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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사기꾼 Jan 07. 2020

안녕, 낯선 독자

“출판사에 다니신다고요?”

“네, 편집자예요.”

“아…그러시구나.”

“…….”

“근데요, 책은 어디서 사는 거예요?”

“네에? 음… 서점이라고… 책을 파는 상점인데요. 그러니까… 교보문고 같은… 이 근처에 있어요.”

“아항.”

“…….”


친구는 서둘러 카페를 빠져 나왔고, 소개팅남의 번호는 영원히 지워졌다.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친구의 소개팅 후기에 나는 그야말로 멘붕이 왔다. ‘뭐라고? 책을 어디서 사냐고 물었단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한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ㅇㅇ일보 광고 보고 전화했는데요, 그 책 좀 사고 싶은데 어디서 파나요?”


신간이 나와서 신문광고를 하고 나면 반드시 사무실로 이런 전화가 온다. 책 광고 하단에 작은 글씨로 ‘책은 서점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사실 이런 전화는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라는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정보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는지 충격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혹시, 설마, 서점에서 책을 판다는 것은 업계종사자들만 아는 비밀정보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책을 기획하고 만들고 파는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업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보통 사람보다는 잘 알게 되므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이질감을 느끼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자주 충격에 빠지는 것은, 책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대단한 최첨단의 테크놀로지가 필요한, 매우 전문적인, 석박사 이상 아니면 알기 어려운, 국가고시에 통과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그런 상품이 아니라 누구라도 집에 한두 권은 꽂혀 있는 일상의 물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친밀한 일상의 물건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는가. 내가 모르는 어떤 새로운 8차원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인가!


“와, 책 많네. 나 하나 주라.”


남의 집에 가서 책장을 보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남의 집에 가서 ‘와, 옷 많네. 나 하나 주라.’ ‘와, 냄비 많네. 나 하나 주라.’라고 말하진 않을 텐데? 


SNS에 자신이 쓴 책이 나왔다고 홍보하는 저자의 글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댓글창을 눌러보면 지옥이 펼쳐진다. 


“책 나왔구나. 축하해! 하나 보내라.”


축하해,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어째서 ‘하나 살게’가 아니라 ‘하나 보내라’인가. 

스치듯 지나가는 말들을 보며 사람들이 얼마나 책을 하찮게 여기는지 자꾸만 실감하게 되어서 절망에 빠지곤 한다. ‘은퇴 후 여생을 책이나 쓰며 보내겠다’는 말을 보면 또 정신이 혼미해진다. 값을 치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게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생을 책‘이나’ 쓰면서 보내겠다는 다짐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책을 만들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독자다. 이 책을 누가 읽을까, 왜 읽을까, 어떻게 읽을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던지며 독자를 생각한다. 책이란 당연히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책의 시작도 독자요, 끝도 독자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상상하는 독자는 존재하는 것일까? 


종종 이렇게 ‘책을 어디서 사냐’ ‘책 하나 주라’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평생을 책과는 아무 상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열혈독자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현실일 것이다. 그 깨달음은 사실 새삼스러운 현실 인식 타임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홀로 외딴섬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마땅히 읽을 사람들이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에 가득 차서, 이 책은 이런 사람이 읽을 거야, 이 책은 저런 사람이 읽을 거야, 하는 무의미한 예측과 추정만을 남발하며 허상을 좇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사람이고 저런 사람이고 자시고 애초에 읽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책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치열하게 매진하다가도, 책이 이토록 하찮은 취급을 받는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은 때론 너무 쓰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했던 독자는 어쩌면 우리와 가장 멀리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와 저 세계가 서로 닿을 수 없는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가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때마다 낯선 기운에 흠칫 놀라 뒷걸음질 치는 풍경을 떠올리니, 역시 너무 쓰다. 


일러스트: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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