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실험 : 단식(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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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시간 30분만에 첫 식사, 허무함
실제상황
가방에 검정 텀블러 하나가 누워있다. 오래 기다리게 한 그것이다. 그것에 손을 뻗는다. 손에 쥐니 들어 올려진다. 텀블러 뚜껑을 연다. 채도가 낮은 녹색 음료가 보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식용 불가한 음료였지만 지금은 마실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 내 손에 들려 있다. 텀블러 입구에 입을 가져다 댄다. 음료가 입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천천히 고개를 뒤로 젖힌다. 혹여 흥분하지 않도록 조심히 흘려보낸다. 차가운 음료가 혀를 지나 목젖에 닿는다. 찔찔. 찔찔하고 꿀꺽 그리고 찔찔찔, 다시 꿀꺽. 38시간 30분만에 음식이라 불릴만한 것이 들어왔다. 기다림은 무색하다. 마땅한 것이 제시간 맞춰 들어온 기분이다. 조급하긴 했지만 의외로 담담하다.
여전히 검진센터를 못 벗어나고 있다. 의자에 가방을 내려둔 채 나는 ‘이젠 뭐든 먹을 수 있네. 먹을 수 있는 거네’ 하더니 해방감 비슷한 감각을 한다. 그러나 기쁨보단 허무함이 훨씬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걸 나는 느끼고 있다. 허기가 몰려올 때마다 이를 거두기 위해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향을 태우거나 집안일 하던, 정신일도(精神一到) 하지 않기 위해 흘린 지난 땀방울은 잊었다. 하니까 되는구나 해 볼만한 거구나. 할 만하다. 어느새 단식에 익숙하다 못해 능숙한 사람이 되어 있다. 한 모금 축였으니 이젠 나갈 수 있겠다. 어디든 갈 수 있겠다.
폭식이 찾아왔느냐 묻는다면
정녕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 쩍쩍 메마른 입으로 그것을 한 입 떠 마셨을 때의 ‘유레카!’ 따윈 없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단식이 끝나자마자 이걸 먹고, 저걸 먹고, 저것도 먹고, …. 하겠다는 식(食)에 대한 포부 따위도 없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일정 시간이 지나자-생의 첫 실험이자 풍요로 넘치는 현대 사회에 겪지 않아도 될 가혹한 경험이었음에도-나는 단식이 삶의 일부인양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단식이라는 파도에 올라타 서핑을 즐기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게 언제였나 생각해보면 단식 24시간이 지나 잠에 들때쯤이던듯하다. 하물며 풍선처럼 겉은 부풀었어도 안은 텅 빈 상태라,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가벼움을 누리게 된 때이기도 했다. 이 몸이면 금세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아가 정착한 곳은 쇼핑몰, 사고 싶었으나 ‘살 빼고 사자’하며 미루던 그 옷가지들을 죄다 살 수 있을 것도. 그러다 차가운 두유 라떼 한 모금에 꿈에 깼다. 허무하다.
너무나 당연하여 어떤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지는 반응들이 있다. 가령 고기를 먹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달지 배가 고프면 뭐라도 챙겨 먹어야 한달지, 쓰러지지 않도록 먹음으로 몸을 부축해야 한달지.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고 사업가이자 지식 관리탐구자 청쟈는 말한다. “공부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설을 바꾸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가설을 바탕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단식을 통해 가설을 바꿔보고 싶었다. 오히려 비움으로서 몸에 회복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걸, 나의 가설은 바뀌어 있었다.
먹었구나, 배가 부르구나
집에 도착하니 낮 12시였다. 라떼로 가볍게 위를 달래준터라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가는 버스 안, 창밖을 바라보며 ‘첫 끼로 무얼 먹을까’를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면 하던 메뉴 고민을 그날도 그저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무엇을 먹었느냐면 평소대로 채식 위주의 식탁을 차렸다. 며칠 전 모 인스타그래머가 올린 매콤 콩나물 잡채가 줄기차게 아른거렸다. 어렵지 않게 메뉴를 정했다. 거기에 밥을 곁들였다.
금세 만든 일품요리를 눈앞에 두고도, 부른 배를 어쩌지 못해 1/3은 남겨야 했다. 위가 줄었다. 얼마 먹지 않아 불편함이 찾아왔다. 허리를 조이고 있던 바지 단추를 풀어 여유를 주어도 소용없다. 불편함에 언짢아지려고도 한다. 그러나 조금 더 넣었다. 넣고 씹어 삼켰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지는 않았으니 폭식은 아니었지만, 분명 두 손에 담길 만큼 작아진 위와 그 위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보다 많은 밥과 반찬을 먹었다. 일종의 보상기제 혹은 주인 마음대로 다시 찾아오게 할지 모를 엄동설한에 대비해 뇌가 먹으라고 명령을 내린 건지도 모른다. 실제로 단식 후 식사량이 느는 현상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배가 불렀다. 포대 자루 같아진 나는 더 이상 하늘을 날 자신감과 용기가 없다. 공복일 때와 비교하니 다소 버겁다. 소화를 위해 온 에너지가 위로 쏠린다. 불편하더니 잠이 오기 시작한다. 몸이 말랑말랑해져 소파에 철석 눌러붙는다. 그대로 잠에 든다. 거실 창에 들어오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태아자세로 잠을 잔다. 한낮이지만 그래도 될 것만 같다. 어쨌거나 첫 단식에 성공 했으므로.
중장시간 단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던 건 아마 이들 덕일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