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2부. 신전과 궁전, 권력과 음모의 공간 (16~30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이게… 정말 사랑의 유산이라고요?"
2023년, 인도 아그라(Agra).
눈부신 햇살이 하얀 대리석 건축물을 감싸고 있었다. 새하얀 돔과 미나렛이 하늘로 뻗어 있는 이곳, 타지마할(Taj Mahal).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영원한 사랑의 증표."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아내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위해 지은 건축물."
그러나, 역사가 알리 박사(Dr. Ali) 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타지마할의 하얀 대리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이것이 순수한 사랑의 표현일까?"
타지마할은 기원후 1632년부터 1653년까지 무려 22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마할이 14번째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나자, 그녀를 기리기 위해 이 거대한 무덤을 짓기로 했다.
최고의 건축가와 장인들이 인도 전역과 페르시아, 중앙아시아에서 불려왔다.
순백의 대리석과 보석들이 사용되었고, 미술과 공예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정말 아름답네요. 이걸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했을까요?"
알리 박사와 함께 온 젊은 연구원 사미라(Samira) 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러나 알리 박사는 어둡게 미소 지었다.
"그 노력이란 게… 결코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지."
알리 박사는 타지마할의 벽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샤 자한은 무굴 제국의 가장 강력한 황제였어. 그는 자신의 힘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이 건축물을 지으려 했지."
사미라는 의아하게 물었다.
"사랑을 위해서 지은 게 아니라는 말씀이세요?"
"사랑은 맞아. 그러나 동시에 그 사랑은 집착이었고, 그 집착은 폭정이 되었지."
알리 박사는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타지마할 건설에는 수만 명의 노동자가 동원되었다.
그들은 고된 노동과 극심한 환경 속에서 일해야 했다.
특히 건축이 완성된 후, 샤 자한은 장인들의 손목을 잘라버렸다는 전설
까지 전해진다.(비록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만큼 타지마할의 건축이 고통스러웠음을 의미한다.)
사미라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건 끔찍한 잔혹함이네요."
알리 박사는 타지마할에서 멀리 떨어진 아그라 요새(Agra Fort) 를 가리켰다.
"저곳을 보게. 샤 자한이 마지막 생을 보낸 장소지."
타지마할이 완성된 후, 샤 자한은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 는 아버지를 반역죄로 몰아 아그라 요새에 감금해버렸다.
샤 자한은 창문 너머로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남은 생을 보내야 했다.
"그는 결국 자신이 만든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갇혀 있었지. 사랑의 기념물이 결국 그의 감옥이 된 거야."
사미라는 소름 돋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타지마할은 사실 사랑의 상징이 아니라, 고통과 억압의 상징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알리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이 건축물은 황제의 사랑과 집착, 그리고 권력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니까."
알리 박사는 사미라와 함께 타지마할의 내부로 들어갔다.
그들은 벽면에 새겨진 정교한 무늬와 아름다운 보석 장식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타지마할이 단순히 악의 산물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알리 박사가 조용히 말했다.
"왜죠?"
"타지마할은 분명히 아름다운 예술품이야. 그것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야.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했지. 인간의 창의력과 기술이 만들어낸 경이로움이라고 할 수 있겠지."
사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네요."
"그렇지. 예술은 때때로 인간의 고통과 희생 위에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경이로움은 그 고통을 가리기도 하지."
타지마할의 하얀 벽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알리 박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미라는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는 그 두 면을 모두 봐야겠네요. 아름다움과 고통, 사랑과 집착.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진 진실을 말이에요."
알리 박사는 타지마할을 돌아보며 말했다.
"맞아.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일지도 몰라."
타지마할은 여전히 하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은 단지 아름다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과 집착, 그리고 인간의 역사를 담은 상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