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따라 하는 내 책 출판하기 A to Z
지금까지 출판의 전체 과정을 훑어보고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열심히 써 온 글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면 이제 글을 '팔러' 가야 할 때입니다. 지금부터는 바로 <제안하기> 단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나 혼자 쓰다 고치다를 반복하며 마침내 완성에 가까운 글이 나왔다면, 드디어 1차 고객인 출판사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 매력을 어필해야 합니다. 이는 출판사를 통한 출판(기획출판) 단계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과정이며, 내 글이 시장에서 평가받는 첫 번째 단계이기도 합니다.
“와, 너 그렇게 말하니까 더 긴장된다!”
선배 K가 동글뱅이 안경을 반짝이며 의자를 당겨 앉습니다. 물론 출판사에서 작가를 찾아 선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함께 책을 내보자고 말이죠. 블로그/브런치 등 웹페이지에 눈에 띄는 글을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혹은 유튜브 구독자수가 최소 30만이 넘어선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책을 내본 경험이 전무한 예비 작가에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형, 가로수길에서 커피 마시다 길거리 캐스팅 당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겠어요. 크크."
결국, 출판사에 제안하는 건 피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우선 이 단계를 실행하기 위해, 어떤 내용을 제안해야 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제안할 땐 크게 2개의 파일을 출판사에 전달해야 합니다. 하나는 <제안서>, 다른 하나는 <원고>입니다. 원고는 지금까지 여러분이 써 온 전체 원고 파일을 말합니다. 이는 완성된 책 한 권 분량이 있다면 가장 좋고, 정 어렵다면 최소 책 절반 이상의 분량이 있어야 합니다. 탄탄한 목차가 함께 있다면 더욱 좋고요.
<제안서>는 출판사마다 요구하는 양식이 모두 다릅니다. 그렇지만 아래 제가 소개해 드리는 다양한 출판사의 양식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으실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출판사는 제안서 양식이 아예 없기도 합니다. 실은 그런 출판사가 더 많습니다. 그냥 이메일 주소만 공개하는 출판사도 많고요. 자사 홈페이지에 별다른 양식 없이 파일을 업로드 하도록 한 출판사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출판사에 원고만 띡 보내는 건, 오천 피스 짜리 퍼즐 액자를 던져 주고 다 맞춰보면 분명 기막히게 멋진 그림일 거라고 말하는 거랑 크게 다를 게 없어요. 그리고 뭐든지 일로 하면 어찌 되는지 알죠? 더 하기 싫고, 더 보기 싫다는 사실. 크크."
그래서 제안서의 역할이 진짜 중요합니다. 바로, 제안서를 통해 내 원고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아주 짧고 간결하게 어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유튜브 광고를 딱 5초 동안 보고선, 원래 보려고 했던 영상마저도 잊게 만드는 흡입력! 그래서 홀린 듯이 광고를 계속 보게 만드는! 바로 그런 흡입력이 제안서에 필요합니다.
이제부터는 각 출판사에서 공개하고 있는 실제 제안서 양식들을 보면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 한 대표적인 출판사 세 곳의 출간 제안서 양식입니다. 출판사마다 주력하는 분야가 있고, 그런 분야에 따라 질문이 약간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래 양식만 보더라도 조금씩 내용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다른 출판사들의 다양한 출간 제안서도 아래 세 곳의 질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선 세 곳을 비교하며 감을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어떠신가요? 세 곳을 비교해 보니 조금 감이 오시나요? 완전히 같은 질문도 있고, 약간씩 다른 질문도 있습니다. 질문을 보면 '질문자의 생각'을 알 수 있듯. 제안서의 질문을 통해서도 출판사의 방향성이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첫 번째 출판사의 경우 최소한의 가이드만 주고 저자에게 자유로운 기술을 맡기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쓰며 저자에게 정중히 요청하고 있는 게 눈에 띄고요. 세 번째는 칸을 나눠 개조식으로 기술해 놓았습니다. 위의 두 출판사보다는 좀 더 논리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실은 세 번째 출판사는 주로 경제/경영서를 출판사는 곳이라 그런 맥락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종합서적, 첫 번째는 가벼운 에세이나 여행서를 주력으로 하는 곳입니다.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아, 그래도 이거 뭐가 너무 많은데? 안 그래? 게다가 원래 작가가 시장조사까지 하는 거였어? 후우"
선배 K가 제안서 양식을 보고 한숨 같은 탄식을 내뱉습니다. 언듯 보면 당연한 질문인 것 같지만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들도 보이고요. 질문의 숫자도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우리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K출판사>는 자사의 의견을 미리 달아 두었습니다. 제안서 말미에 말이죠.
“하하. 우리 대화 엿들은 거 아냐?”
선배 K가 민망한 듯 웃습니다.
"응. 그런 것 같아요. 크크.”
책 한 권 내기 위해서는, 아니 출판사로부터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저자로서 이 정도의 고민은 필요해 보입니다. 어쩌면 원고를 쓰기 전부터 위에서 물어보는 항목들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스스로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다면, 그렇게 스스로 설득할만할 답을 얻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이치일 것 같고요.
그리고 또 하나. 원고를 검토하는 출판사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출판사의 경우 겨우 일주일 만에도 몇십 개의 원고 투고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게다가 투고 들어온 원고 검토만 하는 출판사 직원은 없습니다.
출판사 편집자는 마감에 쫓기며 책 편집을 해야 하고, 정기 편집 회의도 참석 해야 하며, 계약이 진행 중인 작가도 만나야 합니다. 유명 저자를 타 출판사에 뺏기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네트워크 관리도 해야 하며, 요즘 출판 트렌드를 알기 위한 시장조사도 틈틈이 해야 합니다. 게다가 저같이 까다롭고 까칠한 진상 작가의 클레임도 들어줘야 하고요. 그 와중에 없는 시간을 쪼개서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투고된 원고를 열어 보는 것입니다.
원고 하나당 12만 자, 10개면 120만 자. 그걸 받아 보는 출판사 직원이 카리브해의 보물섬을 발견한 해적의 마음일지, 침대 밑 묵은 먼지뭉치를 꺼내는 청소 도우미의 느낌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결정하는 건 바로 온전히 우리들이 쓴 원고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출판사에서 모든 원고를 끝까지 읽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들을 일일이 보며 옥석을 가려 주길 바란다면 너무 큰 요행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닌가 싶고요. 결국, 이 두꺼운 원고를 과연 볼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바로,
이 <제안서>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서>는 예리한 '낚시 바늘'이 돼야 합니다. 영화 '예고편'이 돼야 하고, 마트에서 입에 넣어주는 맛보기 군만두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넣었는데. 그거 한 입에 눈이 번쩍 뜨여 홀린 듯이 만두 한 봉지 원플러스 원으로 구매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합니다.
실제 한 출판사 편집자의 말을 들어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원고를 보기 전, 기획안 만으로도 이미 계약을 할지 말지 느낌이 온다."
- 경력 10년의 S출판사 모편집자 -
단 한 사람의 사례 입니다만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혹은 글을 자주 접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상상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 도입부에 전개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면,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 난무하다면 다음 챕터를 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경험을 해 보셨을 테니 말이죠.
위에서 몇몇 출판사의 제안서를 살펴봤는데요. 각각 다양한 질문 형태로 나타났지만 묻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유사합니다. 결국 제안서의 질문들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 아닐까요? 다음 질문들을 찬찬히 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세상에 태어날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차별화된 이야기가 있을까?
이 책이 시장에서 먹힐까(투자금 회수 및 이익실현이 가능할까)?
다음 챕터에선 제가 '실제로 쓰고 출판사에 투고했던' 출간 제안서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 글 입니다만, 사례를 통해 좀 더 확실한 감을 익히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아무쪼록 올해엔 기필코 내 이름으로 된 책 출판에 성공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One Point Lesson
출판사를 통해 출간을 하려면, 출간 제안서를 써야 합니다. 바쁜 편집자들이 내 원고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길 바란다면, 제안서를 매.력.적.으로 써야 겠지요. 내가 쓴 원고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얼마나 <차별화> 돼 있는지, 얼마나 큰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는 게 매력적인 제안서를 쓰는 첫 걸음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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