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
'마음에 든다'는 문장을 읽으면, '마음에 들어온다', '마음에 들어맞다'로 술어를 바꿔 보곤 한다. 열쇠 꾸러미를 들고 이 열쇠, 저 열쇠 바꿔 꽂아도 제 짝을 만나기 전까지는 덜컥거리기만 할 뿐 문은 열리지 않는다. 빨리 들어가고 싶은데, 찰칵 열리지 않아 땀을 삐질거리며 난감해하는 내 얼굴이 그려진다. 사람 마음은 수식(數式)으로 열 수 없다. 자물쇠가 풀려야 흔쾌히 움직 일 수 있지만 언제, 어디서 맞는 열쇠를 찾을지는 알기 어렵다.
지난봄의 불안은 우울로, 우울은 공황장애 재발로 이어졌다. 증상이 오래전처럼 심각하진 않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냄비 뚜껑에도 화들짝 했다. 대책회의 오프라인 진입은 머릿속 물컹한 아이디어를 실체화(實體化)하는 일이다. 성공과 실패가 정성적 수용과 감내에서 정량적 계측, 즉 시간과 자금이라는 실제 손익의 숫자로 보이는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불안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났다고 진단했지만, 반만 맞았다. 여태 해 온 제조업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는 느낌이 왔었다. 겨울 성수기도 시답잖았고, 비수기 시작을 알리는 매출 그래프는 가파르게 꺾였다. 이 상태로 계속 버티면서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을까, 이번 여름 비수기 적자는 얼마나 될까, 반등의 기회를 만들 수는 있나, 차라리 깔끔하게 접는 게 낫지 않나, 생각이 많은 봄이었다.
동기 모임에서 퇴직한 친구를 보는 빈도가 늘었다. 법이 정한 정년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지만, 임원이 되지 못한 금융권과 대기업 친구들은 옷을 벗었다. 희미하게 웃으며 툭 뱉는 '짤렸다'란 자조 섞인 말은 타의(他意) 99, 자의(自意) 1이란 뜻으로 들렸다. 그 속내를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느낌. 밀려나는 느낌. 입이 썼다.
8월 마감은 9월 2일에야 했다. 월말 작업을 하는 내내 양극의 감정을 오가느라 머리가 복잡했고, 그럴수록 진통제 같은 바다 생각만 간절했다. 해운대에 갈까, 포항 바다가 좋을까, 아니면 서해도 괜찮을까 궁리가 많았다. 어느 아침 문득, 동해안 해안도로 생각이 났다. 잊고 살았다. 스무 살에 처음 면허를 따고 달린 7번 국도. 일고여덟 시간을 쉬지도 않고 운전 해도 지치지 않던 길. 운전이 너무 재밌어서 힘든 줄 몰랐고, 바다를 따라가는 길이 너무 예뻐 스무 살 눈과 몸은 피곤을 몰랐다. 미숙한 운전 실력으로 얼마나 긴장을 하며 핸들을 꽉 움켜잡았던지 휴게소 화장실에 가면 샛노란 병아리 오줌만 찔끔 나왔었다. 그것조차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됐지만.
하룻밤 자고 올 작정으로 노트북과 태블릿, 잠옷 겸한 츄리닝, 헐렁한 티셔츠까지 백팩에 챙겨 넣고 3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큰 사이즈를 사고 내비게이션에 7번 국도 북쪽 끝 통일전망대를 목적지로 입력했다. 포항까지는 바다가 없다. 포항을 지나 7번 국도 가는 길에 잠시 바다가 보이더니 그다음부터 내내 첩첩산중 길이다. 7번 국도는 내 기억 속 낭만의 꼬불꼬불 2차선 해안국도가 아니었다.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게 목적인 고속도로가 돼 있었다. 이게 뭐야. 망양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서야 탁 트인 바다가 눈에 들었다. 여름 끝자락의 코발트색 동해 바다가 슬프도록 예뻤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바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을 보며 감정 격랑의 기울기가 수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릉이나 속초, 또는 양양에 숙소를 잡을 생각이었으니 바다를 한참 더 볼 수 있겠다. 붕 뜬 기분에 피로를 잊었다. 휴게소를 빠져나와 7번 국도에 다시 올랐지만 바다가 사라졌다. 길은 또 산중으로 이어지고, 높은 교각 위에 최단거리로 가도록 설계된 고가도로만 보였다.
이게 아닌데.
내가 바란 건,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언뜻 쳐다본 표지판에 해, 수, 욕, 장, 네 글자가 크게 보였다. 무작정 내렸다. 갈림길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더니 그제야 바다가 다시 보인다. 사람 없는 아무 해변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물었다. 네비의 목적지를 지우고 안전운행 모드로 바꿨다. 지도의 파란 경로선과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파란 동그라미가 사라졌다.
좌표는 필요 없다.
바다만 보이면 된다.
가다가 산이, 밭이, 마을이 보이면 바로 우회전을 했다.
바다,
또 바다,
그리고 바다,
다시 바다.
봐도 봐도 좋았다. 차 그림자가 동쪽으로 점점 길어졌다. 배가 고팠다. 하루 종일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마신 게 다였다. 길 왼편에 편의점이 보였다. 도시락, 샌드위치 같은 유통기한 짧은 먹거리는 없다. 차라리 잘됐다. 무엇을 씹는 게 귀찮았다. 카스테라 한 개와 콜라를 샀다.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꾸역꾸역 먹었다. 한참을 앉아 바다를 바라보다가 일어나 해변을 걸었다. 도로가 갈라지는 삼거리 이정표는 강릉까지 불과 몇 킬로미터 남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강릉, 속초, 양양. 거기가 내가 닿고 싶은 곳일까. 목적지까지 최고 속도로 최단 시간에 도착해서 전망 좋은 고급 펜션을 잡고, 밤바다와 새벽 바다를 눈에 담으며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을 그리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게 내 목적이었을까. 내 목표였을까.
폭이 좁고 구불구불 굽은 해안 도로를 천천히 달리며 아름다운 바다를 감상하고 문득 차를 세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해변을 걷고, 예쁜 카페가 보이면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이 목적이라면 비생산적인 걸까.
길 그 자체가 목표여도 괜찮지 않을까.
차에 올라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이 빨았다.
흰 연기가 시야를 막았다가 덧없이 흩어지고 눈앞이 다시 맑아진다.
찾았다.
열쇠.
닫힌 가슴에 꽂았다.
찰칵.
미련, 후회, 회한, 서글픔, 걱정, 불안을 치렁치렁 매달고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계산들이 정연하게 마음으로 들어와 가지런히 앉았다.
마음이 평온했다.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대구에서 강릉만큼의 거리였다.
시동을 켰다.
큰 U자를 그리고 남쪽으로 차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