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시간 단식을 가능하게 한 것들

생체실험 : 단식(7)

by 손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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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m종국은 결코 깐깐하지 않다

첫 단식, 38시간 30분

배고픔은 파도처럼 몰려오지만 이내 사라지는 것

온 몸의 세포를 감각하다

주체할 수 없어 '흥분'이라 불릴 뿐이지

단식을 통해 가설을 바꿔보고 싶었다





중장시간 단식을 가능하게 한 것들



1) 포기 : 미련이 사라지다


단식은 의지부림이라기 보다 ‘어차피 못 먹어’라는 일정시간 음식과의 단절이라고 생각한다. 철저한 처절한. 단절은 가능성을 간보게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라 말한다. (그 시간 동안은)내 것이 아닌 것이다. 참는 것이라기보다 먹을 수 없음에 적응하는 것이다.

어쩌면 포기에 가깝다. 때로 포기는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 수월해진다.



2) 마시다 : 따뜻한 차를 마셔라


허기를 느끼고, 차를 마시며 이를 지나가도록 가만히 놔두고, 곧 무시 못 할 허기가 다시 몰려왔을 때 또 차를 홀짝이고, 이를 반복하며 그저 흘러가기를 바란다. 저항할 힘을 잃고 소강되기를 바라며.

식(食)을 단절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이 회복하고 있음을 되뇌이면 좋다. 단식은 공복을 유지하는 것 뿐아니라 유지하는 시간이 관건인 작업이다. 먹지 않음과 흘러가는 시간의 콜래보레이션이라고나 할까. 고로 단절하는 ‘시간’에 의미가 있다. 이것만 잊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단식에 성공할 수 있다.



3) 환경 정리 : 단정한 공간 차분한 내면


주변을 청결하게 두고, 특히 음식은 저 멀리 치워두는 것이 유리하다. 너저분하지 않고 단정한 공간에 차분한 내면이 깃든다. 외부환경이 내면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인센트 같은 향을 피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짜고 달고 매운 음식 냄새가 아니라 집안을 은은함으로 가득 채울 그런 향이면 충분하다. 기분마저 환기된다. 그러니까 주변을 최대한 정화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4) 몰입 : 오히려 바쁘게, 집중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시간이 훌러덩 가버리는 일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섭취가 없으니 대사를 아껴야 한다는 생각은 오해에 불과하다. 오히려 바삐 움직임이 공복감 잊는데 탁월하다. 바쁠 때 허기를 잊어 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몰입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가령 대청소를 한달지, 영화를 보러 간달지, 책을 본달지, 친구와 수다를 떤달지. 세월아 네월아 하며 흘러가는 1분을 보챌 것이 아니라 시간가는 줄 모르는 일에 단식 일을 보내보라. 어느새 단식 종료가 임박해 있을 것이다.



5) 쫄바지 : 배를 쫑기게 하라


옷차림에 긴장을 주면 확실히 고픔이 덜해진다. 보통 타이트하고 몸의 자율성을 빼앗아가는 종류의 옷이 그럴 것이다. 그 중에서도 쫄바지 입을 것을 권한다. 쫄바지는 오직 소재의 쫄쫄감을 이용해 착용을 유지하게 하는 옷인데(안 그러면 후루룩 벗겨져버림), 이 쫑김이 배를 쫙 잡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며 몸에 다소 긴장이 붙고 위가 줄어든 듯한 느낌도 받는다. 배에 압박감을 주면 확실히 입맛 떨어지는 데에 도움이 된다.



6) 장소 : 긴장되는 곳에 가라


이번엔 옷으로 긴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장소’로 조성하는 방법이다. 허리를 곧추 세워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곳에 있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진다. 장소가 주는 압도감 때문이겠다. 그러한 장소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디든 좋으니 긴장하게 만드는 곳에 가보자.



7) 동기 부여 : 나는 왜 단식을 하는가


마지막으로 제이슨 펑의 조언을 전하자면 ‘사람은 각기 다른 동기로 움직인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경우엔 정화와 재생, 건강을 목적으로 하지만 누군가에겐 노폐물 제거(지방은 곧 저장된 노폐물이므로, 이를 제거하는 일종의 ‘감량’을 말한다)가 될 수 있다. 그들에겐 단식을 통해 살이 빠진다며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할 수 있다. 약해진 면역력으로 아파진 이들에겐 재생과 회복 측면을 강조하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식을 통해 일어난다. 그러니까 단식을 하면 된다.





작은 반응1

단식하며 작은 반응들을 만났다. 기록할 만한 것들, 다음은 그런 것들이다.



1) 불안과 안정


일로 바빠, 건강 검진 때문에, 그 밖의 이유로 평소 굶주려 본 시간 이상을 의도적으로 굶게 되면 불안 비슷한 감정에 휘말릴 때가 있다. 현존하는 실재 불안이라기보다 호르몬 작용일 거라 생각한다. 전시상황이라 판단한 몸이 보내는 일종의 신호 같은 거. 내 경우는 단식 38시간이 흐른, 건강검진 센터에서였다. 지금 떠오르는 건, 식은땀이 나려던 순간 ‘더 먹을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스쳤다는 것이다. 첫 단식이었고 첫 경험이었음에도 비교적 장시간 단식을 유지했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머지않아 안정된다. 뿌연 안개처럼 삽시간에 퍼진 생각을 이성으로 진정시키면 그만이었다.



2) 미친 생산성


하루 종일 단식을 하고 난 다음날 아침 7시, 약간 들떴다.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 해냈다는 성취감 따위가 뒤섞여 곧 피니시라인을 앞에 둔 마라토너 같은 황홀감에 빠졌다. 그때, 나는 이 기분을 주체하고 싶지 않아 급히 작은 방에 마련한 작업실로 가 하루짜리 ‘단식 생활’에 대한 글을 썼는데 고작 20분 만에 A4용지 1.5매를 채우기도 했다. 34시간째 공복이었고 그때까지 먹은 것이란 우롱티, 맑은 커피. 그것이 전부였다.


정신이 맑고 또렷했다. 무엇보다 민첩하고 활동적이게 되었다. 내가 통통볼이라면 이 건물 6층까지 뚫고 올라갈 것만 같았다. 내 평생 이런 생산성을 만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여태 몰랐던 내 초능력을 발견한 것처럼 글을 썼고 매일 이 능력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종종 단식을 해야겠다며, 두 번째 단식을 결심한 계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에너자이저 기운은 그날 밤까지 이어졌다. 11시가 되도록 일을 해도 지치지 않았다. 오밤중 스쾃 100kg을 칠 기세였다.


그렇게 첫 단식을 성공했다는 것에 대한 자기 긍지가 높아진 나는 두 번째 단식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멀티버스 세계로 접속하기 위해 ‘희한한’ 행동을 하라던 웨이먼드의 대사가 떠오른다. 내겐 그것이 단식이었을까. 이틀이 흘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