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이틀 전날 밤, 43살 노산모는 침대에 누워 있으나 마음은 울렁이는 돛단배 같았다. 37주에 아기를 꺼내기로 정하고 난 뒤에도 옳은 선택이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37주라니...
혼란스러웠다. 한 사람(의사)의 모호한 소견으로 한 인간의 탄생일을 3주나 당겨도 되는 것일까? 다른 소견과 가능성은 없는 걸까? 이대로 의견을 따르자니 그다음이 두렵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밝혀내기 힘든 영역이 바로 임신과 출산의 영역이다.
인간의 탄생은 신의 영역.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양수라도 터진 후에 결정해도 되지 않을까? 위험하다면 대체 얼마나 위험한 것일까? 부화하던 알도 돕겠다고 껍질을 잘못 깨 주면 새는 살아남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건 무엇이지?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나는 엄마로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나?
이미 정한 것을 번복하면 남편이나 선생님께 핀잔 들을 테지만 수모를 각오하고라도 내 마음을 털어놔야 했다. 이대로 끌려가면 분명 후회할 테니까.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저기 있지...
남편은 단호한 성격이다. 한번 결정한 것을 번복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나의 결정력은 순두부의 단호함과 가깝다. 방금정해 놓고 마음이 바뀌어 호들갑을 떤다. 음식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메뉴판을 들고서도 심지어 메뉴를 골라 시켜 놓고도 안절부절못하는 나다. 연애 시절 남편은 그런 나를 오해했다. '얘가 지금 일부러 이러나?' 억울하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러 거의 완벽한 <수연 사용 설명서>를 갖게 된 남편은 달라졌다. 아내의 결정을 곧이곧대로 신뢰하지 않는다. 한 술 더 떠서 "언제든 바꿔도 돼~"한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우리는 어제 오후 병원 대기실에서 분명 최선을 다해 37주 4일에 낳기로 정했다. 그랬으나... 그랬지만... 그러긴 했지만 말이지.... 이게 최선일까? 내가 뭔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면 어쩌나? 선택은 내가 했으니 결과는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이 선택이 과연 나의 선택이 맞는 걸까?
아니다. 나는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다.
출혈의 이유가 무엇인지,
한주 더 버텨서 38주에 낳으면 지금보다 얼마나 위험해지는 것인지,
한 달간 피가 비쳐도 만기 출산한 사례는 무엇인지,
37주 출산해서 생겨날 후유증이나 합병증은 없는 것인지,
대학병원에 전원 하여 낳는 것이 좋을지,
폐성숙 주사를 맞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지,
면밀히 확인하지 못한 것은 나의 잘못이다. 나는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남편은 날더러 모두(의사, 남편, 부모님)가 낳는 것이 맞다고 하는데도 부득부득 우겨 생겨날 문제는 내가 책임져야 할 텐데 그것이 부담되서라도 예정된 37주에 낳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역시 예상대로 핀잔 듣게 되었다.
그러나 어차피 일찍 낳아 문제가 생겨도 나는 똑같이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아기 옷 선물, 잘 태어나서 잘 입어보자!
다음날 우리는 대동단결하여 의견을 모았다. 다른 분만 병원에 방문해서 두 번째 소견을 받기로 했다. 진료실에서 하의를 탈의하는데 피가 주르륵 흘렀다. 출혈이 계속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두 번째 의사는 우리의 필요를 정성껏 들어주었다. 그리고 결론은 같았다. 하혈을 10일 이상 한다는 점이 이상하고, 출혈의 원인은 알 수 없으며, 이럴 경우에는 최대한 빠르게 분만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이번주 출산을 선생님도 권하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병원을 나오는 길, 무지하게 홀가분했다. 우리 선생님이 돌팔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소중한 아기와 복부를 맡겨야 하는데 돌팔이로 의심해서야 찜찜해서 도무지 맡길 수가 없지 않은가? 이제 마음 편히 수면마취로 잠들 수 있게 되었다.
가뜩이나 바쁜 남편이 온갖 스케줄을 37주 4일에 맞춰 놓은 탓에 혹시나 38주에 낳자고 하면 좀 미안할 뻔했다.
이제 마음 편히 (?)... 아니 마음은 편하지 않다. 내일모레 당장 배를 째는데. 흑흑.
임산부들이여
불안해도 좋다.
걱정해도 좋다.
의사의 소견에 끌려가지 말고 다만 적극적으로 다른 의견을 구하라!마음의 평화가 찾아올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