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라면 향이 좋아야지. 비록 알아주진 않아도
근처를 지나기만 해도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는 식물 중 대표적인 게 더덕이다.
여름 숲길을 걷다 그 독특한 향을 맡으면 으레 덩쿨이 어딨나 근방을 두리번거린다.
또 하나, 박주가리란 놈도 그렇다.
더덕은 꽃만이 아니라 식물 자체에서 나는 향이고, 박주가리는 오로지 꽃에서 나는 향이란 게 다르긴 하다.
박주가리는 작년 강남에 있을 때, 사무실 앞 화단에서도 보았다.
시골 밭둑, 또는 변두리 공터를 두른 철망에서나 보던 잡초.
어쩌다 서울 강남 논현동까지 와 뿌릴 내리고 꽃을 피웠나 싶어 기특하고 짠했다.
박주가리꽃을 보면 초라하다 못해 하찮게 보인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향기가 얼마나 강렬하고 매혹적인지 모른다. 안 맡아봤으면 말을 말아야 한다.
푹푹 찐 오늘 해거름, 편의점 가려고 그랜드하얏트 앞을 지나는데 언뜻 익숙한 꽃향이 코끝에 어린다.
두리번거리며 화단잡풀을 헤치니 아니나다를까, 철망을 휘감은 줄기 이파리 사이 딱 한 송이가 매달려 있다.
박주가리. 이름도 하찮은. 색깔도 투미한. 그러나 달콤한 향기만은 무엇에 지지 않는 꽃.
어제는 저녁 먹으러 나갔을 때 식당 간판 아래 플라스틱 화분에 심긴 더덕에도 꽃이 피었더라.
온몸으로 냄새를 뿜는 더덕. 좀생이별처럼 오종종한 꽃들이 뭉쳐 향을 뿜으며 나 여기있고 하는 박주가리.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여름 저녁. 꽃을 보니 좋았다. 꽃이라도 보아 적이 안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