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줄만 알았던 건물주님의 ‘한 장짜리 합의서’, 그 무서운 함정
모든 분석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법률적 해석의 재미와 정보 전달을 위해 가상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얼마 전, 군대를 막 제대하고 모은 돈에 대출까지 받아 첫 카페 창업의 꿈에 부풀어 있던 청년 박선우 씨가 굳은 얼굴로 제 로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의 손에는 2년 전 체결했다는 낡고 구겨진 ‘합의서’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선우 씨의 이야기는 요즘 청년 창업가들이 심심치 않게 마주하는, ‘친절’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법률적 함정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2년 전, 선우 씨가 그토록 원하던 상가 자리를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그곳은 동네에서 꽤 유명했던 ‘DJ 레오’가 운영하던 힙한 LP 바였습니다. 멋들어진 방음벽과 DJ 부스, 감각적인 조명까지. 선우 씨는 이 인테리어를 그대로 인수해 자신만의 감성을 더한 카페를 열고 싶었습니다.
마침 DJ 레오가 홍대 앞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건물주 김 사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인상 좋고 친절했던 김 사장님은 그의 말에 흔쾌히 동의하며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젊은 사람이 꿈이 좋다”며, “복잡하게 새로 계약할 거 뭐 있어? 부동산 중개비도 아낄 겸, DJ 레오가 쓰던 계약 그냥 승계해서 쓰자고. 내가 서류 한 장 만들어 줄 테니 도장만 찍어.”
선우 씨는 친절한 건물주의 배려에 감동했습니다. 그는 DJ 레오에게 보증금을 직접 건네주고, 건물주가 건넨 「임차인 명의변경 및 권리·의무 승계 동의서」라는 제목의 서류에 희망을 담아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선우 씨는 개인 사정으로 카페를 접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설치한 커피 머신과 테이블 등을 정리하고 건물주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보증금 대신, 수천만 원짜리 ‘원상회복 공사 견적서’였습니다. 건물주는 DJ 레오가 설치했던 방음벽, DJ 부스, 특수 조명까지 전부 철거하고, 20년 전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의 ‘맨 콘크리트 상태’로 되돌려 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선우 씨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도장 하나 찍었던 그 ‘한 장짜리 합의서’가 자신의 보증금 전부를 겨누는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을요.
선우 씨를 절망에 빠뜨린 합의서의 핵심 문구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신규 임차인(박선우)은 기존 임차인(DJ 레오)의 임대차 계약상 모든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한다.”
‘포괄적 승계’라는 다섯 글자. 많은 분들이 “그래도 내가 설치한 게 아닌데 설마 책임지겠어?”라고 생각하며 대법원 판례 하나를 떠올립니다. “별도의 약정이 없는 한, 이전 사람이 시설한 것까지 원상회복할 의무가 없다”는 유명한 판결(90다카12035)이지요.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한 장짜리 합의서’가 가진 가장 무서운 함정입니다.
최근 법원의 판단은 훨씬 더 복잡하고 엄격해지는 추세입니다. 재판부는 단순히 법 조항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계약의 실질’을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재판정에서 판사님은 선우 씨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임차인은 빈 가게를 빌렸습니까, 아니면 DJ 레오가 운영하던 가게의 시설과 인테리어, 그로 인한 유·무형의 이익을 전부 넘겨받았습니까?”
만약 법원이 선우 씨가 DJ 레오의 시설을 그대로 이용해 영업적 이득을 얻었다고 판단한다면, ‘포괄적 승계’라는 문구는 ‘단순 임대차 승계’가 아닌 ‘영업의 양수’로 해석될 여지가 매우 큽니다.
실제로 최근 대법원은 이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이라도, 새로운 임차인이 그 시설을 그대로 이어받아 동종의 영업을 했다면 그 철거 의무 역시 새로운 임차인에게 있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9. 8. 30. 선고 2017다268142 판결). 법원은 이를 ‘묵시적인 원상회복의무 승계 약정’이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우 씨가 서명한 ‘한 장짜리 합의서’는 더 이상 법의 보호를 기대하기 어려운, 해석에 따라 수천만 원의 빚을 떠안게 될 수도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문서였던 것입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불러온 위험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만약 2년 전 선우 씨가 제 사무실을 찾아왔다면, 저는 건물주가 내민 합의서는 잠시 넣어두고, 아래와 같이 특약사항을 명시한 새로운 ‘임차권 양수도 계약서’를 작성했을 겁니다.
<수정 계약서 주요 내용>
제1조 (원상회복의무의 범위)
① 본 계약의 임차인 ‘을’(박선우)의 원상회복의무는 임차 개시일(2023년 7월 25일) 당시의 상태를 기준으로 하며, ‘을’이 직접 설치하거나 변경한 부분에 한정한다.
② 이전 임차인(이민준, 예명: DJ 레오)이 설치한 시설물 일체(별첨 사진 목록 참조)에 대한 철거 및 복구 의무는 ‘을’에게 승계되지 아니한다.
(변호사의 한마디: 가장 중요한 것은 ‘원상회복의 기준점’을 박아두는 것입니다. ‘내가 들어온 날’을 기준으로 못 박으면, 이전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는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별첨 사진 목록’까지 만들어두면 금상첨화입니다.)
선우 씨와 같은 안타까운 일을 피하기 위해, 임대차 계약 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포괄 승계’ 문구를 경계하세요: 이전 임차인의 계약을 승계할 때,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한다’는 문구가 있다면 반드시 “여기서 말하는 의무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묻고, 특히 ‘원상회복의무’는 제외한다는 특약을 넣으세요.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두세요: 계약 당일, 부동산과 건물주와 함께 가게 내부 구석구석을 날짜가 나오게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두세요. 이것이 당신이 책임져야 할 ‘초기 상태’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특약사항이 ‘진짜 계약서’입니다: 인쇄된 계약서 조항보다 당사자 간에 합의하여 손으로 적는 ‘특약사항’이 더 우선적인 효력을 갖습니다. 귀찮더라도 당신에게 중요한 내용은 반드시 특약으로 명시하세요.
“좋은 게 좋은 것”은 없습니다: 계약 관계에서 친절과 배려는 감사한 일이지만, 권리와 의무는 다른 문제입니다. 불편하더라도 처음부터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훗날 더 큰 분쟁을 막고 진정한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길입니다.
물론 건물주 김 사장님이 처음부터 선우 씨를 속이려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행대로, 좋은 마음으로 중개비나 아껴주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법의 세계에서 ‘애매함’은 종종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명확한 계약서는 서로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오해로부터 현재의 좋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쓰는 ‘약속의 증표’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예비 창업가, 세입자분들이 ‘한 장짜리 합의서’의 위험을 인지하고, 자신의 소중한 보증금과 꿈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