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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Jul 12. 2024

배신자여도 좋아

딩크족 배신자. 그거슨 바로 나.


40대 딩크 동지들이 있었다.


서로의 심심한 노년을 위해 '딩크'로 남자고 피를 나눈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늙어 적적할 때 무자녀 동지들이 놀아주겠지 하며 내심 속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 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나만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그중 배신자가 나타났으니 그게 나다.

그것도 가장 강력하게 딩크가 좋다고 주장하던 녀석. = 나


물론! 배신자도 할 말은 있다. 폐경 상담하러 갔다가 난데없이 아기집을 발견했는데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아기집이 아닐 테니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의사는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초음파 속 동그란 것들을 콕콕 집으며 친절히 못을 박아주었다.


아니오. 아기집 맞습니다.


그날이 우리 아기가 벌써 7주 되던 날이었다.

아아 나는 내 배 속에 아기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 7주 동안 얼마나 많은 풍류를 즐겼는가!




그로부터 30주가 훌쩍 흘러 드디어 37주 4일 차.


노쇠한 40대 딩크족이었던 여자의 뱃속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아기는 자기 몸무게 3킬로가 넘자마자 튀어나왔다. 그는 지금 태어난 지 180일이 지나 10kg에 육박하는 자이언트 베이비로 쑥쑥 자라나고 있다.


자이언트 베이비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하기로 하고...  




어느 날 만난 딩크 동지가 내게 말했다.


나는 언니가 딩크가 좋다고 하도 말해서 우리가 늙어서까지 함께 무자녀로 살 줄 알았어. 내심 언니가 있으니 늘어서도 같이 놀면 되겠다고 생각했었어.


세상에. 마상에.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게다가 나는 딩크가 얼마나 똑똑한 선택인지 마구 떠들고 다닌 장본인인이 아닌가! 우리 엄마조차도 나의 아기집이 오롯이 담긴 초음파 사진을 들고서 "이거 누구 거야?"를 다섯 번이나 물었다. (보통의 엄마들은 받자마자 눈치챈다.)




본의 아니게 배신자가 된 구딩크족 40대 엄마는 현재 너무나 (홀로) 행복하다. 우리 아기가 태어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었으니 배신자여도 상관없다.


지금껏 내 인생이 이렇게나 빛났던 적이 있었던가!

대체 맘대로 실컷 노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평생 출산을 안 하려고 했을까! 이렇게 재밌는걸 40살이 넘어서 알게 되다니 통탄할 지경이다.


배신자의 말로는 대못엔딩인걸 잘 알고 있다. 아기는 곧 자라서 "누가 낳아달랬어?" 하며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겠지. 후후. 그러나 그마저도 상관없다. 나는 바짝 엎드려서 미안하다고 사죄할 각오가 되어있으니까.


그렇다. 나는 행복한 배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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