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그 시절에는 꼭 장래희망 쓰는 칸이 있었다. 본인과 부모의 희망 장래희망.
나의 장래희망 칸은 늘 변덕스러웠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가
글을 쓰는 작가였다가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이었다가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걸 이뤄가고 있다
역시 꿈은 안 꾸는 것보다 일단 꿔보는 게 낫다.
막내로 오랫동안 자라면서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했다. 엄마 옷을 잡아당기며 뒤로 숨기기도 했고 남들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서 나는 글이 좋았다.
특히 일기 쓰기를 좋아했다.
나의 대나무 숲 그 자체였다.
엄마한테 혼난 날 엄마가 무서워하지 못했던 말도 적고 친구가 나에게 던진 속상한 말도 담겼다.
부끄럽다고 티를 못 냈지만 사실 좋아했던 마음들도 고스란히 적었다.
백일장이 열리면 과학상자, 그리기, 글짓기, 물로켓
많은 대회가 열려서 신청을 해야 했다.
나는 항상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 준비물이 간단한 글짓기를 선택했다.
그 시절에는 선생님이 나눠주시는 빨간 원고지에
한 칸 한 칸 써 내려가는 그 기분이 좋았다.
큰 따옴표는 한 줄 한 칸을 띄어야 했는데 그게 알 수 없게 그냥 좋아서 내 글에는 대화체가 많았다.
책도 많이 읽었다.
나는 주로 다른 이들의 인생 이야기나 소설책을 좋아했다.
그 당시 일본 작가가 쓴 오체불만족이라는 두터운 책을 한참 읽고 해리포터 시리즈를 밤을 새우며 봤던 기억이 난다.
나의 인생 이야기도 과연 책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책이 나오는 날을 꿈꾸었다.
여전히 손 편지를 좋아한다.
편지는 이런저런 이유로 매일 전하지 못하는 나의 진심을 진득하게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나 깨나 불조심.
옛날에는 이런 표어 대회도 많았다.
저 시절 나의 표어는 무엇이었을까?
적어라도 놓을 걸 그랬다.
고민하고 다듬고 적었을 텐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등학교 때는 항상 자습시간에 글짓기 대회가 열렸다. 누군가는 그 시간에 공부를 하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무조건 대회 신청을 했다. 노래방보다 더 후련한 쉬는 시간이었다. 정말 해방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글쓰기는 나에게 해방이자
마음껏 표현하는 자유이자
나 자신의 진심을 살피는 대화이자
선물이다.
마음이 담긴 글만 쓴 건 아니다. 생각에 논리를 담은 글도 썼다. 지금 보니 정서가 담긴 글보다 상의 순위권은 좀 낮았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정서와 논리의 글을
모두 쓰고 있다. 에세이와 연구논문을 쓰는 작가이자 연구자인 것을 보면 말이다.
논리가 담긴 글은 생각에 힘을 더해준다.
그리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면서 목소리에 힘이 생겼다.
전국토론대회 결승에서 정말 많은 관객들과 심사위원, 그 사이에서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는데도 떨리지 않았다. 부끄럽다고 숨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남편과 매일 토론을 한다.
그렇게 글을 쓰던 소녀는
지금 브런치를 쓰고
연구논문을 쓰고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