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不眠)
어김없이 까만 밤은 찾아온다. 자정이 지나고 나면 차츰 아파트의 불빛들은 꺼져가고, 낮 동안 소란했던 세상은 고요해진다. 그 속에서, 홀로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방이 조용해지는 시간이면 정반대로 내면은 시끌벅적 난리가 난다. 드넓게 펼쳐진 생각의 바다 한가운데에 풍덩 빠져서는 볼품없이 허우적거린다. 헤어 나오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깊게 가라앉아버리고 만다.
몇 년도 더 된 과거 일을 꺼내어 애꿎은 이불을 팡팡 걷어차고, 베갯잇을 비틀어 꼬집는다. 그와 함께 아직 오지도 않은 먼 훗날을 어둑한 천장에 그려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후회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끝내 목을 옥죈다. 목울대를 몇 번 쓰다듬다가 울컥, 뜨거운 게 넘실거리고 눈물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침대 한편 모서리에 틀어박혀 온몸을 끌어안고 숨죽인 울음을 떨군다.
처음 아이유의 노래 <무릎>을 듣게 된 날에는 환한 대낮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들었을 때에는 내게 그리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날 기분이 어쩐 일로 좀 들떠있었던가, 울적하고 잔잔한 곡이 끌리지 않았다. 그 뒤로 한동안 이 노래를 잘 듣지 않게 됐다.
그러던 어느 잠 못 드는 새벽,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뒤척이다가 끝내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탓인지 갑작스레 공격해 오는 환한 불빛에 두 눈을 찡그렸다. 머리맡에 가로등처럼 서있는 스탠드의 조명 스위치를 눌렀다. 불이 탁 켜지면서 깜깜한 방 안에 숨어있던 사물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앉았다. 그러고는 한참을 작은 네모칸 안을 뒤적거리다가 <대화의 희열-아이유 편>을 보게 됐다.
그날 밤, 난 한 시간 동안 아이유 편을 다 보다 못해 날이 밝아올 때까지 <무릎>을 몇 번이고 반복 재생했다. 왜 그때는 이런 가사인 걸 몰랐을까. 뒤늦게서야 이 노래에 빠져버린 게 억울했다.
어릴 적 누군가의 무릎에 얼굴을 대고 누워 까무룩 잠에 들었던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머리칼을 넘겨주는 까실한 손과, 내가 내뱉는 호흡과 반박자 어긋나는 상대의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따스한 숨결. 그때는 참 순식간에 잘 잤는데. 지금은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밤만 오면 꽉 묶어 놓았던 보따리가 갑작스레 풀어헤쳐진 것처럼 온갖 상념들이 허공을 떠다닌다. 멀리 날려 보내려 해봐도 내 손은 제멋대로 움직여 움켜쥐고 늘어진다. 아빠는 숨쉬기에 집중하라며 쉽게 말하지만, 난 그게 참 어렵다. 천장을 보고 누우면 생각이 괴롭히고, 창밖을 보고 앉으면 우울이 나를 찌른다.
어떤 날엔 밖을 바라보면 간혹 불이 켜진 집 두어 개를 보게 된다. 그럴 때면 '혹시 저 사람도 나처럼 잠을 못 자는 걸까?' 하며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가도 안도한다. 나만 뒤척이는 게 아니구나. 나 혼자만 깨어있지는 않구나. 하면서 바보 같은 생각을 한다.
오늘도 캄캄한 밤은 찾아올 테고, 어디선가 홀로 깨어있는 사람들이 뒤척일 것이다. 나도 아직 잘 잠들지는 못하기에 특별한 조언은 해주지 못한다. 다만 요즘도 우울한 새벽이 지속될 때면 <무릎>을 듣는다. 노랫말을 곱씹다 보면 나쁜 기억보다는 머리칼을 넘겨주던 온기 품은 손이 떠오른다. 잠은 오지 않고 안 좋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밤이 온다면 따뜻한 가사의 노래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우리 모두 스르륵 깊은 잠에 들 수 있기를
모두 잠드는 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다 지나버린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서 깨어있어
누굴 기다리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자리를 떠올리나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아이유 <무릎>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