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페세 Mar 06. 2020

하찮은 날의 꽃선물

꽃은 아마 두꺼운 얼굴로 받는 선물일 거야.


꽃을 받는다. 요 며칠.


철 없던 시절엔 꽃보다 먹을 게 좋았다. 오랫동안 아무렇게나 말했다. 

꽃을 얻다 써, 금방 시드는 걸. 꽃 주는 거 세상 별로야. 

그러면서도 때가 되면 남에게 꽃을 주곤 했다. 


꽃을 받아본 적은 언제인가? 

사무실 이전했다고 거래처에서 리본 붙여 보내온 꽃 화분 말고는 오래 전 졸업식, 

그리고 십육년 일한 뒤 퇴사할 때 옆 부서에서 준 꽃다발. 

근 십년은 되었구나 꽃 선물.


내가 뭐라고 꽃을 받는가, 주는 것도 없이. 

염치 없고 서늘한 마음. 그러니 내가 잘해야지 하는 마음. 그리고 따뜻하고 이상한 위로. 

이래서 꽃을 주는구나, 사람들이. 이래서 꽃이 좋구나. 그랬다. 요 며칠.


“그냥 드리고 싶어 드려요.” 

“어쩌다 엄청 싸게 파는 꽃집을 찾아냈다니까요.” 

“제 꺼 사는 김에 하나 더 샀어요.” 어쩌고 하면서 내미는 꽃을 

그래서 나는 뻔뻔하게 받는다. 


꽃은 아마 두꺼운 얼굴로 받는 선물일 거야. 그렇게 생각한다.


꽃을 받는 법도 잘 모르지만, 꽃을 받으면 무엇으로 갚아야 하는지도 나는 모른다. 

아무 일도 없는데 꽃 받는 건 처음이라서. 

아무 날도 아닌 날, 하찮은 날의 꽃 선물.


꽃의 날들이 고요히 떠내려 간다. 



이전 07화 결혼식 사회자의 법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