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잖아!” 그 한 마디를 못해서

그 남자가 구스타브스베리를 사는 이유 8

by 선우비

* 이 작품은 소설입니다. 지명, 인물, 사건 모두 실제와 아무 관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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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잖아!” 그 한 마디를 못해서


엄마는 그를 직업으로만 불렀다.


“교수는 옆에 있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싶어도 항상 그런 식이다.

이름이 진혁이에요, 엄만 몇 번 말해도 그걸 못 외워?

그래요, 어머니. 그냥 자식이다 생각하시고 진혁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런데도 마이동풍이었다. 누가 뭐래도 교수였다.

필요해서 자식이랑 같이 산다니까 아는 척은 하지만, 살갑게 지내기 싫다는 태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어느 날 포항이라는 낯선 도시로 삶의 터를 옮긴다고 선언한 아들.

서울에도 일거리 많은데 왜 포항으로?

설마... 드디어 여자라도 생겼나 기대했는데, 일곱 살이나 많은 남자랑 산다고?

어떻게 같이 살게 됐니? 대학교수라면 직장 상사도 아니잖아, 날카롭게 캐물어도 회사 관계로다가 어찌하다 보니, 웅얼거리기만 했다.

둘 다 혼자니까 생활비라도 아끼는 건가 싶었는데, 이상하게 남편 제사에 꼬박꼬박 참여하네?

엄마에겐 “뜬금없이 저 사람이 왜?”라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거였다.


“어쩌면 우리 관계 아시고 그러시는 거 아니실까? 짐작은 하지만 차마 못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다잖아. 일단 말을 꺼내면 그 사실이 확정될 것 같아서.”


“우리 엄마는 그렇게 섬세한 분이 아니셔. 드잡이 질을 하면 했지. 그냥 내가 포항에 산다는 사실이 싫으신 거야. 자식이라고는 달랑 아들 둘인데, 명절이랑 제사 때 말곤 멀다는 핑계로 집에 잘 안 가잖아. 나에 대한 섭섭함에 덩달아 자기까지 싫으신 거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를 멀리하는 엄마의 행동엔 좀 더 이상야릇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재택근무로 바꿨지만, ‘괜히 걱정하실까 봐’ 가족들에게는 포항에 있는 게임회사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해왔다.

직장이 없다고 하면 집안일 있을 때마다 귀찮게 불러댈 테니 말하지 말자는 꼼수도 없지는 않았다.

갈수록 페이가 낮아지긴 했지만 게임 관련 일도 잊힐만하면 들어왔기 때문에 엄마한테 용돈 정도는 넉넉히 드릴 수 있어 의심을 살 일이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속여 왔는데, 작년에 한 달간 유럽여행을 가야 하니 더 이상 숨기기 힘들어졌다.

장거리 여행에 비상연락망은 필수라 형에게 직장 그만두고 유럽여행 간다 하고는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는데, 바로 옆에 계셨던 모양이다.

회사는 어쩌고! 소리치시길래, “얼마 전에 망했어. 그래서 기분 전환할 겸 여름에 유럽에 가보려고. 오래 일했으니까 나 자신에게 주는 상.”이라고 둘러댔다.


“걱정 안 해도 돼. 잠시 동안은 교수 돈으로 살아도 되니까.”


안심시켜 드리려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은 놀라웠다.


“그럼 지금 다른 직장 안 알아보고 있다는 얘기냐? 모아둔 돈은? 그 사람이 생활비 다 내는 거야? 나이도 창창한데, 거기서 그 사람 밥 해주면서 사는 거야? 그렇게 계속 살고 싶어?

그동안 설마설마하면서 말 안 하고 있었는데, 내가 다니는 절의 스님이 그러는데, 그 사람이 너 기 빨면서 사는 거란다. 집안 일 해줄 사람 필요하니까 젊은 너를 데리고 있으려는 거래.

그 사람이 너한테 용돈 하라고 돈 주지? 얼마 주니? 가정부 쓰는 값보다 많아?

어이구, 이 헛똑똑이야.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너 그렇게 남 좋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은 거야?”


스님이 용하네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뭐지, 이 전개는?


형은 내가 게이란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맘에 들건 안 들건 어쨌든 그를 가족으로 대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에게 그는, 무려 십 년 가까이 같이 살고 있는데도 아들 기 빠는 늙은 남자일 뿐이었다.

그동안 엄마에게 해드렸던 효도의 많은 부분이 그의 돈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기껏 요괴 취급이라니.

어차피 엄마는 이해 못 할 거야, 충격받아 쓰러지시면 네가 책임질래? 라며 엄마에게만은 말하지도 말고 들키지도 말라는 형의 말을 들은 결과가 이거였다.

요즘은 엄마가 즐겨보는 드라마들에서도 동성 커플이 종종 나오고, 새삼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혹시나 우리 관계를 들킬까 봐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막내답게 발끈하고 거침없이 말해버렸다.

그동안 엄마가 받은 뭐랑 뭐랑 뭐랑, 그거 다 ‘교수’가 사준 거야.

뭐 하고 뭐 하고 뭐 하고 할 때마다 돈 들어간 거? 그거 다 ‘교수’ 돈이야.

그러니까 요괴라고 하지 말고 자식처럼 대해줘요, 그 말이었는데, 결과는 완전 역효과였다!

우리가 거지니?로 시작하는...

아... 엄만 정말 다른 세계 사람이구나.

엄마의 정신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그 스님이란 작자가 진짜 기 빨아먹고 사는 요괴구나, 싶었다.


“앞으로 일절 그 사람에게 손 벌리지 마!”


가족에게까지 뇌물을 줘서 날 더욱 옥죄려는 술수니까 놀아나지 말란다.


“네...”


나의 완패였다.

“그 사람이 도대체 뭔데 우리한테 그렇게 해주는 건데?”라는 질문에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사위잖아!”

라면 간단한 걸, 그 한 마디를 못해서 그냥 빨리 직장 구해서 내 돈으로 효도하겠습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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