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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비 Jun 19. 2024

게이들은 옷에 관심이 많잖아, 의 그 게이들

도쿄를 퀴어하게 여행하는 법 2

우리에게 해외여행은 그 나라의 문화를 즐기는 것이 절반, 옷쇼핑이 절반이다. 둘 다 '게이들은 옷에 관심이 많다'는 상투적인 표현에 나오는 그 '게이들'처럼 옷을 좋아한다.

둘 다 떡잎부터 달랐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종이 인형을 팔았다. 오스씨도 나도, 종이인형놀이를 아주 좋아했다. 조금 딱딱한 재질의 종이에 속옷만 입은 종이 인형을 비롯해 그 애가 입고 착용할 다양한 옷과 액세서리가 그려져 있었다. 가위나 칼로 그것들을 잘 잘라내고, 옷에 달려있는 작은 종이(그걸 뭐라고 불렀나 모르겠다. 여기선 그냥 옷걸이라 부르자)를 꺾어서 인형의 몸에 입혀주는 방식이었다. 몇 번 가지고 놀다 보면 옷걸이가 너덜너덜해져서 찢어지곤 했는데, 그러면 그 옷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다른 종이로 옷걸이를 만들어 붙여도 착 달라붙는 맛, 즉 착용감이 시원치 않아서 결국은 옷을 버리게 된다.

"너무 아깝더라고. 그래서 도화지에 그 옷을 똑같이 그려서 색칠을 하는 거지. 그걸 오려서 다시 입히는 거야."

처음엔 남의 디자인을 베껴서 옷을 만들다가 점차 익숙해지면 나만의 디자인으로 옷을 만들기도 했다.

만약 어머니가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어머니처럼 센스가 있었다면, 떡잎을 알아보고 재봉틀 사용법을 알려줬을 텐데, "남자애가 이런 거 가지고 놀면 꼬추 떨어져!"하고 손을 떼찌할 뿐이었다.

"우리 집도 그랬어."

'베르사유의 장미'의 주인공 오스칼을 지금도 제법 비슷하게 그려낼 줄 아는 오스씨의 맞장구였다.

인형 놀이는 여자애만 하는 거라는 편견에 나와 오스씨의 창의력은 억눌리고, 패션 창작자의 봉우리는 피지 못한채 소비자로서만 자라게 되었다. 어쨌든 어릴 때의 인형 놀이 경험이 또래 남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옷에 접근하는 이유가 된 듯하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나를 만나기 전 오스씨는 대체로 한 브랜드의 옷을 계속해서 사 입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종이 인형에 옷만 계속해서 갈아입히는 방식이다. 아무 바지를 집어 들어도 그에 어울리는 색과 모양이 다양한 상의가 줄줄이 딸려 나온다.

반면, 나는 다양한 종이 인형을 가지고 그때그때 꽂히는 스타일로 갈아타는 걸 즐겼다. 그들은 직업도 제각각이어서, 어떨 때는 등산가고, 어떨 때는 오토바이레이서고, 어떨 때는 락스타고, 심지어 '인사동에 사는 서예를 즐겨하는 다도선생님'처럼 구체적인 캐릭터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 덕에 내 옷장은 마치 코스프레 마니아처럼 장르가 다른 옷들로 버글거린다. "이 바지 위에는 어울리는 티셔츠가 없어." 울상 짓는 일도 다반사다.

 

우리의 체형이 극명하게 차이 나던 시절, XL와 M의 옷장은 철저히 구분되었다. 그런데 나의 다이어트가 기적적으로 성공하면서 옷장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매력을 차별적으로 극대화하기보다는 누가 입어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옷을 사게 되었다.

우리가 합의한 효과는 바로, '영감님의 메롱~한 몸매를 커버해 주면서 어딘가 귀여운 보이는 옷'이다. 이런 옷들은 백화점의 기성복 카테고리(양복, 캐주얼, 스포츠, 골프복, 아웃도어)에서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주로 '남성편집샵'이라 불리는 가게에 가야 하나씩 건질 수 있는데,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십중팔구는 일본에서 건너온 제품이었다.

"이런 옷을 아메카지라고 부른다네요."

나이 든 아저씨들이 자신의 가게에 찾아주는 게 신기했던 점원은 낯선 브랜드에 대해 설명하거나, 옷 입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옷을 사서 집에 오면 브랜드를 인터넷에 검색해 본다. 당연한 말이지만, 편집샵에서 셀렉하지 않은 옷들도 멋진 게 많았다. 그렇게 일본에서 사고 싶은 옷들이 하나씩 둘씩 쌓이다가 임계점에 달하면 일본행 비행기를 검색하는 거다.


"이번 휴가 때 도쿄에서 열리는 퀴어퍼레이드 참가할래?"

올해에 이미 두 번이나 일본을 다녀왔지만, 스키장, 대마도에는 쇼핑센터 없었다. 일본 공기를 들이마시고도 옷 한 벌 못 산 데 한이 맺혀있었는데, 오스씨가 휴가를 낼 수 있는 기간에 도쿄에서 퀴어퍼레이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오스씨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좋아. 그리고 간 김에 옷도 좀 사자."

아이, 좋아라.

하지만 퀴어퍼레이드가 본 목적이라는 나의 순수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옷은 무슨! 시간이 어딨어. 가는 날, 오는 날은 왔다 갔다 한다고 바쁘고, 토요일은 퀴어 축제 부스 돌아다녀야 하고, 밤에는 전야제 파티 참석하고, 당일날은 퍼레이드 참석하고, 끝나고 애프터파티 참석해야 하고, 또 매일 밤 게이바 탐방도 해야 하는데 쇼핑할 시간이 어디..."

"닥쳐. 무조건 쇼핑이다!"

코에서 김이 날 정도로 씩씩거리는 오스씨를 말릴 수도 없었고, 말릴 생각도 없었다.

"할 수 없지 뭐. 그렇다면 일단 우리가 도쿄 안 간지 오래됐으니까 요즘 어떤 가게가 있는지 공부를 새로 해야겠다."
야레, 야레~ 못 말리는 아저씨~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먼저 구글지도를 열어서 5년 전 마지막 도쿄여행 때 들렀던 편집샵들을 하나씩 클릭해 보았다. 주로 아메카지를 취급하던 그 가게들 중 <리얼맥코이>처럼 완벽하게 마니아틱한 가게들 외에 살아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한번 자리를 잡은 가게는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는 나라로 유명한 일본조차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한 때 독특한 가게들이 오밀조밀하게 밀집해 있던 캣스트리트도 한국의 가로수길처럼 유명 브랜드만 남은 듯했다.

우리가 좋아하던 <빔즈 beams>, <쉽스 ships> 같은 전통의 편집샵은 건재한 듯했고, 남성 쇼핑의 성지인 <이세탄 백화점>의 명성도 여전했다. 유튜브로 검색해 보니 새로 생긴 쇼핑몰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었다. 5년 사이에 도쿄도 많이 변했구나. 보통 이런 감상은 나른한 씁쓸함을 남기는데, 패션에 관해서는 반대다. 새로 생긴 가게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도파민이 퐁퐁 샘솟았다.

그렇게 해서 나카메구로, 다이칸야마, 시부야, 오모테산도, 신주쿠에 점점이 흩어져있는 가게들을 구글지도에 저장했다. 이번 여행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긴자와 도쿄역 주변 등은 제외하고 오로지 이 5곳만 집중적으로 파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다이칸야마였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매장이 거기에 있었다.


포드셀렉트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신주쿠산초메 역이다. 다이칸야마로 가려면 후쿠토신선을 타고 시부야에서 도큐 도요코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자체 환승 시스템이라 열차에 그냥 있으면 알아서 바뀐다. 아, 헷갈리는 일본의 지하철 시스템!

우리는 한국에서 '도쿄메트로패스 72시간권'을 사서 갔는데, 승차권자동판매기에서 QR코드를 승차권으로 바꿔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판매기에 QR코드 인식기가 없어서 결국 역무원을 찾아가 손짓발짓을 해야 했다. 다행히 모퉁이를 돌면 QR코드 인식 가능한 자동판매기가 있다는 사실을 안내받아서 패스를 가질 수 있었다.


* TIP :  이렇듯 역에 따라서 QR코드자동판매기 찾기가 번거로울 수 있으니 가급적 공항에서 시내에 들어올 때 미리미리 매트로패스를 승차권으로 바꿔두자.


승차권을 인식시키고 개찰구를 통과했는데, 아뿔싸, 후쿠토신선이 아니었네? 다시 나오면서 72시간권 사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침내 후쿠토신선을 타고 시부야에 도착하니 한참 동안 정차한 후 열차가 다시 출발했다. 이제 도큐 토요코선으로 바뀐다는 신호인 듯했다. 다음 정차역이 다이칸야마여서 내릴 준비를 하는데, 서지 않지 그냥 지나친다.

"어, 뭐야! 왜 안 서!"

당황한 우리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전철은 나카메구로 역에 도착했다. 서둘러 내린 후 반대쪽에 가서 다이칸야마행 전철을 탈 것인지 고민하다, 그냥 쇼핑을 이곳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TIP :  알고 보니 도큐 토요코선은 도쿄메트로 패스로는 탈 수 없는 열차였다.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시부야에서 자체적으로 바뀌면 매트로패스로 계속 갈 수 있지만, 다이칸야마역처럼 도쿄 토요코선만 다니는 역으로 들어갈 때는 따로 표를 끊어야 했다. 쇼핑을 마치고 다이칸야마 역으로 들어갔는데, 72시간권은 안 된다고 해서 140엔짜리 1회권을 사서 들어갔고, 시부야역에서 내리지 않고 자체 환승을 한 후(후쿠토신선으로 알아서 변경) 신주쿠산초메 역으로 나올 때는 매트로패스로 나왔다. 정말 머리 터질 것처럼 복잡한 도쿄의 지하철 시스템! 익숙하지 않은 분은 이렇게 들락날락할 수 있으니 매트로패스는 반드시 사서 가도록 하자. 돈과 시간을 확실히 절약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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