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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Apr 28. 2020

거장들의 마지막 숨결

Rudolf Serkin, Paul Badura-Skoda


피아노 정식 명칭은 Pianoforte이란다. 작은 소리를 의미하는 Piano와 큰 소리를 의미하는 Forte의 합성어인데, 18세기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그 이전 세대의 건반악기인 쳄발로와는 달리 소리의 강약 조절이 용이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같은 건반악기이지만 현을 튕기는 대신, 은 나무 해머로 때려서 내는 소리인지라 건반을 누르는 속도를 조절하고 동시에 페달을 사용하면 다양한 음색과 음량의 조절이 가능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이 그만큼 넓은 장점이 있다.


피아노는 물론 바이올린과 함께 서양음악을 대하는 악기이다. 18세기 초반에 출현하기 작하여 19세기 후반에야 완성된 현대의 피아노는 어쩌면 가장 완벽한 악기일지도 모르겠다. 작지 않은 음역대, 소리에 대한 폭넓은 제어, 그리고 풍부한 울림은 든 음악 장르에서 요한 역할을 하는데,  진가는 편성에서 더욱 돋보인다. 히 성악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솔로 연주에 피아노 반주가 빠지지 않는 것이 그냥 어쩌다 생긴 관행 일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거장이라고 부를만한 18-19세기 작곡가들 대부분이 상당수의 다양한 솔로곡들을 남겼는데,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그리고 드뷔시까지, 그들의 피아노 작품만 따라가도 이 한 세기 반 동안의 고전음악을 진화를 엿보기에 충분하다. 물론 바흐 덕후인 작가는 평균율, 프랑스 조곡, 영국 조곡, 푸가의 예술, 토카타와 인벤션 등등 그의 수많은 키보드 솔로만으로도, 흡사 무한 리필되는 커피처럼 인생의 반려가 되지만, 간혹은 조금 더 따듯하게 위로해 주는 작품들을 찾기도 한다.


다른 작곡가들의 피아노 작품 중에 작가의 최애작들을 꼽으라면, 19세기 거장,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가 작곡한 각기 세편씩의 마지막 곡들이 되지 않을까 한다. 세 거장들의 이 마지막 작품들을 듣다 보면 항상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작곡가들임에도 이들 작품 간에 이질감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토벤이 남긴 서른두 편의 피아노 소나타 중 그 절정은, 많은 애호가들에게는 그리고 특히 음악 비평가들에게는, 29번째인 Op.106 Hammerclavier일 가능성이 높다. 9번 교향곡만큼이나 거대하고 위압적인 대작이다. 이에 비하여 마지막 세곡인 No.30-32 (Op. 109, E major; Op. 110, A flat major; Op. 111, C minor)의 경우 결이 많이 다르다. 


마치 자기가 왜 거장인지를 확인 주려는 듯 심포니 9번이라는 대작을 작곡하던 시기인 1820대 초반 몇 년에 걸쳐 작곡된 이 작품들은, 베토벤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데 황혼기 접어든 자신을 되돌아보는 감성에 가득 차 있다. 선구적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고전적인 Hammerclavier에 비하여 그 형식부터 전혀 다른데, 예를 들어 30번 소나타의 4분여의 짧고 잔잔하지만 깊은 흡인력을 보여주는 첫 악장과 역시 짧지만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강한 주장을 하는 두 번째 악장은, 함께, 흔히 그 자체로 기승전결이 있는 흔한 소나타의 첫 악장처럼 느껴진다. 이어지는, 테마와 여섯 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세 번째 악장 역시 특이한 형식인데, 결과적으로 이 30번 소나타는 정형을 벗어난 두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모습에 가깝다.


사실, 30번부터 32번까지를 쭉 듣다 보면 세편의 독립적인 소나타들 이라기보다는 긴 호흡을 가진 하나의 작품집럼 들린다. 30번의 감성적인 마지막 변주와 못지않게 아름다운 31번의 첫 악장자연스레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오며, 31번 3악장의 아드레날린을 품은 피날레는 32번 첫 악장의 마치 깊은 한숨과 같은 첫 두 음으로 단번에 정리된다. 마지막인 322악장 이 세 작품을 되돌아보듯, 혹은 자신의 인생 그 자체를 되돌아보듯, 깊지만 잔잔한 관조로  일관한다. 그의 후기 사중주(Op. 130-133)와 마찬가지로, 흔한 이백 년 전 음악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세련된 그런 곡들이다.


이들 소나타들의 음반을 단 하나 고르라면 작가는 단연 Rudolf Serkin의 1987년대 비엔나 실황 앨범을 꼽을 것이다. 믿기 힘들게도 이 당시 80세 중반의 나이였고, 또한 실황이다 보니 자잘한 실수들도 없지 않았겠으나, 그럼에도 거장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연주이다. 특히 실황 앨범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녹음이 매우 잘 된 음반이기도 하다. 당시 두 번의 연주회가 있었다는데, 이 두 번의 녹음을 적절히 조합한 게 아닐까 한다. 협주곡과 실내악 음반은 비교적 다양하게 찾을 수 있으나, 유독 솔로 앨범이 구하기 어려운 양반이어서 특히 소중한 녹음이다.


이 작품들의 녹음으로는 비교적 최근인 Koroliov의 음반, 아래에서 소개하는 Badura-Skoda의 음반, 그리고 앞서 글에서 "침 튀겨가며" 칭찬을 늘어놓은 임현정의 음반 등도 있지만, 30년 넘게 들어온, Serkin의 명료한 이 연주가 내게는 아직은 가장 편안하다. (그의 아들인 Peter Serkin도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널리 알려진 피아니스트이니, 잘 구별하도록 하자.)




슈베르트 역시 많은 피아노 솔로 작품을 남겼는데, 20여 편의 소나타들 중에는 D958 (C minor), D959 (A major), D960 (B flat minor) 세 작품 일컬어 흔히 그의 마지막 소나타들이라 한다. 베토벤보다 한 세대 아래인 슈베르트가 주로 활동한 시기는, 실제로는 베토벤의 말년과 상당히 겹친다. 베토벤이 사망한 1827년에서 불과 1년 후 요절한 그의 짧은 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마지막 소나타 세편은 모두,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828년에 작곡된 것이지만, 실제 출판은 그로부터 10년이 더 걸렸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영향을 특히 깊게 받은 작곡자 중 하나로, C minor와 A major 소나타에서는 위의 베토벤의 가장 마지막 소나타인 No. 32와 No. 31의 테마를 그대로 차용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의 지막 세 소나타 역시의 경우 베토벤의 경우처럼 마치 하나의 작품집인 듯 내부적인 유사점이 적지 않다. 다만, 베토벤이나 아래 이야기할 브람스의 마지막 곡들에 비하여 조금은 더 드라마틱하고, 특히 마지막 두 작품에서는 조금 더 비장하게 다가오는데 그가 아직 30대의 젊은 나이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아마도 그 형식에 있어서는 당시나 지금이나 상대적으로 더 잘 알려졌을 베토벤의 중기 소나타들에 더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한편 이들 소나타들이 작곡될 1820년대 당시의 피아노는 사실 현대의 그것과 많이 다른데, 이들 초기 형태의 피아노를 요즘 Forte Piano라고 부른다. Pianoforte와 Forte Piano라는 두 명칭이 모두,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쳄발로'라는 의미의 이태리어 'gravicembalo col piano e forte'부터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의아다. 이 Forte Piano들은 현대의 피아노에 비하여 규모도 작고 사용되는 현도 더 얇은, 즉 전체적으로는 쳄발로에 가까운 형태인데, 아주 초기에는 4옥타브로 시작하였다가 19세기에 와서야 88=52+36개의 키가 7과 1/3 옥타브를 커버하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작가의 경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으나 강한 타건에 이어, 댐퍼를 떼어놓아 길게 울림이 흐르는 피아노 소리를 유독 싫어하는데, 아마도 19세기 심포니들의 4악장들을 꺼려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겠다.  소리만 들어달라는 절규랄까? 부담스럽다. Forte Piano는 현으로부터 시작되는 울림이 빠르게 감쇄되는 특징이 있어, 그 소리가 매우 편안하게 다가다. 물론,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장난감 피아노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한편, 어디에나 있는 근본주의자들은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피아노 곡들은 모두 그 당시의 피아노, 즉 Forte Piano로 연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예술을 화석화시킬 뿐, 듣는 이들의 즐거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다. 작가가 이들 옛 피아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그 아름다운 음색 때문인데, 울림은 적으나 사람의 목소리에 가까운 아기자기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Forte Piano의 이런 음색은, 흔히 가곡의 왕이라고 칭송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작품들에 특히나 잘 어울린다. 요즘은 새로운 음반이 많이 나오지 않는 대신, 이전 세대 명 연주자들의 음반들을 모아 하나의 전집으로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는 패키지가 많아졌는데, Paul Badura-Skoda가 1990년대에 Forte Piano로 녹음한 슈베르트 소나타들을 모아 놓은 전집 또한 명반의 반열에 들만 하다. (녹음에 사용된 Forte Piano들은 1810년에 만들어진 Donath Schoefftos, 1846년 Georg Haska, 1823/1826년 Conrad Graf 432/1118, 그리고 1846년의 Schweighofer 등이다.)


소나타 전집 이외에도, 즉흥곡(Impromptu)들이 실린 음반과 'Wanderer' Fantasie와 Moment Musicaux이 함께 실린 음반도 있는데, 어쩌면 이들이 조금 더 전형적인 슈베르트의 곡들이다. 전집이 부담스러우면 대신 이들 개별 음반을 먼저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혹여, 그 아기자기한 소리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이 마지막 소나타들의 일반 피아노 녹음 역시 넘쳐나도록 많다. Alfred Brendel의 연주들이 정석이라면 정석이고, Badura-Skoda가 1970년 초반에 일반 피아노로 연주한 소나타 전집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 마지막 세 소나타 중에도 가장 아름다운 D960의 경우 최근 새로 발매된 Krystian Zimerman의 음반과 Lazar Berman의 1972년 런던에서의 실황 녹음을 조금 더 추천하고 싶다.




특이하게도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들이 19세기 내내 대중에게는 알려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위 비평가들과 음악가들에게도 외면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의 대표적인 예외가 브람스였다고 한다. 막상 브람스 자신은 소나타 형식의 피아노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고, 이보다는 Intermezzo, Rhapsody, Ballade 등 조금 더 자유로운 형식의 악장들을 가진 솔로 작품집들이 더 많이 있다.


첫 심포니를 발표할 때까지 수십 년이 걸렸지만, 단 4편 만으로도 어쩌면 베토벤을 넘어선 그에 걸맞게, 죽음을 몇 년 앞두고 1892-1893년에 작곡된 피아노 소품집들인 Op. 117, 118, 119 역시 비교의 대상이 많지 않다. 최소한 작가에게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들 이외에는 말이다. 이중 아름다운 것으로 널리 알려진 118번의 경우 역시 Clara Schuman에게 헌정되었다. 평생을 사모하던 그녀가 세상을 뜨기 3년 전이다. 총 열세 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집이며 10편의 Intermezzo를 포함한다.


Intermezzo란 이름은 원래 음악과 음악 사이를 채우는 보조적인 '간주"를 의미하는데, 아마도 오페라 같은 작품에서 쉬어가는 데 사용하는 형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브람스의 시대에 와서는 소나타의 비교적 정형화된 형식을 벗어난 다양한 시도 사이에서 흔히 사용된 자유로운 여러 형식 중 하나에 붙이는 이름인 모양이다. 특히 브람스의 경우 특별히 감정적이지 않은 곡들을 모두 Intermezzo라고 부른 모양인데, 그래서인지 이 소품집들에는 간간히 Rhapsodie, Romance, Ballade 등의 이름을 가진 조금 더 열정이 실린 악장들이 흩어져 있다.


소품집들은 각기 여러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소나타나 심포니와 달리 개개의 악장이 독립적인 곡들이고, 동시에 베토벤의 마지막 세편 소나타들처럼 세 소품집 전체가 한 줄기 강물과 같이 흘러내린다. 대편성 관현악에서 그 진가를 주로 찾게 되는 브람스이지만, 이 피아노 소품집들이 주는 잔잔한 울림에 그의 작품세계에서도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한 곡 한 곡이 은은히 빛나지만, 듣는 이에게 감동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유려하게 흘러가다가, 이따금 소리 없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갈 뿐이다. 혼자 깨어난 일요일 이른 아침, 커피 한잔과 창 밖의 멋진 풍경이 있다면 더욱 어울릴 작품들이다.  


내게는 항상 늦가을인 브람스의 그 어둡고 차분하지만, 안에 꽁꽁 숨겨진 열정이 주는 그 복잡한 느낌을 표현해 낸다는 것은 웬만한 연주자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항상 든다. 작가가 주로 듣는 음반은, 역시 Paul Badura-Skoda의 연주인데, 1987년에 발표한 앨범이다. 사실 이 앨범 역시 30여년전 미국 유학시절, 주말마다 두세 시간 씩 음반가게를 뒤적이 찾아낸 것인데, 이제 와서 보면 당시 이렇게 운 좋게 얻어걸린 명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옆의 이미지에서 보이듯이 흔하지 않은 레이블이라 지금은 국내 유통망에서는 사실 구하는 게 매우 어렵다. 하지만 해외 직구는 아직 가능한 듯하다. 피아노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브람스를 좋아한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구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여기서도 그는 특이하게도 60여 년 된 Bosendorfer사의 Imperial 피아노를 사용했다고 한다. 현대 피아노의 대형 스케일이지만, Steinway 나 Yamaha 같은 일반적인 피아의 명료한 음색보다는 조금 더 깊은 소리를 내는 악기인 모양이다. 88개의 키가 아닌 97개의 키를 사용하는데, 추가된 현들은 물론 대부분의 악보에서는 직접 사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음 역에 추가된 현들 피아노의 소리를 다르게 만든다는데, 이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단순히 한 번의 타건에 하나의 현 소리 내는 것이 아니라, 공명을 통해 악기 전체의 떨림, 그리고 특히 주변의 현들이 같이 떨려주는 효과의 합이기 때문일 것이다. (Bosendorfer는 원래 오스트리아의 피아노 제조업체인데 지금은 Yamaha의 소유로 넘어다.)


그 이외에도 Op. 119 네 악장이 부록처럼 함께 포함된 Serkin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앨범 (후자는 G. Szell과의 협연이었다.)을 흔히 즐겨 듣는다. 최근 Koroliov가 브람스의 Intermezzo들만 모아서 연주한 앨범이 새로 나와 몇 달을 기다려 확보했는데, 과한 울림을 가진 녹음 상태가 실망스러워서 아마도 당분간은 다시 Badura-Skoda의 신세를 질 것 같다.

  



Rudolf Serkin은 1903에 보헤미아에서 출생했고, 유명한 음악가 집안인 Busch가의 Irene아내로 맞았다. 많은 유럽의 학자와 음악가들처럼 1930년대 말에 미국으로 이민을 하였고, 필라델피아 Curtis음악 학교와 Marlboro 여름학교/페스티벌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흔히 '음악가의 음악가'라고 불리는, 후대의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Paul Badura-Skoda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로서, 특히 Mozart, Beethoven, Schubert 전문가이다. 이들 세 작곡가의 피아노 소나타를 전곡, 일반 피아노와 Forte Piano로 한번 이상씩 녹음한 것으로도 잘 알려진 연주가이며, 동시에 음악학자이다. 모두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이 귀한 음반들은 아마 수세기 후에도 회자되고 재생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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