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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공간, 좋은 사람 그리고 쓰는 시간

by 수필버거

뜻밖의 즐거움에 깜짝 놀랐다.

작년 12월에 읽다익다 책방 랜선 글쓰기 모임에 가입하고, 월 1회 있는 (셋째 주 토요일) 오프모임 첫 참석 그랬다. 가입 전 카페 방문 때 한 번 본 사장님 빼고는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즐거울거란 기대가 오히려 이상하다. 뻘쭘하지만 않아도 다행이지.


간략한 자기소개 후 클럽장님과 사장님의 진행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모임 말미에, 술 안 마시면서도 이렇게 즐거워 본 지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농삼아 한 말이지만 즐거웠다는 말을 강조한 나름의 수사였고 진심이었다. 모임 후 차 시동을 걸면서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 너무 많았다는 반성도 했다.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에 반갑게 들떴나 보다.


글은 생각이다. 한 사람의 글을 오래, 많이 읽으면 그 사람의 상(像)이 마음에 맺힌다.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 같은 착각도 들고 친밀감도 생긴다. 글쓰기 모임이니까 당연히 서로의 글을 읽는다. 첫 모임 당시는 회원들의 글을 많이 읽지 못한 때였지만, 글 몇 개로도 어느 정도 형상은 보이기 시작한다. 모습은 낯설어도 몇 마디 주고받으면, 마음에 담겨있던 그이의 상과 실제 인물이 연결된다. 아이스 브레이킹이 짧던 이유는 글로 먼저 만나서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1월과 2월은 오프모임이 없었고 3월 오프 모임엔 참석자가 적었다. 코로나 오미크론이 급속히 확산하던 시기다. 나도 걸렸다가 나았다. 부모, 자식, 직장인으로서 염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최소 인원으로 모였지만 또 즐거웠고, 말이 많았다는 반성을 했다.


글을 쓰면 만나는 난관들이 있다. 쓰기를 글로 배우거나 생각만 할 때는 알기 어렵다. 몸소 써봐야 알게 되고 공감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다. 그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고개 끄덕이고, 배우고, 나누고, 두 손바닥을 짝 하는 깨달음까지 얻으면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된다.


연말연초에, 운영하던 음악 모임 (온라인) 공간을 헐고 랜선 글쓰기 공간에 들었다. 공교로운 페이드 인 앤 아웃 (fade-in & out)이었다. 글쓰기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해보자마음먹었지만 글쓰기 모임 가입은 계획에 없었다. 그냥, 혼자 쓰는 시간을 늘려야지 정도의 생각만 가졌다. '마감을 샀다'란 제목의 브런치 글과 독립서점 검색이 직조한 우연이었다. 랜선 글쓰기 모임 단톡방에 올라오는 회원들의 글을 읽고, 가끔 오프 모임에 참석하면 이사한 기분이 든다. 음악 모임에서 갖던 느낌과는 많이 다른 무언가 느낀다.


새해엔 글쓰기의 내 재능과 역량을 확인해 보자는 마음 가졌지만 방법은 구체적이지 못했다. 12월과 1월은 일단 자주 쓰자에 방점을 찍었고, 2월엔 긴 호흡의 글쓰기 시작을 생각했다. 예상보다 착수가 많이 빨라졌다.

자주 쓰는 일과 책 쓰기 도전을 혼자 계획하고 실행했으면 어땠을까. 일정은 한없이 늘어졌을 테고 계획은 축소일로였기 십상이었을 게다. 내가 나를 안다. 글쓰기는 생계가 걸린 일이 아니니까.


4월 랜선 글쓰기 단톡방에는 열다섯 명의 회원이 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면 단톡방에 링크를 올린다. 이 분들이 독자가 되어주고 라이킷으로 응원을 해준다. 그 격려가 꾸준히 쓰게 만든다. 생각보다 이른 책 쓰기 도전 읽다익다 랜선 공간과, 함께 글을 쓰는 좋은 분들 덕분이라고 믿는다. 오래 함께 쓰면 좋겠다는 마음과 감사의 뜻을 이 글에 담는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시간 배분),
사는 곳을 바꾸는 것(공간 변화),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사람).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만 하는 건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난문쾌답 / 오마에 겐이치 / 흐름출판>


인간을 바꾸는 흐름에 올라탄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부지불식간에 활동 공간과 교류하는 사람이 바뀌고 있다. 불과 몇 달 새의 일이다.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만들려는 노력 하루의 시간 배분 바꾼다. 오마에 겐이치의 말대로 흐르고 있다.

이 흐름은 나를 싣고 어디에 가닿을까. 연말의 나는 어떤 경험과 느낌을 가질까. 꽤 흥미롭고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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