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실험 : 단식(8)
- 이전글 :
두 번째 단식, 여유
결론부터 말하면 한결 수월했다. 첫 단식만큼 탁월한 효과는 없었지만, 첫 단식만에도 몸이 많이 재생되어서라고 생각했다. 정화시킬 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중장시간 허기에 제법 적응했던지, 이젠 배고파도 그러려니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깟 배고픔은 곧 허망하게 끝나버릴 것이지. 물러갈 것이지. 역대 최장 시간 단식, 38시간 30분까지 버텨보니 38시간 미만의 것은 껌 같은 취급이었다. 그것도 개껌. 그렇게 몰려오는 배고픔을 가볍게 무찌를 힘이 내게 생겼다. 배의 허기와 몸의 반응에 온 신경을 기울이지 있지 않게 되었다. 몸소 체험함으로 배웠듯 쓰러지지 않았고 어지럽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나는 단식하는 이로움을 얻기도 했다. 후에 말할 테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몇 신체 반응을 눈으로 보았다. 인체의 신비라는 다큐멘터리를 손은경 감독, 손은경 주연, 손은경 관객으로 찍고 보고 있다.
첫 단식 땐 음식만 보면 환장할까 싶어 먹는 장면만 나와도 유튜브 영상을 껐다. 음식 냄새, 하물며 음식 찌꺼기까지 시야에 아른대지 않도록 일절 차단했고 온 집안이 인센트 향으로 가득하게 두었다. 그랬던 내가, 지점토 한 덩어리만한 자신감이 몸에 붙었는지 두 번째 단식날엔 김밥말이에 도전했다.
김밥을 말았다
밥 표면에 고소하게 퍼지는 참기를 냄새, 짭짭하면서 시큰하게 퍼지는 단무지 향, 번지르르 잘 익혀진 채 썬 당근, 간장에 잘 조려진 우엉. 이 모두를 식탁에 올려둔 채 나는 서 있다. 남편 훈이 오기 전 만들어 짜잔하고 내어둘 음식의 재료들. 며칠 전 사다 놓은 김밥을 만들 심사였다. 잘 차려진 재료들에게선 오케스트라 연주 같은 냄새가 났다. 각자 낼 수 있는 최상의 음으로 냄새를 퍼뜨리면 곧 한 곳에 모아져 내 코를 자극했다. 한 조각 썰어 입에 가져다 넣어도 면죄부가 적용될 만한 그런 자극이었다.
그러나 무색무취로 김밥 말이에 몰입했다.
‘이건 어차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야.’
차곡차곡 열 줄을 쌓기까지 나는 아무 욕심도 없었다. 지금은 내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포기는 미련을 지우고 이는 깔끔한 해결책이 되어준다.
그래서 나는 김밥을 곧 강아지 사료쯤으로 대할 수 있었다. 우유에 타 먹는 코코볼처럼 뭔가 맛있을 것도 같은데 그래 봐야 나를 위한 먹거리는 아니지. 내 것은 아닌 거지.
18시간 공복
허나 두 번째 단식은 비교적 짧은 32시간 만에 끝났다. 첫 단식보다 수월했지만, 약해진 단식과의 연대감 그런 것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3일간도 하루에 단식하는 시간을 두었다. 매일 18시간씩이었고, 왜 18시간이냐 묻는다면 별다른 이유 없이 그 시간이 가장 적절하게 느껴져서이다. 실은 두 번째 단식을 마친 뒤로는 단식을 유지할 의도는 없었다. 다음 주 이맘때쯤 다시 중장시간 단식을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공복이 주는 평온함에 매료되었나보다. 몸이라는 소화 공장이 풀 가동되는 게 성가시게 느껴졌다. 먹지 않았다면 이리 바삐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래서 가능한 긴 공복을 유지한 것이고 정말이지 그 시간만큼은 어떤 질척거림도 없이 편안했다.
단식기간, 어쩐지 차분해지기는 했다.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는 것, 이따금 글을 쓰는 것 외엔 특별히 명랑한 활동은 하지 않았다. 아직 운동하고 싶지도 않았다. 의사 제이슨 펑은 단식 중에 운동을 하라고도 권한다. 오히려 해야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두 번째 단식까지 운동은 언감생심, 가만히 소파에 앉아 정적인 하루를 보내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단식에 조금 더 적응을 하고는 반드시 운동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한편 가지고 있었다. 못 할 것 같았는데 되는구나. 일종의 답습을 통해 단단히 굳어버린 틀 깨부수기가 이번 단식의 일정 이유기도 했으므로 같은 이유로 운동을 머뭇거리고 있는 거라면 이마저도 해봐야 했다. 그리고 세 번째 단식을 진행하던 날, 나는 헬스장에 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