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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사기꾼 Jan 09. 2020

오세요, 출판사!
하세요, 편집자!

모교에 취업 특강을 두 번이나 한 적이 있었다. 아니, 프리랜서 주제에 ‘취업’ 특강이라니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후배들에게 ‘출판편집자’라는 직업을 소개하는 개념으로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결국 수락하고 만 것이다. 


나도 대학시절에 출판편집자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금 덜 헤매고 미리 준비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니 문예창작과 후배들에게 이걸 열심히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강의 준비를 했다. 문예창작과를 나와도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통장을 채우는 일과 영혼을 채우는 일 사이의 괴리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너희의 전공이 그저 예술혼만을 충족시키는 일이 아니라고, 그러니 힘을 내고 열심히 해보자고!


그런데 우선 대학을 졸업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요즘 대학생’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종종 신입사원을 맞이해보면 확실히 내가 다니던 시절과는 많이 다르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예창작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겠지. 어쨌든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서 입학했을 테니 다들 작가를 꿈꾸고 있겠지? 


내가 대학에 다닐 때 대부분의 동기와 선후배들은 ‘등단’이라는 관문을 뚫고 작가가 되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시, 소설, 희곡 등 장르별로 서로의 습작을 읽어보고 합평하는 소모임도 활성화되어 있었고, 매년 신춘문예 시즌(그러니까 2학기)이 되면 등단을 준비하는 이들이 한방에 모여 ‘신춘합숙’을 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등단을 하지 못하고 회사에 취업하거나 전공과는 무관한 일로 뛰어든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착찹해지고, 나는 꼭 열심히 글을 써서 작가가 되어야겠다 다짐하곤 했다. 


이런 후배들에게 편집자가 되어 출판사에 입사하라고 권하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특강의 주제는 “작가가 되기 위한 습작의 시간 동안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 작가가 된 다음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여야 한다. 졸업을 한다고 곧장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니 습작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려면 직업이 필요하다, 등단을 해서 작가가 된다고 해도 전업작가로 산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니 역시 직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작가로서의 자아와 직업인으로의 자아가 겹쳐지는 직업이 좋다, 그것은 바로 출판편집자! 

이렇게 특강의 틀을 짜놓으니 매우 만족스러웠다. 좋아, 자연스러워. 이제 말만 잘하면 돼!


후배들은 약간 기운이 없어보였지만 원래 강의 들을 때는 다들 동태눈이 되는 거니까. 역시 나는 마음이 넓다. 

먼저 내가 어쩌다 출판편집자가 되었는지 썰을 풀었다. 문창과 나온 딸이 취직 못하고 빌빌댈까봐 걱정스러웠던 엄마는 요리학원에 다녀보라고 권했는데 그 말에 충격을 받아 반드시 전공을 살리겠다고 다짐했다는 롱롱롱타임어고우 시절 이야기를 꺼내자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어쩌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내가 딱히 글을 잘 쓰는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문창과 출신인데 언젠간 뭐라도 끄적이며 살면 좋겠으나 그렇다고 작가가 되자고 습작만 하고 살기엔 먹고 살 일이 걱정이고 영혼 없는 회사원이 되기는 싫은데 월급은 따박따박 받았으면 좋겠고 할 줄 아는 게 글 쓰고 책 읽고 하는 거라 사회에 나가면 그저 문송할 뿐인데 그래도 전공 살려서 재미있고 보람찬 일을 업으로 삼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푸슉푸슉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약간 힘을 받은 나는 그때부터 열변을 토했다. 출판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왜 문창과 출신이 편집자가 되기에 유리한지, 편집자가 되면 뭐가 좋은지 등등 편집자 만세 수준의 예찬을 늘어놓았다. 지나친 편집자 예찬은 작가가 되려는 아이들에게 또 반감을 심어줄 수 있으니 여기서 살짝 또 다른 희망을 안겨주어야 한다. 


‘편집자가 된 후 등단을 하지 못하더라도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은 열려있다. 내가 바로 산 증인이다’ 뭐 이런 오그라드는 발언을 하며 최근에 집필한(?) 책을 보여주었다. ‘저건 뭔데?’ 하는 눈빛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어쨌든 여러분, 편집자는 일도 하면서 돈도 벌고 자신의 글도 쓸 수 있고 훗날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도 많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여러분, 오세요, 출판사! 하세요, 편집자!


이것은 흡사 무대를 막 마친 스탭드업 코미디언의 자세였다. 아이들을 한 번 쭈욱 훑어보았다.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초점 없는 눈빛이었지만 대한민국 강의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니 개의치 않기로 했다. 문청의 피가 끓고 있는 이 후배들 중 누군가는 편집자가 되어 출판사에 입사하고 작가가 될 것이다! 


“연봉이 얼마나 되나요?”


고요한 공기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들며 질문이 날아왔다. 

네? 연봉…이요? 많지는 않지만 어쨌든 꾸준하게 월급을 받을 수 있고… 출판사는 대체로 영세한 규모가 많아서 근무환경이 아주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노조도 있고… 열심히 투쟁하면 연봉도 더 나아질 수 있고 정년이 길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처럼 프리랜서로 일할 수도 있고 에 또….

아이들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갔다. 횡설수설 답변을 이어가는 동안 등줄기에 흘러내린 땀이 파사삭 얼어붙는 것 같았다. 강의를 마치고 내려오니 특강 담당자가 내게 이렇게 귀뜸했다.


“요즘 문창과 학생들, 등단해서 작가 되는 것에 별로 관심 없어요.”

“아…….”


일러스트: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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