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구스타브스베리를 사는 이유 7
* 이 작품은 소설입니다. 지명, 인물, 사건 모두 실제와 아무 관련 없습니다
아이돌 트와이스처럼 예쁜 애 옆에 예쁜 애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보통 남자들은 거실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에 관심을 둔다.
하지만 주부의 눈으로 살펴본 가전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TV, 오디오, 컴퓨터보다는 청소기, 냉장고, 세탁기가 좋아야 생활이 편리해진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아령과 실내자전거를 살 게 아니라, 먼저 다양한 건강식과 주스를 만들어줄 믹서기, 오븐, 전기그릴, 토스터기 같은 제품을 구비해둬야 한다.
요즘에 파는 것들은 근사한 모양에 취급방법도 편리하고 결과물도 지극히 놀랍다.
이런 것들 없이 그동안 어떻게 음식을 해 먹었나 싶을 정도다.
난데없이 주부력이 상승해버린 부인(?)을 난감해하던 그도 주방가전에는 흥미를 보였다.
집에서도 식당 수준의 요리가 척척 나오니 외식비가 줄겠다며 좋아하기까지 했다.
무릇 자신의 창작물이 칭찬을 받으면 널리 자랑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커플모임 채팅창에도 올렸는데, 아뿔싸!
지금 가지고 있는 ‘깨지지 않는 아름다운’ 식기로는 ‘좋아요’를 많이 받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레벨업을 위해선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해!
백화점에서 대바겐세일을 하는 날이었다.
아웃도어 코너에서 등산화를 사고 사은품을 받으러 9층에 있는 사은행사장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7층 스포츠/아동 코너를 지나 8층 가구/리빙관을 지나는데, 동글동글한 손 글씨로 <유럽 명품 키친웨어, 포항에 드디어 상륙!>이라고 적힌 판매대 위로 코발트바이올렛 색의 물건이 삐죽 보였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든 싫어하든, 어쨌거나 신경 쓰이는 색 한 가지는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색감에 특히 민감한 나에겐 제비꽃 색깔이 그렇다.
파란색과 보라색 사이에서 고객들이 끊임없이 오더를 변경하는 골치 아픈 색이다.
‘저 색깔 물건은 흔치 않은데, 뭐지?’
운명이었던가 보다.
뭔가에 이끌리듯이 판매대로 다가갔다.
접시들이었다.
우리 집 찬장에 있는 얇고 하얀 접시가 아니라, 투박하다 싶을 정도로 도톰하고 테두리가 기하학적이었다.
바이올렛뿐만 아니라 온갖 색깔이 다 있었는데, 쨍하지 않고 엷은 톤이어서 화려하다기 보단 수줍다는 느낌의, 마치 질 좋은 면직물 같은, 빈티지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아주 소중하게 잘 사용해 온 것 같은... 만약 내가 사용한다면 훨씬 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까지 심어주는, 그런 접시들이었다.
‘갖고 싶어.’
숨을 헉 들이킬 정도로 강렬한 욕망이었다.
그런데 유럽산이라고?
점원에게, 이거 어디 거예요?
이태리 거예요. 그 옆에 있는 건 프랑스 산. 그 옆에 샐러드 볼처럼 생긴 큰 것은 스페인 산이었다.
아이돌 트와이스처럼 예쁜 애 옆에 예쁜 애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럽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던 내가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이라는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점원과 대화를 나누는 걸 보더니, 그가 당장에 사라고 했다.
그날 이후 언급조차 금기시되었던 ‘유럽’을 물건의 형태로나마 관계 속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싶어서였을까?
우리 둘 다 그날은 뭔가에 홀린 듯했다.
가격이 꽤 셌는데도, 테두리가 오골오골한 바이올렛색 ‘아이들을 둘이나 입양’했다.
“이쪽 귀퉁이에 샐러드 놓고, 여기엔 계란 몽글몽글하게 구워서 얹고, 새로 산 토스터기로 베이글 구워서 가운데에 딱 올린 다음 파마산 치즈 쫙 뿌려주면 끝내주게 멋지겠다.”
페이스북에 ‘좋아요’가 쏟아지는 장면이 절로 그려졌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교수 돈 말고 니 돈으로 사!
설거지를 하고 황사에 좋다는 도라지차도 마시고, 최신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도 듣고, 인터넷 뉴스도 보면서 뒹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 어머니에게 전화!
알았다 문자하고 곧바로 엄마 콜.
나이가 사십 대 중반인데 아직도 엄마다.
막내의 특권 같은 거라 집안에선 뭐라는 사람이 없다.
“제주도는 무슨.”
예상대로 일단은 거절이다.
“같이 여행 안 간지도 오래됐잖아. 며칠 바람이나 쐬고 와요.”
“교수도 같이 가냐?”
“그럼 같이 가지. 뭘 새삼스레.”
갑자기 말이 없으시다.
“돈은 누가 대고?”
역시 나왔다, 돈 얘기.
“얼마 전 알바 해서 짭짤하게 벌었어. 돈 걱정은 마셔.”
“무슨 알바?”
“가상 세계에는 할머니들은 모르는 기묘하고 신비한 돈벌이가 많답니다.”
또다시 이어지는 침묵. 수화기 저편으로 더 치밀하게 추궁해볼까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냥 넘어가요 쫌!
“한라산에도 갈 거지? 근데 신던 등산화 찢어졌다.”
휴... 다행이다.
아, 네에, 그러시겠지요. 등산복도 늘어져서 못 입으실 테구요.
알았다, 알았다, 다 사드릴 테니까 시간이나 내시라고 어르고 달래서 겨우 철쭉 피는 날짜 맞춰서 가기로 정했다.
“교수 돈 말고 니 돈으로 사!”
마지막 일침이다.
“내 돈이라니까.”
어쨌든 미션 컴플리트!
그에게 문자로 상황을 알리고, 잘했다는 답문자 받는 걸로 오늘 할 일 또 하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