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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Aug 01. 2017

일상과 휴가, 다시 일상

조카에게 쓰는 편지 #4

조카에게 쓰는 편지 #1

조카에게 쓰는 편지 #2

조카에게 쓰는 편지 #3



8월이 되었어. 지난번 편지를 쓴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어. 그리고 네 생일이 다가오고 있지. 한국에서는 첫 생일을 '첫 돌' 이라며 '돌잔치'를 벌여. 100일 잔치와 함께, 유아 생존율이 낮았던 시기의 풍습이야. 특별히 첫 생일이라 중요한 부분보다는 살아남았다는 것이 중요한 행사였지만, 지금은 '처음'이라는 부분에 집중하는 행사가 되었지. '첫 경험'이라는 것은 보통은 비일상적인 것을 뜻해. 겪어 보지 않은 모든 것은 비일상이야. 




8월. 네가 태어난 달. 북반구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는 '휴가'를 떠난단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가서일까, 아니면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일까. 한국에서는 이런 휴가를 '피서'라고 하여 더위를 피하는 행위라고 칭하기도 하지. 하지만 요즘에는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등의 교육기관의 방학을 맞아서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가는 게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더라. 아직 그런 경험이 없는 삼촌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사람들은 이 시기에 일상을 벗어나 '다른 장소'를 향해 떠나곤 한단다. 


일상은 소중하지만, 늘 함께하는 것은 지겨워지곤 한단다. 관계도 그렇지. 가장 가까운 관계가 가장 지긋지긋한 관계가 되기도 해. 많은 불행이 여기에서 오기도 하지. 늘 보던 사람과의 갈등은, 서로에게 큰 피해를 입히거든. 또, 늘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옭메는 사회적인 인식도 있고.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새로움'을 찾아서 일상을 탈피하려고 해.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찾아 떠나는 여정들. 그게 마냥 즐거울까? 첫 경험은, 해보지 않은 것들, 보지 못했던 풍경들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것일까 - 삼촌은 잘 모르겠어. 아직까지 삼촌에게 일상은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이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만들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 힘들지 않은 건 아냐. 하지만, 비일상의 공간은 또 그만큼의 스트레스를 야기하거든, 내겐. 새로운 잠자리, 새로운 환경들. 그래서 이직이나 이사 같은 행위는 사람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었어. '일상' 자체가 바뀌는 것은 많으 사람들에게 낯선 일인 거지.


어쩌면 유목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적인 학습에 의해서 익숙함에 대해 중독되도록 만들어진 건 아닐까 생각도 들어. 특정 시기에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삶이 되었지. 농경 사회 이후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직장인' 이 되어서 해야만 하는 일들을 반복하는 존재가 되어 가지.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것을 비일상이라는 진정제를 맞아가면서 버티는 것은 아닐까, 삼촌은 의심하고 있어.




그래서 '해리포터'는 영국이 아닌 '호그와트'로 가야 하고, '앨리스'는 토끼굴 속으로 가야 하는 거지. '엔터프라이즈호'는 미지의 세계로 향해야 하고, 콜럼버스는 달걀을 부수어야만 했어. 응, 그렇게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구세계를 지탱하는 것이고, 비일상으로 향하는 것은 어쩌면 신세계로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달걀. 알. <데미안>에 나오듯, 일상을 깨고서야 비일상이 새로운 일상이 될 수 있는 거지. 자신의 세계를 깨부수어야만이 더 큰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것. 


응, 맞아. 꼭 새로운 경험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첫 경험' 들이 존재해야만 해. 네가 첫 '생일잔치'를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처음으로 걸어야만 할 것이고 넌. 또, 처음으로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할 것이고 처음으로 싸우기도 하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할 것이고 처음으로 어떤 가수의 팬이 되기도 할 거야. 처음 영화관에서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올 수 있고, 평생에 기억에 남을 게임을 처음으로 플레이하기도 하겠지. 한동안 네게 인생은 '여행'의 연속일 거야, 다시 올 수 없는 순간들. 잊히지만, 네 속을 가득 채울 경험들.


그러니 휴가는 - 비일상은,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거지. 우리는 트랙 위를 달리는 존재들이 아니니까. 네 인생이 가끔은 어떤 일상 속에 갇혀서 반복되는 것만 같고 정해진 대로만 사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있을 거야 분명. 그래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들이 있지. 응, 그 감정은 소중해. 난 여기가 싫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라는 느낌.


하지만 선을 벗어나도 그곳은 '여기' 일거라는 인식도 함께 중요해. 네가 어디로 가든, '너 자신' 이 중요해. 관계는 쌍방의 변화를 요구하거든. 네가 네 주위의 무언가가 변하길 바란다고 해서, 네가 변하진 않아. 넌 그것에 영향을 받겠지. 하지만 네가 변하지 않으면 파리에 있건 서울 어디에 있건 넌 그대로일 거야. 우리가 여행을 가서 굳이 집에서 꼭 먹는 밥을 먹으려고 노력하진 않잖아? 네가 다른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 그 자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네 주변이 바뀌었을 때만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할 거야. 




넌 다시 집밥이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올 수도 있단 것을 명심해야 해. 인생은 여행이야. 그리고 모든 여행의 종착지는 '집' 이 될 거야. 그게 무엇일지는 스스로가 잘 알아야 하겠지. 하지만 돌아올 곳이 없는 여행은 방랑이고, 방랑 속에서는 스스로를 잃어버리기 쉽다고 생각해, 삼촌은. 그렇게 휴가가 끝나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거야. 누군가는 드디어 돌아왔다고 하고, 누군가는 벌써 새로운 휴가를 준비하겠지만. 그건 모두 '집'에서 이뤄지겠지. 그걸 다시 - 일상이라고 불러. 일상의 소중함은 '비일상'으로 채워지지만, '비일상'은 '일상' 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집을 꼭 가족이 기다리는 '홈 스위트 홈' 같은 이미지로 생각하진 않아도 된단다. 특별히 물리적인 공간일 필요도 없어. '일상'그리고 반복되는 것들, 집 모두가 그냥 '너' 란다. 네가 평소에 먹는 것, 자는 곳, 입는 것 모두가 '너'이고, 그게 일상이야. 그걸 확장해서 '가족' 이 될 수도, '학교' 나 다른 집단이 될 수도 있겠지. 어쨌든 중요한 건 '너'야. 그리고 여행을 마친 너는 '비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일상'으로 가져오기도 하겠지. 그게 물리적인 물건일 수도, 경험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모두가 '너' 란다. 


'빌보 배긴스' 도 '프로도 배긴스' 도 샤이어를 그리워하지. 비일상이 충분히 아름다울 때에도, 아름답지 못할 때에도 일상으로의 노스탤지어는 너와 함께할 거야. 그렇다고 비일상의 영역으로 가지 말라는 말은 아니지, 아니야. 벗어난 그곳이 너를 너 답게 만드는 곳이 될 거야. 내가 깨부순 벽들이 네 일상 속에 쌓여서 너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야. 그러나 겁먹지 말아. 네 거 어디에 있건 넌 너 그대로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




뭔지 잘 모를 말들을 또 잔뜩 써 두었네. 응, 사실 삼촌도 잘 모르겠는 일들이야. 내 일상이 어디까지일지. 내가 지루해하는 이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잘 몰라.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경험을 무서워하고, 새로운 사람을 멀리하지. 듣던 것만 듣고, 보던 것만 보며 늙어 가고 있어, 삼촌은. 그래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넌. 늘 휴가를 떠난 것처럼, 하지만 일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새로움을 받아들이지만, 오래된 것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아. 


여름이 끝나가고. 장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햇살이 기승이지. 잠깐 걸었는데 등 뒤로는 땀이 흥건해. 짜증 나는 일들이 한가득이고, 해야 할 일들이 쌓여 무겁기만 해. 그저 훌쩍 내려놓고 싶어. 떠나고 싶지 가끔은. 여기만 아니면 된다고 하는 거야. 어디든. 


그러니 난 왜 '여기' 가 바뀌면 안 되는 건지 묻고 싶은 것 같아. 요약하면. 새로운 것. 일탈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겠지. 가치 판단을 내리기 힘든 것들도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 그리고 여기에는 없는 것들이지. 그게 왜 선 넘어에만 있어야 하는 거지? 궁금해. 왜 휴가를 떠나고 나서야만 선글라스를 쓰는 게 자연스러운 걸까. 반바지는 왜 사무실에서 입으면 안 되는 거지?


그런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런 사람이 꼭 되어야 하진 않아.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만은 네가 생각해주었으면 한단 마음에 글을 쓴 것 같아. 네 일상을 네가 스스로 바꾸건, 누군가가 바꾸어주건 선 밖과 안은 원래 없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 말이야. 처음에 중언부언 말했던 것들. 어쩌면 우리 일상이라는 것이 수천 년간의 농경생활, 자본주의 아래의 노동시장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말이야. 그 선은 -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말이야. 


언젠가 '줄 서기' 문화에 대해서 불만을 네게 토로한 적이 있었지. 첫 번째 편지였던가? 응. 그래, 삼촌은 네가 <쇼미 더 머니>에서 우승하는 것보다는, 그 밖에서 그 판을 비판하는 MC가 되었으면 하는 것 같아. 적어도 그런 생각을 해볼 줄 아는 사람 말이야. <프로듀스 101>에 나가 사랑받는 아이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이것 말고 다른 길은 없냐고 물을 줄 아는 사람. 뭐, 그런 말이었던 것 같아.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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