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실험 : 단식(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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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중 운동
*세 번째 단식(10월 11일, 화, 36시간)
단식 날 운동하라며, 운동을 적극 장려하는 그 조언을 책에서 봤더랬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나는 단식 중에도 활동적인 움직임, 즉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식 중이라는 핑계로 일상생활에 어떤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는 것, 두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운동을 장려하던 그 한 단락이 아니었다면 단식날은 곧 몹시 차분해져야 하는 날로 엉뚱한 가설을 세우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 번째 단식과 두 번째 단식엔 감히 엄두가 않나 하지 못하였다. 대놓고 말하면 뇌가 쫄면처럼 쫄아 있었다. 그래서 마치 정신수양이라도 하듯 소파에 붙어 앉아 책을 읽고 차를 마시다 영상을 보고, 그 상태 그대로 침대로 옮아가 잠을 청했다. 무의식중 쓰러질 것을 염려했었던 것 같다.
단식을 두 번쯤 하고나니 강한 자신감이 생겼다. 하면 된다는 것, 해내었다는 것. 그때로 웅크렸던 뇌가 기지개를 펴지더니 활동을 받아들일 여유가 되었다. 세 번째 단식엔 헬스장에 갔다. 오후 3시쯤이었으니 단식 17시간째였고 여느 주초가 그렇듯 대근육에 해당하는 하체를 털었다. 주말 휴식 영향으로 월요일이나 화요일엔 가장 생기가 돈다.
할 만하다.
운동 중 그리고 후 뱉은 외마디, 할 만한데. 정말이지 할 만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랜 헬스인으로 쇳덩이를 들고 내리며 온 근육에 부하 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왔다. 그날 평소와 달랐던 것은 오직 단식날이냐 아니느냐의 차이 뿐. 무게를 들었고 그것은 여느 때와 같은 중량의 것이었다.
실은 근육운동으로 바란 게 하나 있다면, 깊은 수면었다. 고된 운동한 날은 잠이 잘 온다. 온 몸이 탈탈 털려 잠이라도 자지 않고야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 단식한 날, 그러니까 배고픈 날은 아무래도 렘수면에 가까운 얕은 잠을 자게 된다. 자면서도 허기를 느끼고, 허기가 한꺼번에 왕창 몰려 올 때면 잠을 깨 몇 시인지 확인하게도 한다. 이내 잠에 들지만.
그리고 바람과는 달리 곯아떨어지지 않았다.
최적의 환경을 찾아가는 중
단식과 운동을 동시에 해내며, 나는 또 한 번 지레짐작과 닮은 고정관념을 깨부술 수 있었다. 이럴 거야-그래서 할 수 없을 거야, 그럴 거야-그래서 가능했던 걸 거야. 시도하기 전 결코 알 수 없을 결과들을 미리 짐작하는 ‘거야거야 병’. 이 병이 악성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진실 된 결과 얻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며, 가설의 오류는 의심하지 않고 마치 진실인양 믿도록 해 곧 우리를 가설 속에 가둔다는 점 때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어떤 결과 값을 확인하지 않았음에도. 이번 단식 중 운동을 통해 나의 ‘거야거야 병’을 일부 치료 할 수 있었다.
단식 생활에 적응과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림을 알고 있었다. ‘생활’을 단식 뒤에 가져다 붙인 것도 일회성으로 끝낼 해프닝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가장 덜 고통스러우며 가장 생산적이며 일상리듬에 방해되지 않던 가장 효율적인 시나리오는 일주일에 한 번 36시간 이상의 단식, 나머지는 평상시대로 채식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단식은 식사와 식사 사이 두는 ‘공복 텀’이 핵심이라고 한다. 단식 시간에 따라 몸이 단계적인 반응을 보여서다. 그래서 16시간 이상을 권하곤 하는데 단점이라면 단식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거세지는 후기반응들이다. 일종의 후폭풍(그 폭풍과 같은 이야기는 뒤에 실려있다). 그래서 내가 정한 최적의 시나리오는 후기반응을 최소화하며 가장 오래 버틸 수 있을 만큼 단식, 그러며 일상에 지장 없기를 기준으로 했다. 각자 몸 상태 생활양식이 다르므로 모두가 같을 순 없겠다.
작은 반응2 : 일종의 부작용
1) 변비
단식으로 후기반응이 온다. 말했듯, 일종의 후폭풍 같은 것. 식사와 식사 사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거세고, 내 경우 다음과 같은 크고 작은 폭풍들이 몰려왔다. 우선 변비가 왔다. 작년 4월에서 5월로 넘어가던 즈음부터 비건이 된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채소와 야채 그리고 통곡물 위주로 식사를 하는데 건강한 식습관 덕에 변비를 앓지 않았더랬다.
그러다 단식을 하고 변비가 시작되었다. 약 3일쯤, 단식이 끝나 위가 팽팽해질 만큼 많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응가는 나오려 하지 않았다. 이는 단식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의사 제이슨 펑이 말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쾌변은 언제나 유쾌상쾌통쾌한 것. 쾌변하던 그날이 그립기는 했지만 그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4일째 되던 날 그를 만났다.
2) 먹는 시간만 기다린다
단식이 유독 힘에 부치는 날이 있다. 전 단식 날과의 텀이 길지 않을 때, 단식 중 운동했을 때. 이런 날이면 배고픔이 그저 지나가도록 두지 못하고 애걸복걸을 하게 된다. 제발 꺼져줘. 안 그래도 지금 굉장히 배고픈 상태거든.
이런 날 맞는 가장 큰 단점이라면 식사 개시 시간만 눈 빠져라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온 신경이 1분 1초에 가 있고 정말 잡을 수만 있다면 시간의 멱살을 잡아 3시간 뒤로 내팽개쳐 버리고 싶다. 평소보다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것도 같다. 단식을 왜 했을까 싶은(정화하겠다며), 화학 첨가물 그득한 그런 거.
3) 위가 작아졌다
위는 줄어들기도 늘어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정신력만 있다면 더 먹을 수 있음’은 건 그 때문이라던 김준현의 말도 떠오른다. 더 많이 먹기 위해 정신을 단련해온 그였는지 모르겠다.
위 사이즈가 줄었다. 단식 후 첫 식사에 분명히 알아챈다. 반찬 고작 몇 입, 밥 몇 숟가락만으로 위가 참을 불편함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먹는다. 배가 부른데, 조금 더 넣는다. 오물오물 씹히는 이 식감이 좋고 어쩐지 얼마간은 더 감각을 즐기고 싶다. 그래서 위가 저항하는데도 무시한다. 곧 소화가 힘들어진다.
다소, 위장병
그래서 위장병이 생겼다. 보식하지 않고 갑자기 음식을 밀어 넣었을 때, 그리고 위가 부담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양을 먹었을 때 생겼던 그 비정상적 아픔이 나를 찾아왔다. 위에 가스가 찼다. 어떻게 알았냐면 뭔가 부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왜 부은 듯했냐면 위가 보이지 않는 몸속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있어서였다. 몸 안에 위치한 장기들은 정상이 아닐 때만(아플 때만) 자기가 어디에 달렸는지 신호를 주곤 한다. 이번엔 말짱하던 위였다. 여기 생채기가 난 것도 같다. 이전에 없던 쓰림이 생겼다.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의해야 할 것만은 같았다. 단식이 끝난 후 충분한 보식 시간을 갖자. 꼭꼭 씹어 위에 부담을 줄이자. 왕창 먹지 말자.
하지만 단식으로 얻은 소기의 성과도 분명 존재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