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차면 기우나니
만수절은 황제의 생일입니다. 청나라는 정월 초하루와 동짓날과 함께 만수절을 3대 기념일로 삼았습니다. 만수절에는 조하(朝賀) 의례를 중심으로 각종 의례와 제례, 축제가 열렸습니다. 처음에 북경에서 거행되던 행사가 열하(熱河)의 피서산장으로 옮깁니다. 조선은 황제의 오순이나 육순도 따로 축하하지는 않았는데, 칠순에는, 정치적인 감각을 지닌 젊은 임금 정조가 특별히 ‘진하(進賀) 사절'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 만수절 행사가 북경이 아닌 열하에서 열린 관계로 조선 사신은 최초로 열하를 방문하여 축하연에 참석하며, 파격적인 우대 조치도 받게 됩니다.
만수절 행사를 언제부터 준비했는지 모릅니다. 여행을 끝나기 전에 다음 여행을 계획하듯이 지난해의 행사를 마치자마자 이번 행사를 논의하기 시작했을 터입니다. 안 보는 것 없이 다 담으려 드는 우리 연암의 눈에 신기한 광경이 들어옵니다. 신선을 등에 태운 커다란 거북이가 물을 뿌려 피서산장 전각의 뜰을 식히는 겁니다. 먼저 안개비를 흩뿌려 뿌옇게 만들더니, 나중에는 거센 빗방울을 쏟아 낙숫물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 정원을 흠뻑 적셔놓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옷소매는 젖지 않았다니, 멋진 기술 아닙니까! 황제는 에어컨(?) 하나도 디자인도 듬뿍 들어간 제품을 선호했나 봅니다
이 멋진 광경을 보고도 자발적 아싸인 연암은 뼈 때리는 소리를 합니다. 온 세상이 비를 갈망하고 있는 판에 천자의 뜰 하나만 적시느냐고요. 나는 문득 한 여주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여주인은 손님 접대를 잘 하려고 접시들을 데워 놓으라고 지시를 했지요. 하지만 꾀 많은 하녀들은 여주인의 접시 하나만 데워놓습니다. 여주인은 제 접시가 따뜻하니 다른 접시가 안 따뜻하리라고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답니다. 황제가, 생각이 모자라는 여주인 격이 되었습니다. 조명을 받으며 득의양양한 황제를 둘러싸고 있는 훨씬 더 짙고 더 큰 어두움이 보이는 연암입니다. 실제로 그 피서산장은 오늘날의 서울처럼 주변의 땅들을 먹어치워 몸집을 불려가는 청나라 판 공룡이었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관리 천 명이 함께 보는 등불쇼입니다.(수행원인 연암은 이 행사를 담 너머와 문틈으로 엿보는 처지였습니다) 용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저울의 눈금만큼 착오 없이 글자의 획이 또렷합니다. 그냥 유희인데도 기강과 질서가 엄숙하니, 군영(軍營)을 이렇게 운영하면 천하에 누가 거치작거리겠습니까? 청나라의 기세등등한 무력에 의해 산하가 짓밟혔던 조선 사람에게는 유희가 그냥 유희가 아니지요. 그러나 연암은 또 한편 생각합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임금의 덕이지 병법이 아니라고. 병법이면 다 되던데 덕은 무슨 덕이 필요하냐구요? 황제의 천하는 병법이면 다 되었는데, 손이 닿지 않는 멀리에서부터 적이 옵니다. 천자가 아는 것이 천하의 전부가 아니었던 겁니다.
황혼 무렵에 매화포가 등장합니다.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에 매화꽃이 피고 새와 짐승, 벌레와 물고기가 날고 달리며 꿈틀거리고 뛰어오릅니다. 대포 소리가 커지며 신선과 부처가 승천합니다. 정사(正使)는 그 와중에도 매화포를 관찰합니다. 매화포는 조선의 삼혈포와 닮았고 또 조선의 신기전과 비슷하다는군요. 매화포 불꽃놀이는 구구대경회(81개의 놀이)의 피날레입니다. 강옹건성세(康雍乾盛世)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은 어마어마하게 차원이 다른 축제를 끝으로 모든 행사가 마무리됩니다. 연암은 꽉 찬 보름달의 장관을 보며 그 만월이 이내 그믐을 향해 갈 것을 예측합니다. 연암이 보았고 누구의 눈에도 보였을, 당사자인 황제 눈에만 안 보이는.
만월이 이지러지지 않은 채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중국은 물산이 풍부하여 무역할 필요가 없다고 장담했지요. 동서남북의 오랑캐도 모자라, 이제는 서방 오랑캐까지 봐줘야 하느냐?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라는 막상막하의 라이벌을 조선이나 일본 같은 속국처럼 조우한 청나라는 수십 년 만에 처절하게 유린당합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혼자만의 뜰을 적시며 실전을 방불케 하는 유희를 즐기며 매화불꽃놀이로 엄청난 부를 과시하며 황제가 마음놓고 즐기는 동안 달은 그믐으로 바뀌었습니다. 월영즉식(月盈則食) 즉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