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를 할 거라고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운 좋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어느새 50번째 글을 올리려 한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무엇을 어떻게 왜 쓰는지. 정말 그냥 쓰는 행위를 하고 있고, 한눈팔기 딱 좋은 집중력이라 좋다. 거창한 계획은 없다. 쓰는 행위에 스스로 행복감을 찾았으니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한 후, 주말 내내 궁금했다. 떨어지면 다시 신청하지 뭐 밑져야 본전 이라며 신경 안 쓰는 척 애를 썼다. 아무도 모르기에 티 낼 수도 없는 일, 입이 근질근질 난리가 났다. 기다리던 합격 메시지를 받는 순간, 혼자 부엌 싱크대 구석에서 머리를 처박고 히죽히죽 웃었다. 아. 입이 근질근질하다.
부끄러웠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자신 없었고, 내 치부가 글로 드러나 벌거벗은 몸뚱이를 보여주는 듯했다. 특히, 신랑에게 아직도 관리가 필요한지 마음을 들키기 싫은 건지 제일 글을 쓴다 드러내기가 힘들었다.
입이 근질근질했다. 자꾸 입꼬리가 실룩실룩 거렸다. 핸드폰 브런치 앱에 들락거리느라 안 그러던 애가 폰을 끼고 사니 약간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걸 감지했다.
말을 해. 말아. 해. 말아. 해. 말아. 해. 말아. 해. 말아.
결국 근질거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선포했다.
"나 브런치 작가 됐어."
얘가 또 뭔 일을 꾸미나 싶어 어리둥절 한 표정으로 브런치가 뭐냐 물어본다. 글을 쓰는 플랫폼이란 가장 평범한 대답을 하며, 부끄러우니 읽지 말라는 식상함도 함께 던졌다.
부끄럽다. 읽지 말라 했지만 안 읽으면 안 읽는다 서운해하겠지. 읽으면 읽었다 꼬투리 잡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지만. 부침개 뒤집듯 가볍게 다시 말을 뒤집었다. 읽어보라고. 어떻냐고. 매도 먼저 맞는 게 낫겠지.
믿었던 그는 부끄러운 첫 글을 읽었고, 계속 그를 믿기로 했다. 결혼, 가장 의지하고 서로 믿어줘야 하는 그 영원의 약속을 잠깐 잊었다. 그는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었다.
잘했다고 하고 싶은 거 하라는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한번 발표를 하니 괜히 자랑을 하고 싶어 아이들에게도 말해본다.
"얘들아! 엄마가 글을 쓰는 데 합격을 했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아들 셋은, 3살은 어리둥절. 6살은 대답 없음. 8살은 그래서.
가족의 인정과 평가를 우선시 함으로써 한글은 읽을 줄 아는 첫째에게 끊임없이 찔러본다. 이거 엄마가 쓴 건데 읽어볼래. 뭐가 제일 재미있어. 이해하지 못할 글이라 생각했는데 눈치껏 대답하는 건지 엄청 재미있다며 박장대소 깔깔깔 손뼉까지 쳐준다. 이런 애가 아닌데.
친정엄마와 여동생에게도 알렸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자기 얘기는 쓰지 말란다. 모녀가 어쩜. 가족 얘기 빼면 도대체 뭘 쓰란 말이냐. 치사해서 안 쓰기로 했다. 아. 맞다. 아빠한테 따로 얘기를 했었나.
가족은 못 건드리니까 익명의 작가로 활동해서 과거 남자 친구들을 모조리 소환해 볼까. 신랑이 걸린다. 결혼의 굳은 맹세 그 믿음이 글감 찾기 과거 소환으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감당할 수 있겠니.
과거 얘기 쓰고 그러면 질투하고 신경 쓰고 막 그럴 거냐며 넌지시 물어봤다. 자기는 괜찮다며 과거인데 뭐 어떻냐며 쿨하게 이야기한다. 찜찜하다. 쿨 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글감이 없다. 글감이 없다. 뭘 쓰지 뭘 쓰지. 매일 노동요를 부르고 다니는 와이프가 시끄러운지 글쓰기에 외조를 하겠다며 아무거나 다 쓰라고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과거도 다 쓰란다. 자기는 글을 읽지 않을 거란다.
진짜지. 정말이지. 거짓말 아니지. 진짜 쓴다. 진짜로 쓴다. 진짜 진짜 진짜 딴소리하기 없기다.
앗싸. 가오리. 글감의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시험 삼아 살짝 하나 넌지시 과거사를 올려봤다. 반응을 요래조래 살펴본다. 진짜 안 보나 보다.
당신을 외조의 왕으로 임명합니다.
어느 날 신랑은 뜬금없이 자기 이름이 관심작가에서 없어졌냐고 물어본다. 순간 짜증이 밀려오면서 내 브런치 끊었냐며 눈을 살짝 흘겼다. 오늘 관심작가 중에 줄어든 한 명이 너였냐며 흥칫뿡이라며 목록을 확인해 본다. 어라. 멀쩡히 목록에 있다.
그는 브런치 앱을 삭제했다.
아직 브런치 생태계를 잘 모르는 순수한 외조의 왕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까 봐 스스로 브런치 앱을 삭제했다고 한다. 앱을 삭제하면 관심 작가 목록에도 사라지는 줄 알았던 순수한 영혼.
외조의 굳은 의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스치는 의심. 근데 왜 삭제한 거지. 봤네. 봤어. 내 브런치 읽고 있었네. 더는 못 보겠어서 이 여자 어디까지 갈까 겁이 나서 닫았네 닫았어.
이건 아닐 거다. 순수한 외조의 왕으로 남아주길 바래.
판도라 상자도 봉쇄 됐으니 무궁무진한 창작 욕구를 불태워 줄 초기 조건이 완성됐다. 무엇을 어떻게 왜 쓰는지 알 수 없다. 아직 글쓰기 도통 모르겠지만 일단 쓴다. 막 쓴다. 계속 쓴다. 이 공간에 머무름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글 쓰는 마음이 어디로 닿을지 언젠가는 알 수 있겠지.
민망하지만, 50개 글이 뭐라고 이런 인사를 하냐 싶지만, 글을 쓰는 동안 라이킷과 댓글은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