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독성 Feb 08. 2023

일상, 그 사소함에 대하여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별도의 레시피가 없는 그저 굽기만 하면 되는 구이 요리를 선호한다. 고기는 삼겹살, 목살, 가끔은 소고기로 돌려 막고, 어떤 날은 생선도 굽는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이다. 


아이의 학교 앞 동네 슈퍼로 들어가면 샵인 샵 개념의 정육점이 있다. 사장님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기를 달라하면 고기만 주신다. 오늘 고기는 뭐가 좋다 이런 추천은 없다. 그냥 달라는 것만 딱 주신다. 아이들 먹을 거라 연한 걸로 주십사 하면 오래 안 끓여 그런 거라며 고기가 질기면 고기를 푹 오래 끓이라 하신다. 안심은 얇게 썰면 맛이 없다고 절대 얇게 썰어주지 않으신다. 사장님의 무뚝뚝함과 고기 부심은  적응이 안 되지만 여러 군데를 돌아봐도 여기 만한 고기가 없다.








항상 맛있는 삼겹살, 오늘도 맛있겠지.

군침을 삼키며 집에서 제일 큰 프라이팬을 달궈놓는다.  사온 고기를 꺼내 놓고, 열기가 올라오기를 기다려 본다. 어느덧 뜨끈한 기운이 올라오고 이제 고기를 올려 볼 차례.

한 줄, 두줄 나란히 나란히 프라이팬에 빈틈을 최대한 없애 줄을 세웠다.


어라. 비계덩어리가 보인다. 무뚝뚝하지만 항상 맛있는 고기를 주시는 사장님이 배신한 걸까. 눈살이 찌푸려졌다. 붉은 살과 흰 비계가 적절히 섞여 있어야 삼겹살 아닌가. 비계만 많은 것도 살코기만 많은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살코기가 많으면 퍽퍽하지만 꾹 참고 씹어먹기라도 할 텐데. 이건 뭘까. 프라이팬 닦으라고 주신건가.

다이어트 중인데 고기 굽는 냄새에 괴로워 그깟 비계 한 덩어리 딸려 들어왔다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는 걸까. 뭘 이렇게 까지 신경 쓸 일인가. 요즘 너 살 뺀다고 신경이 예민한 거니.


어라. 이건 비계가 아니다. 아니, 이것은 항정살.

한 점의 항정살을 발견하고 정육점 사장님에 대한 태도가 360도 공중회전을 한 뒤 만점 착지를 했다. 이런 반전 선물을 주시다니.

오늘 삼겹살 보다 좀 더 비싼 항정살을 살까 말까 고민했었다. 순전히 비싼 것도 비싼 거였지만 다이어트하는 중에 쫄깃한 항정살은 참을 수 없었다. 고기라면 다 좋아하지만 항정살보다는 일상적인 삼겹살이 먹고 싶은 욕구를 좀 더 눌러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항상 항정살 20,000원어치 한팩을 썰어 놓는 진열대를 바라보다 혼자 먹을 정도의 양 밖에 안되기에 그냥저냥 만만한 삼겹살만 가져왔다.  아쉬움을 어떻게 아셨지.








항정살 한 점에 우연한 일상의 기쁨을 발견해 본다. 고기를 사고 나와 식빵만 파는 빵집으로 간다. 오후 느지막이 가면 식빵을 못 살 수도 있는 곳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보니 역시나 식빵이 하나만 남아있다. 이런 행운이. 계산을 하는 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들어온 아주머니는 바로 앞에서 빵이 끊겼다며 아쉬워한다. 

마지막 남은 식빵 그게 뭐라고 명품 리미티드 에디션 오픈런으로 득템을 한 것보다 뿌듯하.


식빵 봉지를 흔들며 가는 길에 야쿠르트 아줌마 전동차에 들린다. 아주머니는 일주일에 서너 번 작은 야쿠르트 40개는 기본으로 사가는 vip를 위한 챙김일 수도 있겠지만, 샘플이 있을 때 꼭 온다며 운이 좋다며 한번 먹어보라며 신상품들을 챙겨주신다.


야쿠르트를 사서 길 모퉁이를 돌면 조그마한 커피집이 있다. 아이들과 주스 한잔을 사러 들리면 항상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지으시는 젊은 사장님은 과자 하나라도  챙겨주려 하신다.


그렇게 가게 몇 군데를 지나가며 집으로 오는 길은 많은 분들의 웃음과 인심으로 만들어진 길이다.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니 인생이 즐거워진다.

오늘 삼겹살은 항정살이 터닝포인트로 작동한 행복한 밥상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