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구스타브스베리를 사는 이유 6
* 이 작품은 소설입니다. 지명, 인물, 사건 모두 실제와 아무 관련 없습니다
거짓말은 삶의 윤활유다
수영을 마치면 근처 재래시장에서 그날 먹을 음식만 조금 사서 집에 돌아온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라이프다.
냉장고에 음식 쌓아두지 않기.
물론 장바구니는 에코백이다.
내 나이 또래보단 열 살 정도 어린 주부들의 모던한 라이프스타일이 목표다.
오늘의 저녁메뉴는 우럭회와 매운탕으로 정했다.
재래시장의 횟집 사장님은 최근 들어 딱 3만 원어치의 회만 사가는 중년남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오늘 가장 좋은 걸로 주세요, 말해놓고, 매운탕에 들어갈 재료를 사러 간다.
채소가게 아저씨와도 안면이 있어서 매운탕이요,라고 말만 하면, 방아 조금, 파 조금, 콩나물 조금, 해서 2천 원어치의 채소를 검은 봉다리에 담아준다.
마늘 다진 건 있죠? 묻길래, 네.
없다 하면 조금씩 퍼준다. 공짜로.
처음엔 이랬다.
부인은 참 좋으시겠어요, 하길래,
네? 했더니,
이렇게 남편이 알뜰하게 장을 봤다 주니 살림하기 좋겠다구요.
아, 또 노하우 발동시켜야 하는 타이밍?
혼자 사는데... 말꼬리를 늘이고 사연 있어 보이는 표정이면 금상첨화다.
요리에 맞게 재료를 넣어주면서 자신만의 요리비법까지 알려준다.
거짓말은 삶의 윤활유다.
채소 봉다리를 들고 다시 횟집에 가면 회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와 매운탕 재료에 와사비, 초장까지 넣은 패키지가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이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고 경제적이다. 요리를 하고도 쓰레기가 거의 남지 않는다.
그야말로 미니멀라이프 구현이다.
회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저녁식사 즈음엔 알맞게 숙성되어 있을 터.
“회를 아는 사람이라면 활어회보다 숙성회죠!”
먹방 프로에서 명망 있는 음식평론가가 그렇다고 한 이후 쭉 이렇게 먹고 있다.
저녁메뉴가 중년아저씨다운 묵직한 아이템이니만큼 점심은 가볍게 미나리파스타로 정했다.
며칠 전 백화점 생활관에서 세일마크가 붙어있어 충동적으로 구입한 파스타 접시에 마늘, 오일, 소금으로만 간을 한 링귀니면을 예쁘게 돌돌 말아 담고, 마지막으로 요즘 제철인 한재미나리를 수북하게 올리면 끝이다.
사십 평생 면이라면 라면, 국수, 우동이 전부였는데, 접시를 모으다 보니 파스타를 주로 해 먹게 된다.
스마트폰 음식 모드 카메라로 찰칵찰칵 찍어 페이스북과 게이커플모임 단톡방에 올린 다음 먹으면 된다.
채 한 입 밀어 넣기도 전에 카톡 반응이 온다.
― 형님, 우아한 점심이군요. ㅎㅎ 접시 예쁘네요.
재민이는 커플모임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5년 차 커플 중 동생 쪽이다.
나와는 띠동갑이다. 예전엔 게임을 좋아하는 형 쪽이랑 더 친했는데, 요즘은 컨셉이 ‘젊은 주부’다 보니 어느새 가장 가까운 수다친구가 됐다.
대형마트에서 파트타임 알바를 하는 자칭타칭 살림의 여왕이다.
― 또 하나 질렀지. ㅎㅎ
― 부러워요, 형님.
― 세일해서 엄청 싸게 산 거야. 다음에 세일하면 너한테도 알려줄까?
― 아니에요. 저 돈 모으고 있어요. 구스타브스베리 중에서 녹색 이파리 있는 거 완전 찍어뒀거든요.
구스타브스베리 베르사 무늬 좋지!
바로 그것에 낚여서 북유럽여행을 가게 된 거란다.
아, 맞다, 아직 얘기 안 했지?
― 나중에 시간 내서 백화점에 같이 가자.
그릇 매장에서 재민이가 찍는 물건들 봐뒀다가 “서프라이즈~” 하며 여행 선물로 줘야겠다.
― 고만해라. 또 뭘 지르려고!
재민이 파트너 종화의 등장이다.
겨우 한 살 차이인데도 확실한 형동생 느낌이다.
재민이가 철없는 소리를 하면 종화가 나타나 에헴 요 녀석! 하는 것이 이 커플의 패턴이다.
그들의 징징거리고 훈계하고 헤헷 닭살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이 단톡방의 최고 재미다.
― 형님, 요즘 우리 재민이 점점 닮아가는 듯요.
종화가 화살을 내게 돌린다.
― 좀 젊게 살아보려고.
재민이랑 비슷해지는 건 젊어지는 게 아니라 철없어지는 거예요,라는 타박이 뒤따랐다.
젊은 애에게 철없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진짜 젊어진 기분이다.
― 지난번에 홈쇼핑으로 덴비[1] 세트 질렀다고 아직도 갈궈요.
― 덴비 질렀으면 구스타브스베리는 참아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 집에도 이미 같은 세트가 있다.
“고객님, 두 번 다신 오지 않을 기회예요. 이번에만 특별히 1+1 하시면 20% 할인!” 해준다고 해서 충동구매 했다.
― 형님, 오늘 저녁 뭐 드세요?
― 회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뒀어.
― 우아, 나 회 못 먹은 지 오래됐는데...
― 이따 먹으러 올래?
매운탕에 채소를 넉넉하게 넣고 김치전 두어 장 더 부치면 셋이서 먹어도 될 양이 되겠지?
― 부럽네요. 저도 먹고 싶은데.
그러나 종화는 평일엔 무조건 야근이었다.
― 내가 형 몫까지 다 먹고 올게. 새로 사셨다는 그릇 구경도 좀 하고.
― 구경만 해! 또 산다고 욕심내지 말고. 형님, 우리 애한테 너무 바람 넣지 마세요.
― 알았어, 알았어. 근무 잘해!
웃으며 대꾸했다.
형님 소리만 빼면 누가 들어도 신도시 주부들의 대화로 손색이 없다.
인생 게임 주인공의 레벨업이 상당히 진척된 느낌이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게임 자체는 그다지 재미있다고 할 수 없다.
차 마시기, 아로마 치료, 클래식 듣기... 아이템 모으기라 생각하니까 하는 거지, 솔직히 내 스타일이 아니다.
만약 다양한 주방 가전제품과 접시,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진즉에 게임오버를 선언했을 것이다.
[1] 덴비: 주부들이 좋아하는 영국 테이블웨어 브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