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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겼냐 준비했냐

그것이 알고 싶다

by Susie 방글이




브런치에서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마음이 멈칫했다.


그분이 느낀 건 이런 거였다.


"남은 음식, 그것을 통해 사랑을 경험하다. 먹다 남은 음식이 아니라 미리 떠놓거나 특별히 남겨둔 음식이었음을 알고 감사했다."


'아, 그렇구나. 남은 음식에도 마음이 담길 수 있구나.' 글을 읽으며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순간 떠오른 건 남편의 김치볶음밥이었다.
얼마 전 내가 친구 약속으로 집을 비운 날, 남편은 혼자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내 몫이 따로 덜어져 있었다.


무심하게 "먹을 거면 먹어"라며 내민 그릇이었지만, 파기름과 마늘을 채 썰어 볶아 넣은 방식—내가 좋아하는 디테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때는 그냥 '남은 건가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작가님의 글을 읽고 나니 비로소 깨달았다.
그건 단순한 leftovers(먹다 남은 음식)가 아니라, 나를 위해 set aside 해둔 음식(음식을 따로 챙겨둔 것)이었다는 사실을.


더 나아가, 남편이 의도적으로 넉넉히 만들어 내 몫을 남겨둔, 바로 planned-over—'계획된'이라는 의미 자체가 들어 있는 음식이었다.


영어 Tip: 여기서 planned-over는 반드시 하이픈(-)을 붙여 써야 한다. 말 그대로 '계획된(over) 음식'이라는 뉘앙스를 살려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남은 음식, 남겨둔 음식—영어로는 어떻게 표현될까?


영어에서는 보통 둘 다 leftovers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국어는 다르다.


"먹다 남은 음식"은 왠지 찌꺼기 같다.

"남겨둔 음식"은 아껴둔 것, 따로 챙겨둔 것—정과 배려가 들어 있다.


영어는 단어 하나로 구분되지 않는다. 대신 억양과 앞뒤 맥락이 의미를 바꾼다.


"Ugh, just some leftover pizza in the fridge."(냉장고 속 시들해진 피자 조각)

"We’ve got leftovers from last night’s dinner!"(어제저녁이 주는 보너스 같은 즐거움)

"I saved this for you." (따뜻하게 챙겨둔 마음)


한국어는 단어에 뉘앙스가 실려 있고, 영어는 말하는 톤이 뉘앙스를 만든다.


외식이 잦은 요즘, 식당에서 음식을 다 먹지 못했을 때 어떻게 하시나요?


한국에서는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가는 일이 흔치 않다. 반면 미국에서는 피자 몇 조각이라도 챙겨 가는 게 당연하다. 그럴 때 한때 자주 쓰이던 말이 바로 doggy bag. 요즘은 많이 쓰이지 않지만, 여전히 가끔 들리는 표현이다.


직역하면 '강아지 가방'이지만, 실제 뜻은 남은 음식을 싸 가는 것이다.


이 말의 시작은 재미있다. "집에 있는 강아지 주려고요"라는 핑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강아지는 이미 배부르게 잘 먹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은 내가 다시 먹으려고 챙긴 것일 뿐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남은 스테이크를 종이봉지에 담아 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바로 그게 doggy bag이다.


그래서 "Could I get a doggy bag?"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강아지 밥을 달라는 게 아니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 달라는 뜻이다. 한국처럼 단순히 "포장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문화와는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포장을 잘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위트 있는 표현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문화다.


흥미로운 건 이 표현의 배경이다. 1940~50년대 미국에서는 외식 후 남은 음식을 가져가는 걸 조금 부끄럽게 여겼다. 그때 사람들은 "내가 먹으려는 게 아니라, 집에 있는 강아지 주려고요"라며 둘러댔고, 그 말이 굳어져 doggy bag이라는 표현이 탄생했다. 음식 절약이 강조되던 전후 시대 분위기와 맞물리며 널리 퍼졌고, 지금은 일상적인 말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단어 하나에도 시대의 정서와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다음에 영화 속에서 "doggy bag"이라는 대사가 나오면, 그 안에 담긴 작은 문화사를 떠올려 보게 될 것이다.



번역 Tip


최적:

*"남겨둔 음식"→ saved food, food set aside for you

*"먹다 남은 음식" → leftovers

*"계획된 음식"→ planned-over (하이픈 필수).


*너무 깊게 들어가면 딱딱한 문법 수업이 되니, 이 정도 선에서만!


주의:

*그냥 다 leftovers라고 하면 ‘먹다 남은 음식’ 느낌이 강하다.

*'남겨둔 음식'이라면 이 표현은 삼가.


상황별:

*정을 담고 싶을 땐 → "I saved this for you."

*무심하게 말할 땐 → "Just leftovers."

*식당에서 먹고 남은 음식 포장할 땐 →

"Can I get a doggy bag?" (재미있게)

"Can I get a to-go box?" (평범하게)


먹다 남은 건 시들지만, 챙겨둔 건 따뜻하다.
언어도, 음식도—사랑이 담기면 특별해진다.


결국 leftovers도 마음만 담기면, doggy bag이 아니라 love bag이 된다.


관련 표현이나 더 알고 싶은 표현이 있으시면 언제든 댓글로 질문해 주세요.

*다음 회에서 또 만나요! See you in the next episode!

직접 구운 쿠키 나눌 때 제일 맛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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