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든 슬프든 일단 '뚜ㅕ!'

철마는 달리고 싶다? 나도 달리고 싶다!

by 수립

첫 대회를 원했던 목표 이상으로 완주하고 여름과 초가을을 보내며 느꼈던 감정을 회고한다.


대회를 마친 후 돌아온 주말도 특별했다. 토요일에는 첫 비대면 마라톤에, 일요일에는 첫 장거리 달리기에 도전했었다. 날씨처럼 도전하고 싶은 열의가 끓어올랐던 주간, 도전에 성공해 성취감이 타올랐던 주간이었다.


비대면 마라톤은 마감 전까지 어떤 장소에서든 원하는 때에 달리고 기록을 제출하면 된다. 늘 달리는 길이 대회 주로로 변모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대회였다. 기념품을 받기 전에 먼저 달려도 무방하지만 기왕 참여하는 만큼 대회 기념 티셔츠를 입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에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주 토요일 아침에 달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기념품을 받은 바로 다음날 기록이 대단히 좋았다. 27분 50초라니, 도봉마라톤 기록(27:15)에 거의 근접했다. 완주기록증에 시간이 기재되진 않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기록이었다. 이대로 제출할까? 상당한 내적 갈등에 사로잡혔다. 스스로 타일렀다. 토요일에 달리기 위해 대회 기념 티를 아껴둔 점, 기록이 어떻든 달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점, 무엇보다 이보다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으리라는 점. 마지막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달리다 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달리는 데 집중했듯 앞으로도 기록보다 '달린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판단은 옳았다. 비대면 대회 당일 기록은 27분 20초. 나는 늘 달리는 길에서도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일상의 길에서 1km 개인 기록을 경신하기까지 했다. 놀라운 성취에 기뻐하면서도 앞으로 나 자신을 조금 더 믿어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에는 NRC First Long Run 가이드에 따라 처음으로 장거리 달리기에 도전했다. 총 6.3km를 달렸는데, 이때까지 5km 이상을 쉬지 않고 달린 적이 없었기에 그때의 나로서는 충분히 장거리였다고 생각한다.

장거리를 달린 덕분에 평소에 가보지 못했던 곳까지 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아침에는 달리다가도 출근 시간이 임박하면 되돌아오곤 하는데, 이번에 달리면서 가보지 못했던 곳에 당도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또, 생각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달려서도 좋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버거워하리라 예상했는데 막상 달리니 목표한 시간만큼 안정적으로 달려낼 수 있었다. 가이드에서 코치님이 계속 독려해 주셔서 페이스를 원활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고 사료한다.

무엇보다 이주에 드디어 NRC 그린 레벨을 달성해서 기뻤다. 주황색을 다른 색들보다 덜 선호해서, 달리기 시작할 때부터 속히 그린 레벨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생각보다 더 빨리 이뤘었다. 형광빛 도는 초록색을 하염없이 바라봤던 기억이 선연하다. 마치 색깔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그다음 주 토요일에는 의도치 않게 첫 ‘우중주’를 진행했다.

우중주: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달리기

이날 하루 종일 비가 온다 했는데 운 좋게도 한낮에 그쳐서, 달리러 나갔는데 달리는 도중 다시 세차게 쏟아졌다. 비는 본래 피할 겨를을 주지 않고 내린다지만……. ‘비 사이로 막 가’ 정신을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온몸이 흠뻑 젖었다. 축축한 옷 탓에 체온이 식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타올랐다. 기묘한 열망이 차올라 더 즐겁게 달렸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내 소관이 아니었다. 미끄러운 도로 연석을 피하며 달리니 게임 캐릭터가 된 듯해 더욱 흥미진진했다. ‘우중주’의 즐거움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달리면서 깨달은 두 가지 사실 덕분에 기분이 더욱 좋았다. 우선, 나는 앎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지의 무언가가 불러일으키는 짜증과 분노에 심신을 내맡기기보다, 모르는 게 나을 정도로 부정적이더라도 알아서 대처하거나 그럴 방도를 찾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울러 내겐 그러할 능력과 자신이 충분하다는 점을, 설령 부족하더라도 언젠가 그럴 수 있도록 배워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좋았다.


마냥 좋은 날만 있지는 않았다. 맑은 날이 있으면 궂은날도 있고, 좋은 날도 있으면 싫은 날도 있는 법. 좋은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주말, 갑자기 끔찍할 정도로 달리기 싫었다. 달리는 일 자체를 원하는데도 이 주말에는 되지도 않는 보상 타령을 하며 빈둥거렸다. 그러다 겨우겨우 나가서 토요일에는 10분을, 일요일에는 3km를 달렸었다. 배우 ‘주드 로’가 운동하기 너무 싫어서 울면서 달렸다는 일화가 있는데, 그의 심정을 매우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아! 하기 싫다!”

달리다가 크게 외쳤다. 달리고 나서 달리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하긴 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 주에 쌓인 화가 나를 갉아먹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주 내내 타인의 민원과 요구, 호소를 해결하며 정작 나를 위해 그리 해 주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화가 났었다.

하지만 이 달리기를 통해 결국 일의 성질과 원인이 무엇이든 내가 해야 하니, 피할 수 없다면 즐기진 못하더라도 내가 끝내야만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달리기 싫었지만 달리기를 끝냈다. 하기 싫었지만 많은 일들을 끝냈다. 투덜대고 피하고 징징대기만 했다면 절대 끝내지 못했을 일들. 만일 그랬다면 더 큰 괴로움과 후회와 절망이 도래했을 터.

이날만큼 해내서, 끝내서 다행이라 여긴 달리기가 없었다.

신기했던 점은 늘 달리는 길을 달렸기 때문에 소요 시간과 거리, 평균 페이스를 몰라도 내가 얼마나 달렸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장소와 풍경과 신호가 교차하는 순간들이 넌지시 일러줬다고 하면 너무 감상적일까?


이후에도 달리기 싫은 나날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 채비를 마치고 나갔는데 비가 내렸다. 땅으로 스며드는 빗방울을 바라보다, 지난번에 달리다가 갑작스러운 폭우 때문에 애플워치가 고장 났던 일화가 떠올렸다. 안 좋은 기억이 뇌리에 빗방울처럼 스며들자 달리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요가로 그날 아침 운동을 대체했다.

이때부터 기분이 날씨처럼 가라앉아 다음날 오전까지 울화를 끌어안고 있었다. 달리 기분이 상할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우울한지 생각하다가, 이주 목요일 점심시간에 달렸다. 많이 달리지도 않았는데도 달리고 나니 울적함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끔하게 사라졌다. 동시에 깨달았다.


내가 달리지 않아서 슬프고 화가 났었다는 사실을.


그 주를 찬찬히 되돌아보았다. 충분히 달릴 수 있었는데 계속해서 미룬 스스로가 한심하고 못마땅해서 울분이 차올랐었다. 수요일 아침에 내린 비는 맞아도 충분히 괜찮았다. 목요일에는 평소라면 이미 달리고도 남았을 새벽에 세 번이나 깼는데도 그냥 잤다. 계획과는 거리가 멀지만 일과를 해내지 못한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도 엉뚱한 곳에서 근원을 찾으며 스스로 탓하느라 기분을 더 망치고 있었다.

어쩌면 쉽게, 어쩌면 겨우 되찾은 행복을 되새기며 생각했다. 꼭 매일 달리지 않아도 괜찮지만 달리고 싶을 때, 달릴 수 있을 때 달리는 일은 나에게 가장 커다란 행복이다. 그러니 아프지 않은데도 달리기 싫다면, 정 안 되면 1분만이라도 달려보고 다시 되물어야지.

어때, 달리니 행복하지?


이날 이후로, 언젠가 자세 교정 수업에서 들었던 말을 새기면서 달리고 있다.

달리기는 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는 운동이다.

비단 달리기 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는, 적용해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생업이나 학업에서 최상의 성취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나 나를 괴롭거나 슬프게 하는 일에 공연히 마음을 쓰지 않으려면 내 심신의 힘을 어떻게, 어느 정도 사용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실천하며 살아가다 내가 가장 마음 편하게 달릴 수 있는 여건을 알아냈다. 그간 어렴풋했으나 비로소 명백히 알아냈다. 나는 1km 평균 페이스를 5분 40초~6분대로 맞춰 달릴 때 가장 자유롭게 달린다고 느낀다. 맑거나 비가 갠 날 아침에 달릴 때 제일 행복하고, 자주 달리는 길의 중반부에서 샘솟는 열망과 용기를 느낀다.

조건을 맞춰 달리다 보면 어떤 날에는 아주 운이 좋게도 몽실몽실한 분홍빛 구름에 머리를 푹 파묻고 도리질 치는 느낌이 든다. 환상을 노니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은근하지만 꾸준히 차올라 나를 감싸는 설렘이 참 좋다.


주당 최장 거리를 연신 경신하며 차오르는 성취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날은 선선해지는데 자신감은 타올랐다. 흔히 달리기 제일 좋은 계절이라 일컫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새 계절을 더 올곧은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해 더 열심히, 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달렸다. 첫 10km 대회가 머잖았으니까.

평소보다 살짝 일찍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었던 날, 눈 깜빡하니 오히려 평소보다 살짝 늦었었다. 그냥 잘까 싶은 마음을 그냥 하자는 마음으로 고쳐 먹고 달렸다. 그날은 같은 거리를 세 번으로 나누어 뛸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기뻤다. 뛰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었다. 쉴 수도 있었는데 뛰었다.


언젠가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본 어떤 어르신께서 내게 “잘한다, 뛰어!”라고 응원해 주셨었다.

뒷말은 “뛰어”도, “뗘”도 아닌 중간 발음, 굳이 표기하자면 “뚜ㅕ!”에 가깝게 말씀해 주셨는데, 달리기 버겁거나 망설일 때마다 이 응원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고 즐거워져 힘을 내 달릴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뚜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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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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