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설움 그런 얘기 아닙니다.
친구가 말했다. "나도 너희 집 같은 시골로 이사하고 싶어. 그러나 현실은 가능하지 않아. 난 아이들이 있다고...."
그런 점에서 자식이 없어 후련했었다.
언제든 프리랜서로 전향할 수 있는 어른 둘. 삶이 지루해지면 전셋집을 청산하고 어디론가 떠나면 그만이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벌면 되지. 어른 둘 갈 곳 없겠는가?
아기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집 문제가 걸렸다. 우리야 괜찮지만 아기는 안정된 주거 시설이 필요하다. 아기는 어느새 자라 어린이집에 갈 테지. 그러니 아기가 있는 집은 응당 어린이집 차가 방문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걸어서 갈 수 있으면 더 좋을 테고. 어쨌든 지금과 같은 시골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이다.
시골집에 이사오기 전, 도시의 집주인은 자신의 딸이 결혼해서 들어오기로 했다며 우리에게 전출을 요구했었다. 뭐- 우리도 그 집에서 2년 이상 살 생각 같은 건 없었으므로 흔쾌히 수락하고 별말 없이 이사했다. 그러나 아기와 함께 하는 삶에서 그런 퇴출 요구는 좀 곤란하다. 어른은 어딜 가도 쉽게 적응하겠으나 아기는 어떨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에 아기를 낳고 우리는 이사를 결정했다. 부모님이 있는 도시로 가기로 했다. 따스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4월이 되자 3개 층에 널려있던 딩크 부부의 잔해를 포장이사 트럭에 바리바리 실어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이사한 날 밤, 이삿짐 폭탄 한가운데 아기 침대가 마치 코 묻은 것 같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안에 4개월 된 아기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그 옆에 대충 펼쳐진 이불 위에 남편이 곯아떨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몇 달 만에 쓰는데도 종종 들러봐 주시고 읽어주시고 흔적 남겨주시는 구독자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지금 아기가 유모차에서 코코 낸내 자주는 덕에 이렇게 오래된 글감을 꺼내봅니다.
모두 끝장나게 행복하시길 바라요!
언제까지나.
항상.
줄기차게 자유만을 위해 살아온 송수연 코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