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대못 엔딩이 예정되어 있당께요
아기는 7일 뒤면 태어난 지 7개월이 된다.
앉혀놓으면 왠지 옆으로 고꾸라지고, 거북이보다 느린 탓에 '약 5초 후 저어기쯤 도착하겠구먼~.' 하며 여유 부릴날도 얼마 안 남았다. 생후 7개월부터는 다르다. 빠르게 기고, 서게 될 테니까.
힘이 장사라 자기만 한 인형도 쑤욱- 당겨 들고 바닥에 냅다 내리꽂는 탓에 애꿎은 바닥은 영문도 모르고 후드려 맞고 있다. 가죽소파를 손톱으로 벅벅 긁는데 조만간 구멍 날 것 같다. 흑흑
노키즈 존만 전전하던 나. 아기를 보면 얼른 일어나 자리를 옮기던 나. 아기가 귀엽다고 생각해 본 적 없던 나.
그런 내가 벌써 7개월째 아기와 동고동락 중이다. 놀랍게도 아기에 대해 손톱만큼의 부정적인 감정도 들지 않는다. 아기를 싫어했던 여자 맞나? 화도, 짜증도 나질 않는다. 그리 힘든지도 모르겠다.
2~3시간씩 쪽잠 자느라 다크서클이 얼굴에 태평양 파도처럼 번져도, 점심 밥그릇을 들었다 놨다, 식어빠진 밥알을 골라 먹어도 괜찮다. 우는 얼굴 짜증 내는 얼굴도 오로지 귀여운뿐이다. (나 딩크였던 여자 맞니?)
언니, 이제 곧 열받게 될 거야.
곧 학부형이 되는 친구가 말했다. 그 시절엔 힘든 일 없다고. 본인은 오늘 아침에도 화가 부글부글 끓어서 참느라 혼났다면서.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착한 아이로 엄마 눈치 잘 보면서 크다가, 십몇 년간 먹은 눈칫밥을 사춘기에 한방에 터뜨리고는 그 여파가 30살 초반까지 갔었다.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하며 방문을 쾅 닫고 지 혼자 큰 줄 알고 기고만장하여 길길이 날뛰었던 기억이 내 머릿속 한구석에 잘(?)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 막장 대못 엔딩이 틀림없이 예정되어 있다.
나는 부모 가슴에 대못 박아 너덜거리게 해 놓고 내 아기는 화낼 일 하나 없는 착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는 건 콩을 심어놓고 오트밀이 나오길 바라는 것과 같지 않을까? 조금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쥐톨만큼도 화나지 않는 지금을 온전히 즐길 생각이다.
아기는 오늘도 무지하게 귀여웠다. 이제는 다른 아기들도 귀엽다. 식당에 아기가 있으면 반가워하며 그대로 입장! 엘리베이터 안에 함께 탄 신생아를 들여다보며, "어머어머 귀여워."를 남발하는 40대 아줌마가 되었는데.... 이전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왤까?
시간은 훨씬 더 모자라고, 잠도 덜 자야 하고, 밥도 편안히 먹지 못한다.
이 쪼그만 꼬물이의 온갖 비위 맞춰주다 하루가 다 가는데도,
자유로왔던 딩크 시절보다 더 든든하고 풍요롭고, 편안하다.
그렇다.
만족스럽다.
그러니 앞으로 열받게 된다 해도 괜찮지 뭐.
"누가 낳아달랬어?" 하시면 전 바로 무릎 꿇을 자세가 되어 있다니까요?
안녕하세요!
이번주는 안 늦고 올려보았습니다.
짜잔!
네 뭐 그렇다는 겁니다. 히히
송수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