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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재운다'는 말

by 한수남


식재료 중에 유독 육고기에는 ‘재운다’는 말을 쓰지.

자장자장, 조금 자 두어라, 고기야

간장, 다진 마늘, 후추, 설탕, 참기름을 넣고

휘휘 저었지. 고기 위에 양념장을 주르르 붓고

뒤적뒤적 스며들도록 기다리는 건

마치 아기를 재우는 것 같아

순해져라 고기야, 까만 양념장은 까만 밤을 닮았지

우리들의 까만 밤 속에 많은 것이 숨어 있듯이

까만 양념장 속 재료들이 고기를 재우느라 힘을 보태지

너도 나처럼 살아있었는데, 고기야

살아서 펄펄 날뛰었을 텐데, 고기야


어느 작가는 너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한 여자의

삶을 소설로 썼지 *

너를 한 점씩 씹을 때면 그 소설이 생각나기도 해

너는 자면서 스르르 근육질의 기억을 떠나보내게 될 거야

나는 네가 좋지도 싫지도 않지만, 오늘 같은 날은

너를 먼저 재워두고 나도 자려하는 오늘 같은 밤은

왠지 손길이 더 차분해지네

오랜만에 어린애를 재우듯이 낮은 소리로

오래된 노래를 부르게 되네, 자장자장~ 자장자장~


*한강, [채식주의자]


양념장(무료이미지)

올해 첫 매화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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