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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Feb 26. 2020

만년 임차인이 임대인이 되면

독립 투자자로 가는 길#2- 임대업 입문

임대인이 됐다. 내 첫 집 마련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임대 주택 2채다. 수십 채, 아니 수백 채 가진 임대업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큰 변화다. 불과 얼마 전까지 '부동산 문맹'이었기 때문이다. 붙박이처럼 전월세만 전전하던 차에 임대인이 되니 할 일도 많다. 임차인과 첫 계약서 쓸 때는 추운 겨울임에도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행여 문제는 없을까, 계약 조건은 제대로 됐는지 검토에 온통 신경이 쓰여서다. 불경기에 안 나가는 집 홍보한다고 볼 일 없던 부동산 기웃거리는 일도 흔해졌다.


오롯이 내 집이 주는 안정감을 누린 지가 언제였나? 거의 기억도 없는 어린 시절 잠깐 있었다. 커서는 여태껏 전월세 집을 떠돌았다. 형편이 나빠질 때면 싸디 싼 월세 집을 찾아 연명했다. 나중에 보면 "어찌 이런 집에 살았을까" 할 정도로 열악한 곳도 있었다. 흙수저 인생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직장 년수가 쌓이면서 생활은 나아졌지만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꿨다. 부동산은 큰돈이 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입자 생활에 길들여진 것도 컸다. 불안한 '타향살이'도 익숙해지면 편한 법이다. 집 값 떨어질 걱정, 큰 유지보수 문제, 괜찮은 집 고르기 등 여러 복잡한 생각이 필요 없었다. 얼마간의 월세만 꼬박꼬박 내면 됐다.


결혼 적령기에는 집 없는 설움에 괜히 움츠려 들었다. 누가 이 나이에 "집은 있느냐", "모아 둔 돈은 얼마냐" 물어볼까 봐 사람 만나는 것도 꺼려졌다. 집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내 집 마련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든든히 노후를 보낼 자신의 집이 절실해지나 보다. 이런 관심은 점점 압박으로 다가왔다. 어느 시점이 되니 더 이상 핑계할 수가 없었다. "경기가 안 좋다." "앞으로 인구가 준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끝났다." "소유가 아닌 거주의 시대다." "대출이 어렵다." "이자 부담이 크다. " 등등. 여러 이유도 통하지 않았다. 진짜 내 집 마련의 때가 된 것이다. 이렇게 마흔이 넘어서야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첫 내 집 마련은 경매로 했다. 부동산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대체 몰라서다. 집 장만이라는 전혀 안 해 보던 과제 앞에서 막막했다. 신규 아파트 분양은 어느 세월에 당첨될지 몰랐다. 그렇다고 시간이 많아 주변 집 보러 마냥 다닐 수도 없었다. 본다고 괜찮은 집을 찾을 정도로 안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난감한 것 투성이었다. 괜히 급하게 집 사다가 부족한 물건이라도 덜컥 물면? 일반 상품처럼 쉽게 환불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들어가는 금액은 얼마나 큰가. 전 재산에다 대출까지 끌어모아야 할 판이었다. 혹시 손해라도 볼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다 부동산 경매를 시도했다. 최소한 몰라서 덤탱이 쓰고 비싸게 사지는 않을 것 같았다. 현장 조사도 집 주변에 나온 경매 물건 위주로 하면 됐다. 한두 달에 겨우 몇 건 나올까 말까였다. 부동산 찾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집 가격도 전문가가 평가해주고, 참고 자료가 풍부했다. 매입가도 유찰되면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었다. 몇 번 시도하다 첫 낙찰에 성공했다. 거의 건물 전체가 매물로 나온 집 주변 신축 빌라였다. 인근 부동산 탐방부터 시세 조사, 분양가 확인, 현장 방문까지 직접 했다. 과한 의욕 탓에 턱없이 높은 가격을 쓰기는 했지만, 시세보다는 싸게, 전세가 정도에 첫 집을 장만했다.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에 대한 안목과 실전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어떤 노력도 고스란히 자신의 재산이 된다. 재테크 공부는 특히 그렇다. 실제 자신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매 투자 경험은 퇴직 후 직업 활동에도 보탬이 됐다. 뜻밖의 수입원을 얻은 것이다. 지난해 경매로 3건을 추가 낙찰받았다. 1건은 채권 관계로 보류하고, 2건은 바로 인수했다. 현재 전월세를 주거나 임차인을 구하고 있다. 임대인이 되어도 걱정은 있다. 임차인 때, 임대인의 전횡과 주거 불안을 우려하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우선 정부의 반부동산 정책이 염려스럽다. 이런 걱정이 사치일 정도로 소액, 소규모 생계형 부동산 투자자이지만, 이제 욕먹을 것을 신경 써야 하는 처지다. 임대할 집이 안 나가는 것도 고민거리다. 위축된 임대 시장 때문에 월세가 좀 높은 집은 쪼개서 셰어하우스라도 할지 걱정이다.


임차인이나 임대인 모두 걱정은 있다. 이러나저러나 매한가지일 수도 있다. 임대인이 되면서 다른 것은 우선 내 집 마련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뭔지 모르게 가슴 한편을 짓누르던 돌덩어리를 벗어던진 것 같다. 정말 조금만 관심 가지고 해 보면 내 집 장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큰 자금 없이 집 몇 채 가질 기회는 성실히 일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단지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건강하게 운영해 나갈지가 관건인 것이다. 부동산을 가지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분명 책임과 위기가 따른다.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도 많다. 쏠쏠한 소득 기여도 그렇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맘껏 가꾸고 애정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임대든, 사업이든 가진 공간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집주인이 되면서 분명한 것은 사고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솔직히 인정하고, 주도적으로 도전하며 행동하는 삶. 그것은 반평생 다른 누군가에 세 들어 살며 스스로를 제한해 왔던 의존형 인간을 넘어, 독립적인 1인 기업형 인간으로 가는 '통과 의례'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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