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구스타브스베리를 사는 이유 11
* 이 작품은 소설입니다. 지명, 인물, 사건 모두 실제와 아무 관련 없습니다
그 사람이 맞기는 한 걸까?
그의 고백에 따르면, 서너 달 전에 데이팅앱의 존재를 우연히 알았고, 호기심에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먼저 말을 걸어온 젊은 남자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 사실을 하필이면 파리에서 맞이한 십 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들켰다.
파리에 와서부터 계속 몸이 아프다며 호텔에서 쉬고 싶어 했다.
장기 해외여행을 대비해 일을 몰아서 했더니 이제야 탈이 났나 보다, 미안해,라는 말에 뭐라 타박도 못하고는 알았어, 혼자 놀다 오지 뭐, 반강제로 거리로 내몰렸다.
옆에서 간호해줄게 해봤지만, 오히려 쉬는 데 방해된다는 말에 설득당해 버렸다.
그 기묘한 느낌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토록 노골적이었는데.
그날도 아침부터, 미안해, 오늘도 힘드네, 라며 찡그리는 그의 얼굴이 안쓰러워 쉬라며 밖으로 나왔다.
내일도 아프면 어쩌지? 십 주년 기념일인데!
금전적으로는 대부분 그가 책임져온 생활이었다.
점점 줄어드는 일거리에서 들어오는 돈은 엄마 용돈 드리고 외식 좀 하고 나면 감쪽같이 사라졌다.
재테크는 모두 그의 몫이었고, 나는 생활비 통장 말고는 따로 통장을 만들어 둘 필요도 없는 간단한 생활이었다.
큰 욕심이 없어선지 딱히 부족한 것도 없이 살았다.
그래도 십 주년 기념일만큼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보고 싶어서 꽤 무리해서 돈을 모았다.
떠나기 전에 미리 예물로 유명한 브랜드의 시계를 사서 몰래 가방에 숨겨뒀고(아, 지금 생각하니까 또 눈물 난다, 그의 손에 장착돼 보지도 못하고 센(Seine ) 강으로 던져진...),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별 2개짜리 레스토랑도 예약해 두었다.
게이프렌들리 가게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국에서 온 게이커플이고 십 주년이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부탁한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샴페인과 셰프 특선 디저트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답변까지 받아서 자못 의기양양한 상태였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우리 인생에서 최고의 날이 될 터였다.
마레 지구 골목을 좀 걷다가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호텔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느라 내가 들어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깜짝 놀라게 해 줘야지.
그때 침대 위에 있던 그의 스마트폰이 밝아지면서 메시지가 떴다.
― 아직 다 안 씻었어요?
스마트폰을 들었다.
한참을 노려보다가 메시지창을 위로 올렸다.
사진들이 주르르 나타났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찍어서 그에게 전송했고, 그도 자신의 몸을 찍어서 상대에게 보냈다.
사진들 사이사이에 순전히 상대방을 흥분시키기 위한 목적의 저속한 문장들이 샌드위치 재료처럼 맛깔나게 끼어있었다.
어디서 따로 교육받았나 싶을 정도로 흥분되는 말들이었다.
얼굴이 나오지 않는 사진들이었지만 몸 상태만 봐도 상대방이 나보다 적어도 열 살은 어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와 처음 만났던 시절의 나이.
시간을 보니 바로 직전에 주고받은 것들.
그는 방금 전 끝낸 열락의 흔적을 씻어내기 위해 샤워를 하는 중이었다.
손이 너무 떨려서 스마트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보지 마, 보지 마!
미래에서 온 내가 큰소리로 설득했지만,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는 메시지창을 위로... 위로 올려가며 그들이 나눈 대화를 모조리 읽어버리고야 말았다.
보지 말았어야 했거늘.
― 이제 겨우 파리? 아직 오려면 멀었네. 외로워요.
― 나중에 돌아가면 국내여행이라도 같이 갈까?
― 칫, 거짓말. 나한테는 그 정도 시간 못 낼 거면서.
― 진짜야.
― 거짓말이래도 좋다. 올 때까지 잘 참고 있을게요.
― 이거 보면서 참아봐.
둘의 섹스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부감쇼트로 찍힌 영상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고 얼굴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점이 될 만한 것을 남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테리어가 낡은 전형적인 시골 모텔, 그런 곳에 가는 사람도 아니었다.
이런 거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절대 아니었다.
나에게는 재미로라도 섹스비디오 한번 찍어보자고 한적 없었다.
나도 싫어했다. 그런 유치한 것들. 그런 저속한... 핸드폰 저편의 상대와 나눈 화장실 낙서보다 못한 천박한 말들.
그 사람이 맞기는 한 걸까?
내가 모르는 낯선 이의 모습이 휴대폰 안에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신경을 휘감은 것은 분노가 아닌 공포였다.
욕실 문이 열리고 그가 나왔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고, 내 손에 들린 자신의 휴대폰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