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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Oct 15. 2023

같은 책, 다른 생각(8)

손원평작가의 -아몬드-

(아이가 읽은 -아몬드-)

나는 이번에 아몬드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유명한 책이다. 특히 청소년 소설로, 학교에서도 많이 권해주고, 학원에서도 독서 토론이나 서평 주제로 프로그램에서 선정되는 걸 많이 봐왔다. 주변에 읽은 사람이 워낙 많아서 어느 정도 내용은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이 발행된 지 벌써 3,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직접 읽지는 않았다. 그 이유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줄거리를 설명하기에는 어렵다. 작가가 표현했듯 ‘괴물인 내가 또 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라고만 알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내 기준에서는 사실 가장 적합한 설명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괴물의 이름은 윤재다. 선윤재. 윤재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을 앓고 있고, 이 때문에 사는데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사는 아이이다.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어떤 걸까? 냉정하고 아무 느낌이 없다는 걸까?

아마도 자극에 덜 휘둘리는 아이이지 않을까?

화날 일도 없고 슬플 일도 없을 테니. 그렇지만 감정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건, 분명 이 아이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무리 사회가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재료는 감정이니까.


주인공 괴물의 반대 위치에 서있는 아이는 곤이다. 본명은 윤이수.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수’ 보다 ‘곤이’에 초점을 맞추어 읽는 게 더 편할 거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초점을 많이 맞추어 읽었던 아이가 바로 곤이였다.

곤이는 많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이고, 우리의 기준에서 볼 때는 깡패 아니면 불량청소년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아이다. 그렇지만 나는 곤이에 대해서, 곤이와 윤재가 하는 많은 말들 사이에서, 곤이가 윤재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곤이가 그런 마음을 지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좀 충격적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작가는 말했다. 이 아이가 전혀 내 예상과 다르게 자란다 할지라도 이 아이를 사랑해 줄 수 있겠느냐고. 나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이런 경험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기에.. 윤재와 곤이와 같은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본 적 없기에.. 그들의 상황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하고 공감해 줄 뿐이다. 그런 공감이 그들에게 사실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인지는 애매하다. 그들 앞에서 내가 하는 말들은 모두 가식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크니까. 그러나 윤재와 곤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옆에 감정을 나눌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였다. 윤재가 말했듯 자신의 양손을 잡아주던 두 사람이 있었기에, 윤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니까. 반면에 곤이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단 한 명도. 다시 만난 아버지조차도 그렇게 해주지 못했으니까...

어쩌면 윤재는 곤이에게 아무런 선입견 없이 손을 내밀어주었던 첫 번째 사람이었다.

 

윤재는 말했다.

"나 언젠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도 이해 못 하는 나를,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나도 글을 쓸 수 있을까? 윤재 엄마와는 다르게 내 삶을 글 속에 담아내는 데에 주저 없을 수 있을까? 남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을까? 나도 모르던 나를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을까? 윤재가,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것에서 한 걸음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윤재가 부럽기도 했다.

"이 정도면, 나도 이제 네 이야기에 등장할 자격이 생긴 건가."라고 말해주는 도라.

 나도 내 인생에 도라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차지해 줄 그런 사람. 도라처럼 새롭고 색다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위주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에게 영향력 있는 일이 아닌 이상 거짓 공감으로 대충 무마시키고 넘긴다.

사실 비난할 수는 없다. 남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니 나를 지키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심리일 뿐.

그러나, 때로는 윤재처럼 친구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무모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위험한 삶은 위험하지 않은 삶"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런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기에,

진짜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아몬드는 진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내가 읽은-아몬드-)


얼마 전 TV에 장항준 감독이 나왔다.

시종일관 재치 있는 유머를 더한 입담이 좌중을 미소 짓게 했지만 그 웃음 뒤에 담긴 삶에 대한 겸손한 태도가 깊은 여운을 남겼다. 특히 그가

딸에게 했던 말 중에 "○아!"

우린 지금 너무 행복하지? 하지만 우린 지금의 것을 즐기되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겸손해야 돼. 인생은 항상 내가 예측한 대로만 가지는 않거든, 그리고 불행이란 건 우리가 들떠있을 때 행복할 때 우리의 등 뒤에 와서 비수를 꽂고 달아나는 거야! "라는 말속에는

아빠의 딸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이 느껴지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말속에 담긴 삶의 아이러니가 슬프게 공감되기도 했다.


행복과 불행은 어쩜 공중에 던져진 동전의 앞뒤면과 같아서 내가 던진 동전이 행복 쪽으로 기울어지길 모두가 간절히 기도하고 살지만

아차! 하는 순간에 불행으로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불행을 대비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몬드)라는 책 속에 던져진 불행들도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지진과 같았다.


코로나로 인한 답답함에 지쳐갈 봄쯤 (아몬드)란 책을 만났다. 무표정한 표정의 소년이 표지가 된 아몬드는 왜 제목이 아몬드일까? 호기심을

가지고 펼쳐 든 책은 숨 쉴 틈을 주지도 않고 계속 이어지는 불행한 사건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청소년 문학이라기엔 너무 아프고 안타까웠고

가까스로 맺어진 결말은 해피엔딩의 얼굴을 하고 끝났지만, 마음의 찜찜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이들의 문제라서일까? 영화 (차이나타운)의 주인공 일영이란 인물(어릴 때 버려져서 폭력조직의 하수인으로 살아야 하는 인물)과 이 소설의 주인공 곤이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래서 더 아픔이 오래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너무 쉽게 몰입되고 쉽게 읽혔다. 그리고 나는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에 감정이 이입되기 시작했다.


(아몬드)의 첫 번째 인물 윤재의 할머니는 전형적인 우리 시대의 할머니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자식 하나를 데리고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삶,

 자식만큼은 자신보다 훌륭히 키워내고자 하는 신념을 가지고 온갖 모진 일을 했던 여인, 쪼그리고 앉아 행상에서 옥수수와 찐 고구마를 파는 할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에 애잔하게 그려졌다.

지나치다 우연히 마주치는 모습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행상을 하시는 할머니들의 모습 안에서 우리들의 할머니를 발견하는 거 같아 그녀들의

젊음을 안타까움을 소리 없이 탄식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아픔의 삶 뒤엔 삶의 지혜와 해학이 묻어나고 자식에 대한 투박한 사랑이 얹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할머니는 가장 좋아하는 날인 크리스마스이브에 묻지 마 폭행을 당한채 목숨을 잃고 만다.

할머니는 당신이 손자를 구하고 떠나서 그나마 행복하셨을까?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

그 삶을 이제는 좀 알 거 같아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무덤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놓아두고 싶었다.


(아몬드)의 두 번째 인물은 윤재 엄마이다. 윤재 엄마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노력 때문인지 아주 번듯하게 잘 자란 아가씨이다.

어렵게 자란 사람들은 어쩜 돈이라는 굴레에 쌓여 사랑보다는 돈을 좇는 게 인지상정인데 윤재의 엄마는 그렇지 못했다.

드라마에 나올법한 무모한 사랑을 선택한 엄마는

이제 좀 행복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불행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엄마는 할머니와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할머니처럼 자식이 있기에 누구보다 강하고 굳건하게 불행과 맞서나 간다.

엄마에게 윤재는 그냥 남들과 다른 평범한 아이이다.

다르다는 건 어쩌면 이상한 것이 아니기에..

아니 어쩌면 의사들의 냉혹한 표현이 아이를 모자란 아이로 규정해 버리기에, 엄마는 그 다름을 보완하려고 또는 감추려고 무진 애를 쓰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엄마인 거 같았. 그 사랑은 윤재가 아몬드를 치료제로 먹는 것처럼 윤재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는지 윤재는 조금은 다르지만 평범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도 할머니와 같은 날 크리스마스이브에 아픈 윤재의 손을 놓고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식물인간으로 엄마가 살아있다는 건 윤재한테는 더 나은 일일까? 더 불행한 일일까? 알 수없지만 아마도 엄마는 아픈 윤재를 혼자 남기고 떠날 수

없었을 거 같았다. 그게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마지막 끈을 놓을 수 없는 사랑..


(아몬드)의 세 번째 인물은 이 책의 주인공 윤재이다.

다소 낯설지만 호기심을 자극했던 윤재의 병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살아가는데

굉장한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일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 노출될 위험이 많고 감정으로 캐치해야 할 상황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윤재의 병명을 의학적인 나쁜 말로 규정하긴 싫었다. 왠지 윤재는 따뜻한 사람일 거 같았기에..

그냥 좀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다른 성격의 아이일 거 같았기에..

나도 엄마이기에 누가 우리 아이를 다르게 바라보는 눈길은 참 싫을 거 같다는 생각 때문에 윤재를 감싸주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윤재는 엄마와 할머니의 사고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담담했다고 해야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하지만 나는 슬픔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윤재에게 다가올 용기와 의리, 사랑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아몬드)의 네 번째 인물은 곤이이다. 본명은 이수.

선입관인지는 모르겠지만 곤이라는 이름은 왠지 모를 측은함이 들었고 이수라는 이름은 모범생 같은 젠틀함이 느껴졌다. 곤이와 윤재는 친구이다.

우연한 인연으로 만들어진 친구, 우연이 필연을 만들었지만 곤이를 생각하면 제일 마음이 아팠다. 곤이가 윤재에게 "너랑 나 중 누가 더

불행할까?"라는 질문을 계속 곱씹어보았다..

글쎄 나는 곤이인 거 같았다.

놀이동산에서 엄마를 잃고 부정 입국자인 중국인 노부부의 밑에서 어떻게 컸는지 모를 유아기를 보내고 이리저리 입양과 파양을 거듭하고 소년원을

들락거리던 십육 세의 곤이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자꾸 차이나타운 영화의 주인공 일영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서 처절하고 안타까웠다.

유년기의 추억은 평생을 걸쳐 그 사람의 삶과 함께하는 것인데 어느 누가 곤이에게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친구들의 불편한 시선, 어른들의 이기심, 사회적인 소외, 누구도 곤이를 위로해주지 못했다. 다시 만난 아버지마저도..

다시 만난 엄마의 따뜻한 품에 한 번도 안기지도 못하고 엄마를 보내야 했던, 그리고 그걸 윤재에게 물어봐야 했던 곤이가 너무 슬프게 다가와 눈물짓게 했다.

 아무도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삶에 대한 상처를 안고

불행의 늪으로 떠나려 했던 곤이를 구한 건 윤재의 사랑이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를 믿어준다면 그 사람은 아갈 수 있는 것이니까.. 사랑은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니까..


(아몬드)의 다섯 번째 인물은  사이다.

빵을 굽는 남자, 왠지 로맨틱 가이 일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윤재 엄마는 이런 사람을 만나 행복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심장병 의사가 심장병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와이프를 잃고 와이프가 남겨준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빵을 굽는 심 박사의 빈자리를 어쩜 윤재 엄마가 채워갔는지도 모르겠다.

말없이 심중이 깊은 사람, 세상에 별로 흔치 않은 사람이라 더없이 반가웠다. 윤재의 옆에서 묵묵히 윤재를 지켜주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심 박사의 존재는 차가운 이야기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아몬드)의 여섯 번째 인물은 곤이의 아버지이다.

어쩌면 이해할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너무 틀 안에 갇힌 뻔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엘리트인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엉망진창인 곤이를 십여 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오죽하면 안 만났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그래서 사랑하는 와이프가 죽을 때 편한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윤재가 대신 아들 역할을 해야 했던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했던 마음이라고 이해해야겠지..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이기심 때문에 어쩜 곤이와 곤이의 엄마는 진정한 사랑을 확인할 길이 없이 되돌릴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길에 놓여야 했다.

곤이의 엄마는 어떤 게 더 행복했을까? 번듯하게 자란 가짜 아들을 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엉망진창인 곤이를 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 중에..

만약 나라면 진짜 아들을 만나 사과하고 싶을 거 같았다.

너를 잃어버려 미안하다고, 찾으려 노력했지만 찾지 못해 미안하다고, 이렇게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고, 네가 없는 세상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사랑을 전하고 떠날 수 없게  곤이의 아빠가 원망스럽다.


(아몬드)의 마지막 인물 도라.

이름처럼 도라는 당차고 씩씩했다. 윤재에게 이성 간의 사랑이 무언지를 알게 해 준 도라.

도라의 존재는 어쩜 윤재를 한 뼘 성장하게 만든 사람이다.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거. 그런 감정 때문에 나의 심장이 뛴다는 걸 알게 해 준 사람, 유일하게 아프지 않은 존재는 도라였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잘못을 잘못이라고 얘기할 수 있었던 도라, 봄내음을 풍기는 아카시아 향기 같은 도라는 마치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속의 하니를 연상시켰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모두 겨울이었다면 도라는 봄의 시간 속에 있는 사람이고 사랑이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내가 겪지도 않은 일과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오게 됐다. 작가의 능력인 걸까?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는 삶의 아픔과 우정에 관한 책이라고 느꼈는데 두 번째 다시 책을 만나고 돌아 나오는 길에서는 등장인물 모두에게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는 얼굴을 바꾸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사랑, 엄마의 사랑,  친구의 사랑, 남녀 간의 사랑,

그 모든 사랑을 위해 나는 얼마만큼 내 목숨을 던질 수 있을까? 사실 자신이 없다. 그저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끼기만 할 뿐..


(아몬드)는 아프지만 사랑을 닮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며 지녀야 할 진정한 가치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용기 없는 삶이 부끄럽다.

그리고 우리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관계에 얽혀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마음속에 담고 싶은 책 속의 한 줄!

(P218)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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