려한 모습만 봐서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휘황찬란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았던 누군가는 매일 밤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떤 이는 배우자와의 극심한 불화로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나한테 한참을 하소연을 하고 나서는 바로 다음날 SNS에 남편과 다정하게 함께 찍은 사진과 남편에 대한 칭찬글을 올리기도 했다. 모두가 가면무도회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이 털어놓은 실상은 매우 고통스러웠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로 신음하며 힘겨운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래. 그것이 인생이리라. 


'삶은 고해다'라는 석가의 가르침. 그것은 위대한 진리다. 나는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삶은 고행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도대체 왜 인간은 이러한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 건지, 삶이라는 이 고통스러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지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이와 같은 사유를 계기로 출가를 하셔서 깨달음을 얻으셨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과 사상을 배우기 위해 나는 여러 사찰과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유일신 신앙을 가졌던 가톨릭신자였다. 교회도 다녀봤고, 꽤 오랜 기간 동안 가톨릭 신자로서 성가대 활동도 하며 적극적인 종교활동을 하던 때도 있었지만 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고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바쁜 사회생활 속에 사실상 종교인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종교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한 계기로 어머니가 불교로 개종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서른을 갓 넘겼을 무렵, 우연히 어머니가 가지고 계셨던 불교서적을 보게 되었는데 책을 제대로 읽을 생각으로 첫 페이지부터 차근히 읽어 내려갔던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대로 뭉텅이로 책장을 넘기면서 중간중간 대충 훑어 내려갔는데 그 책 속의 문장들 하나하나가 내 심장에 쾅쾅 내려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언젠가는 불교철학에 대해 공부를 해보리라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암진단 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마흔이 넘어서야 오랫동안 버킷리스트에 있던 불교 공부를 위해 조계사에서 불교입문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유일신 신앙을 갖고 있던 나에게는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라는 불교 교리가 매우 불경스럽게 느껴졌고 마음이 몹시 불안정하고 괴로운 상태였던 나는 어려운 불교교리보다는 그냥 내가 기도하고 바라면 들어줄 수 있는 어떤 막강한 힘을 가진 절대자한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게 더 간편하고 쉬워 보였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처음 접하는 불교교리가 낯설고 거북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미 수강료를 지불한 탓에 한번 들어나보자! 라는 마음으로 강의를 계속 듣게 되었고 그렇게 입문 강의 수강을 마치고 경전강의를 또 수강하고 하면서 나는 어느새 불교교리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라는 논리가 전혀 불경스럽게 느껴지지 않았고 정말 내가 부처님처럼만 살 수 있다면 이 생에서 진정한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조계사에서 불교입문 강의를 들었을 때 스님께서는 기독교의 성경에서처럼 불교경전에도 판타지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것은 전부 허구이니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이 의미하는 상징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렇다. 결국 종교라는 것은 비유와 상징을 통해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판타지적인 요소들을 제거한 현실적인 삶의 철학을 말씀하시는 스님들의 강의에 내 마음이 크게 동요했고 실로 감탄이 터져 나올 때가 많았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경외심과 환희심마저 들었고 끝없이 어두운 삶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았던 나에게 불교철학은 내 인생을 밝힐 수 있는 등불과 같이 느껴졌다. 행복이라는 것은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리라. 고요한 마음. 그저 고요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세상에서 나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은 결국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과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불안감,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 타인에 대한 원망, 상처받은 과거 기억의 소환. 모든 것들이 내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그것은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길을 걷던 중에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생각들을 좀 없앨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딱 저기까지만, 저 신호등까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가보자'라고 마음을 먹고 걸었는데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는 열 걸음도 채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머릿속의 생각들은 단 1분 1초도 쉬질 않고 계속 됐다. 이후로 나는 생각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 하셨던, 또한 부처님을 깨달음에 이르게 했던 수행법인 '위빠사나' 수행이 바로 생각을 없애는 수행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처를 찾던 중에 오래전 서울대생들의 집단출가로 화제가 되었던 인물 중의 한 명인 일묵스님의 ‘제따와나선원’을 알게 되었고 수행을 배우기 위해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다. 생각을 비우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지만 평생을 마음 닦는 일에 몰두하셨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만은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만 같기에 앞으로 계속해서 수행을 이어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삶은 고행일 수밖에 없기에 인생이라는 이 험난한 여정에서 어쩌면 우리는 삶이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삶이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살되, 꾸준한 마음공부를 통해 이 힘든 삶을 버텨낼 수 힘을 기르는 것이 현명하게 이 삶을 살아내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도 내 것이 아니라는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내 마음이 내 것이라면 이리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렵지 않았을 터. 마음공부를 계속하면서도 육체적 고통이 심한 날이면 또다시 무너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기에, 앞으로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나는 마음공부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 내 영혼의 완전한 구원은 내 스스로 이룩하여야 하기에. 나는 갈망한다. 붓다가 되는 길. 그것만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이전 18화 죽음에 대한 탐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