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은 긁어 부스럼!

그 남자가 구스타브스베리를 사는 이유 9

by 선우비

* 이 작품은 소설입니다. 지명, 인물, 사건 모두 실제와 아무 관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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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은 긁어 부스럼!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아시는 거야. 자식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커플 모임의 선배가 말했다.

양쪽 가족들에게 커밍아웃 한 커플이었다.


“그래서 내 아들이 관계를 숨기려는 그 사람이 좋게 보이지 않는 거지. 속아서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당연해.”


딱 엄마가 그랬다.

내가 약점이 잡혀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고, 그게 아니라고 하자, 다단계나 종교 같은 거로 얽힌 관계가 아닌가 의심했다.

의심에서 의심으로 넘어갈 뿐, 좋은 쪽으로 보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냥 확 말해버리지. 하고 나면 시원해.”


하고 싶죠. 하고는 싶지만...


“이해할 상황이 안 되면 모르고 사시는 게 행복하실 수도 있죠. 아들이 게이란 사실을 알고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거든요.”


그의 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커밍아웃 반대파였다.

커밍아웃은 긁어 부스럼!이라는 생각을 아예 신조로 삼고 있었다.

처음 만났던 게이가 커밍아웃하고 집에서 쫓겨난 사람이었단다.


“소문이 나서 직장에서도 잘렸거든, 그 사람.”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살기 힘들 것 같다며 진저리를 쳤다.

동거를 시작하고도 그는 계속 부모님이 주선한 맞선자리에 나갔다.

결혼, 손주로 이어지는 가족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죄를 그런 걸로나마 메꾸겠다고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싫었지만, 가족 문제에 관해서는 양보가 없었다.

결국 오십이 넘어서야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부모님도 그 정도면 할 만큼 하셨다 생각하셨는지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아, 그 집에서 나는 집안일도 해주고 학교일도 도와주면서 논문 번역하는 애로 통하고 있었다.

게임 어쩌고 했다가는 비행청소년 아니냐고 되물을 정도로 나이 든 분들이라 일종의 “서동(書童)”이라고 해두니 금세 이해하셨다.


“근데 걔는 언제까지 너한테 얹혀산다니?”


동거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의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밖에서 돌아오신 그의 아버지가 큰소리로 새 맞선상대를 찾았다고 말씀하시곤, 이번엔 진짜 너도 결혼하고 싶은 상대일 거라면서 확신에 차 외치셨다.

그쪽에서 집도 마련한단다 하시더니, 대뜸 나의 행방을 논하신 거다.


“얹혀사는 거 아니에요. 방세 다 낸다구요.”


그가 변명해 준다.

물론 그 딴 거 낸 적 없다.


“그래도 이번 혼사 성사되면 정리해야지.”


더 있다가 들키면 음흉한 놈이라고 욕할까 봐 재빨리 화장실에서 나와 에헤헤 웃으며, 결혼하면 저야 교수님에게 시달리지 않아서 좋죠, 아휴, 빨리 장가가셨으면 좋겠다, 맞장구를 쳤다.

그날 게이바에 가서 얼마나 술을 퍼마셨던지.

그날 이후 그의 본가엔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엄마가 앞으로 자기가 주는 돈 안 받는대.”


여차저차해서 그렇게 됐다고 하자 그는 나의 막내다움을 타박했다.

그냥 둘러댈 것이지 괜히 발끈해서 일을 크게 만들어. 넌 그게 문제야.

타초경사였단다.

엄마가 뱀이라고?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런데 엄마 뒤에 뱀이 있는 건 맞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있어, 뱀 같은 땡중이. 하여간 이 나라 종교는 뭔가 잘못 됐어. 못돼 처먹은 것들이 너무 많아.


결국 직장을 잃었다는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짭짤한 알바를 하는 것처럼 꾸몄다.

하지만 엄마는, “잔말 말고 당장 올라와서 형 일이라도 도와. 왜 거기서 알바를 하고 있어!”

택배 일은 언제나 사람이 궁해서 난리란다.

월급은 적지만 안정된 직장이란다.

진짜?

혼자 살다가 돈도 없으면 나중에 어떻게 할래, 엄마는 그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것아!


아... 미친다, 미쳐.

엄마, 저는요, 형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어요.

형하고 형수가 맞벌이로 버는 거나 그 사람 혼자 버는 거나 비슷해요.

형은 돈 벌어서 자식들에게 다 쏟아붓지만 우린 둘이 다 써요.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사고, 해외여행 쉽게 가고, TV에 나온 맛집은 꼭 찾아가서 먹고 와요.

아무리 멀어도, 심지어 해외에 있어도.

조카들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출입문 앞에 세워둔 자전거 보고 멋지다면서 사달라고 형수에게 막 졸랐었잖아요.

그거 형수 한 달 월급하고 비슷한 가격이에요. 내 생일선물이었다구요.

아들 기 빨린다고 푸념할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교수네 엄마라구요.


“딱 이렇게 말해주고 싶더라니까.”


엄마의 황당한 논리를 설명하자, “하하하하하하.” 그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 진짜 열받아. 이참에 우리도 확 말해버릴래?”


“오히려 아무 의심 안 하시니까 난 더 좋은데? 그렇게 아시는 게 앞으로도 더 편할걸?”


“그건 그렇지만... 뭐야, 이게. 좋은 일 해도 욕만 먹고.”


“왜 그래, 자꾸. 나 못하는 거 알면서.”


그는 더 이상 이야기를 끌고 가고 싶지 않다는 얼굴을 했다.

그래, 저 얼굴... 기억난다.

연애 초기에 자주 본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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