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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율 May 10. 2022

그루자와 빈 밥그릇

사료가 다음 날 아침이면 없어졌고 그다음 날도 밤에 밥을 두고 아침에 보면 밥이 사라졌다. 고양이가 혹은 비둘기가 혹은 누군가가 먹는 진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이로 인해 배를 굶주리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 이 밥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밥을 주는 것이 일이 되었다. 그렇게 누가 먹는지 모른 체 빈 밥그릇만 보던 게 약 한 달이 지나고 밥을 먹는 고양이가 나에게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익명의 누군가가 구체적인 상대로 마주했던 날은 잊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길고양이를 포함하여 모든 이의 이름을 함부로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매번 오는 그 아이를 위해 나와 가족들은 “그루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루자”는 상대방이 어떤 제안을 했을 경우, 좋다는 뜻의 “그러자”에서 따왔으며, “그루자”에게 뭐든 좋다는 마음을 담아지어 주었다.  길고양이에서 “그루자”가 되었고, 내가 한 생명체를 위해 헌신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꼈다. “그루자”가 많이 예뻤고, 많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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