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지도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by 파란동화


비박을 하면 가장 좋은 점은 잠에서 깨자마자 말갛고 고운 얼굴의 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해를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그런 날은 잠자리가 적당히 불편했더라도 잘 잔 것처럼 기분이 개운했다.



비박(Biwak) 은 원래 군사용어로 제2차 세계대전이 만들어낸 단어인데, 독일어로 '텐트를 이용하지 않고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하룻밤을 지새는 일' 을 뜻한다. 엄밀히 따지면 텐트없이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산 중턱에서 하는 야영을 가리켜 모두 '비박' 이라고 한다. 정해진 야영장이 아닌 산 속 아무데서나 하는 야영을 비박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붕과 벽이 있는 곳에서 자는 것 보다는 불편하고 추울 수 밖에 없지만 자연을 오롯이 느끼며 잠들 수 있는 것은 비박이라야만 가능하다. 나는 특히 등산로에서 굳이 마을로 하산하지 않고 한뙈기 땅만 있으면 몸을 눕혀 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나는 백두대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건 좋은데! 다 좋은데! 물을 구하지 못해서 밥을 못 먹는 이 상황은 어찌해야 할까? 지금까지는 편한곳으로만 등산을 다녀서 딱히 '물'에 대한 고민을 해본적이 없었다. 국립공원 대피소야 두말 할 것 없이 대피소 인근에 식수대가 있다. 백두대간 첫째날 길을 잃고 엉엉 울어야 했을 때도 그 길 끝에 계곡을 만난 덕분에 물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나는 원래 물 친화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마시는 물이라곤 식사 직후에 마시는 몇 모금이 전부였고, 커피나 차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마시는 물 뿐만이 아니다. 나는 수영이나 해수욕에도 감흥이 없었고 심지어 샤워를 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종일 등산으로 땀 범벅이 된 몸으로도 얼마든지 불편하지 않게 잠들 수 있었다. 한마디로 비박에 최적화된 인간인 것이다! 푸하하~



그래서 나는 물도 딱 한병만 챙겨왔다. 평소에 물을 전혀 마시지 않으니까 등산을 하면서도 잘 마시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지리산 설악산 종주를 할 때도 종일 등산에 물 500ml 한병이면 충분했다. 평소엔 500ml면 충분했지만 백두대간 스케일을 감안해서 700ml 물병을 챙겨왔으니 이정도면 물이 부족할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백두대간 지도에는 곳곳에 '水' 표시가 있지 않았던가. 물이 부족하면 지도의 '水' 표시를 찾아서 물병을 채우면 그만인 것이다!



... 라고 생각했으니... 이정도면 무모함을 넘어 아예 뇌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란 인간은. 심지어 쌀을 씻어 밥을 지어야 할 것이 뻔한 데도 '水' 표시조차 없던 조침령에서 비박을 하다니...



이번의 4박5일 배낭을 싸면서 첫날 식량으로는 밥을 챙기고 둘째날 이후의 식량으로는 쌀을 챙겨왔다. 그래서 어제 저녁은 물이 없어도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보니 물통에는 400ml 정도의 물이 남아있었다. 어제 하루종일 걷고 저녁까지 먹고도 400ml 나 남아있었으니... 내가 정말 물을 안마시긴 안마시는구나.



한끼 정도 굶는다고 죽는거 아니니까, 일단 종주를 이어가다가 물을 만나게 되면 거기서 밥을 지어 늦은 식사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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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종주를 시작한지 2분도 안되어 '백두대간 조침령' 표석을 만났다. 어젯밤에 조침령에 닿기 위해 그렇게 걸었는데, 해는 져서 어둡고 얼마나 더 가야 조침령이 나타날지 알 수 없어 전망대에서 비박을 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곳과 이곳은 불과 1~2분 거리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조침령 표석까지 와서 어제의 대간을 마무리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어제 내가 잠을 이룬 전망대가 비박을 하기에는 훨씬 좋은 장소였다.



이러니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멈춘 곳이 목적지 바로 코 앞인 경우도 있고



목적한 것을 이룬것 보다 이루지 못한 것이

더욱 나은 결과를 선물하기도 한다.



내 인생의 목표는 뭐였을까?

내가 원한 것은 사랑과 행복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것만 있으면 다른것은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내 인생에는 사랑이 없었다.

적어도 나의 기억이 형성된 이후로는 없었다.

나를 낳아준 엄마는 내가 세 살이 되던 2월에 생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고, 이후로는 알코올의 노예였던 아버지와 새엄마의 폭력 속에서 그저 죽지않고 '목숨을 부여잡은 것' 만이 내가 한 전부였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행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나의 영역 밖이었다. 친구관계도 쉽지 않았고 직장과 사회생활, 그리고 몇번의 짧은 연애에서도 내게 남은 것은 상처와 고통 뿐이었다.



'사랑' 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신기루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유니콘처럼 말이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유니콘이 왜 내게만 없는거냐고 고집부리는 꼬마같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을 두고 힘을 빼고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정말이지 모든 힘이 다 빠져버렸다.

살아갈 힘도 이유도 목적도 다 사라져버렸다.



나의 세상에서 '사랑'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었으니

사랑과 행복만이 유일한 목표였던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덩그러니 백두대간에 홀로 서있게 되었다.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사람 많은 도시에서는,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할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 가끔은 숨도 못 쉴 정도로 목을 조여올 때가 있었다. 나는 숨 쉬고 싶었다. 제대로 숨 쉬고 싶었다. 그래서 산이 편했다. 산에는 어차피 사람이 없으니 사랑할 대상이고 뭐고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토해내듯 내쉬었다.

그래! 이렇게 숨을 쉬고 싶었다.

이렇게 제대로 숨을 쉬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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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침령에서 쇠나드리고개로 이어지는 곳에는 걷기 좋은 데크길이 연결되어 있었다. 가을 단풍과 멀리 보이는 산능선을 바라보며 산책하듯 걸었다. 아침을 먹지 못했는데도 이렇게나 좋은 길이 나타나주니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좋고 단풍도 좋고

조망도 시원하고 데크길도 예쁘다.



쇠나드리고개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면 '바람불이 삼거리'를 지나 '구룡령'으로 가야 하는데,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는 바람불이와 구룡령 이라는 글자가 각각 다른곳을 가르키고 있었다. 뭐지? 어디로 가야하지? 바람불이를 따라가야 할까? 아니면 구룡령 쪽으로 가야할까?



아! 그래, 리본이 있었지!

길이 헷갈릴 때는 이정표가 아닌 백두대간 선행자들의 리본을 따라가야 한다. 나는 리본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게 되었다. 종주를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리본을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조침령에서 구룡령으로 가는 길에서는 나무벤치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종주길도 비교적 완만한데다 2.5km에 한번씩 나무벤치가 있는 쉼터가 나타나서 편히 걷고 편히 쉴 수 있었다. 가을경치도 좋고 길도 좋고 물만 찾으면 딱인데, 이 좋은 길에 물 찾을 곳이 없다.



분명 지도엔 물 표시가 있는데 표시된 곳에 당도해도 물을 찾을 수 없거나, 이정표가 없는 곳에서는 지도에 표시된 곳이 이곳이 맞는지 아닌지 도저히 알 방도가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다 정오쯤, 앞에서 다가오는 등산객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아줌마 아저씨 한두분이 보였는데 그 뒤로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나타난다. 국립공원이 아닌 곳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너무나 반가워서 먼저 인사를 드렸다. 어제 오늘 이틀동안 산에서 만난 첫번째 사람들이었다. 그분들은 백두대간 구간종주를 하는 산악회인데 오늘의 팀원은 12명이라고 했다. 나는 남쪽으로 향하는 남진 중이고, 그분들은 북쪽으로 향하는 북진 중이었다.



나는 그분들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혹시 오다가 물 만나셨어요? 물 나오는 데 있나요?"



그분들 말씀으로는 지금이 갈수기라 지도에 물 표시가 있어도 실제로는 없는 경우가 더 많다며, 지도에 표시된 물은 여름기준이라 하셨다.



"왜? 아가씨 물이 없어?"



"네... 물이 없어서 오늘 아침도 못 먹었어요..."



그랬더니 두 세분이 나의 700ml 물병에 물을 가득 채워주셨다. 물을 구했다는 생각에 신나하고 있는데 옆에 아주머니가 한마디 더 하셨다.



"그거 갖고 되겠어? 물 한병 더 줘."



그러자 나의 물병에 물을 채워주시던 아저씨들이 아예 900ml짜리 생수를 통째로 건네주시는 것이 아닌가!



"아가씨, 비박도 해야하는데 이거 다 가져 가."



그러면서 떡과 누룽지까지 나눠주셨다.



"산에서 밥 없으면 누룽지 먹고 물만 마셔도 한끼 해결되니까."



그렇게 생명과도 같은 물과 떡과 누룽지를 나눠주시고는 갈 길이 바쁘다며 서둘러 떠나셨다. 너무 급하게 떠나셔서 어느 산악회인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만약 그때 그 분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물이 없어서 하산을 해야 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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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물이 필요한 그 시점에 정확히 내 앞을 지나간 사람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지? 이후로도 백두대간을 타는 내내 딱 필요한 순간 딱 필요한 도움을 받게되는 일이 많았다.



이런 우연이 흔히 있는 일일까?

이 사람들이 실존하는 사람들이 맞는걸까?

간혹 나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진짜 사람이 아닌지도 몰라.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신神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내 앞을 지나간 것인지도 몰라.



주5일 등산제를 마치고 금요일에 서울로 돌아오면, 주말을 이용하여 블로그에 백두대간 종주기를 올렸었다. 그때 산악회분들에게 받았던 생수와 누룽지 사진을 올렸더니 나에게 누룽지를 나눠주셨던 분이 친절한 댓글을 남겨주셨다.



그분들이 실존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놀라웠는데 나의 블로그에 친히 댓글까지 남겨주시다니! 일반 등산에 비해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이렇게 연결되기도 쉬운건가 싶었다.



나에게 생명같은 물을 나눠주신 분들이 어느 산악회인지 정말 궁금했는데 그분들은 서울 광진구의 '동부산악회' 라고 했다. 그리고 그분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씩 나의 블로그에 댓글과 응원을 남겨주신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종주를 이어가던 나는 그분들이 나눠주신 떡을 점심 대신 먹으며 길을 이어갔고, 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허덕이며 지도만 들여다보면 나의 눈에 다시 단풍의 아름다움이 담기기 시작했다.



같은 길, 같은 풍경인데도

물을 구하기 전에는 그저 그랬던 단풍들이

물을 구하고 나자 삽시간에 '절정'의 풍경으로 변했다.



넓지도 좁지도 않게

딱 한명의 사람이 걷기에 알맞은 백두대간 등산로가

다시 '너무나도 좋은 숲길' 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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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전곡봉을 향해 한참을 오르다 숨을 고르기 위해 뒤돌아 봤더니 어느덧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었다. 원래는 '갈전곡봉' 에 도착해서 비박을 하려 했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으로 다리는 풀릴대로 풀리고 식사를 제대로 못했더니 배가 너무 고팠다.



한참이나 계속되던 오르막 끝에 나무의자와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이쯤에서 종주를 마무리 짓기로 하고 텐트를 쳤다. 텐트를 설치하고나자 빠른 속도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길을 더 이어가지 않기로 한 것은 참으로 잘 한 결정이었다.



육개장 블럭으로 국을 만들고 낮에 받은 누룽지를 넣어 국밥을 해먹었다. 이것이 오늘의 첫번째 식사였다. 그분들이 물을 나눠주지 않았다면, 떡과 누룽지를 나눠주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백두대간을 이탈하여 마을을 찾아야 했을 것이었다.



아! 좋아라... 보름에 가까워 온 달만큼 내 마음도 따뜻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 오늘의 백두대간 >

고산자 지도/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총 24구간 중
22구간
(남쪽 끝이 1, 북쪽 끝이 24)

진행 구간 : 조침령 비박 (강원도 인제와 양양의 경계) - 쇠나드리고개 - 연가리골샘터 - 왕승골안부 비박 (강원도 인제와 양양의 경계)

진행 날짜 : 2011년 10월 11일 / 화요일

episode16.png?type=w1 * 지도 : 고산자의 후예들/ 백두대간24 *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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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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