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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May 17. 2024

아기는 곧 자라 버리니까 싫었다.




아기를 낳은 지 언 150일이 되었습니다.


신생아 시절의 터널을 지난 아기는 이제 지나가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면서 시비(?)의 소지를 만들고, 분유병의 생김새를 명확하게 인지해 그것이 가시권 안에 들어오는 순간 온몸을 비틀며 (갑자기) 배고파하며, 좀처럼 얌전히 누워있지 않습니다.


웃거나 울거나 하는 두 가지 감정을 주로 보였던 아기는 하나의 감정을 생생히 표현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바로 짜증입니다. 참으로 진상스런 짜증을 내면서 뒤집기를 합니다. 힘들면 안 하면 될 텐데 울면서까지 뒤집는 걸 보면 신체 발달을 차근차근 설계해 둔 조물주의 신비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스스로 바로 눕지 못하므로 고개를 바닥에 푹 박고서 깽깽거리는 것이 결론입니다.


어쨌든 아기는 말릴 새도 없이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양말 벗어던지고 뒤집기


부모는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40대 무자녀 부부로 노키즈존만 골라 다니던 제게는 저 말은 일원 반푼어치도 와닿지 않았죠. 바닥에 얌전히 누워 방긋방긋 웃는 것이 전부였던 귀여운 '아기'의 상태는 봄비 내리는 날의 벚꽃처럼 아무리 애원해도 가차 없이 흩날리듯 사라지고 갑자기 뒤집고 곧 우뚝 서더니,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늙은 부모의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겠지요.


시커먼 수염이 스멀스멀 차오르는 질풍노도의 청소년이 되면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하는 등의 차가운 팩트 체크로 가슴에 대못질을 할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죠. 결론은 가슴팍에 대못질인데 그걸 알면서도 선택한다면 셀프로 고문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러다 1년 전 용종을 떼러 산부인과에 갔고 아기집을 발견하여 1년 후인 지금 아기를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부모님 가슴에 수차례 대못을 박은 전력이 있는 사람입니다만, 그럼에도 딸을 사랑하여 항상 보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기를 키우며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애지중지 키우며 온갖 정이 들어버렸을 테니까요.


아기 엄마는 빛이 납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숭덩숭덩 빠져버린 머리를 질끈 묶고 다녀도 아름답습니다. 누가 뭐래도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그 아름다웠던 추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부모는 자녀에게 영원한 을의 위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기를 키우며 느끼고 있습니다.  


여전히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 40대 여자는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신기방기해하며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3개월이 되자 갑자기 소리를 내며 까르르 웃어 기절초풍 기쁘게 하더니 4개월이 되자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남들이 듣기에는 으어어 엄마,, 오 오옴 마아 정도의 옹알이겠지만 엄마의 귀에는 명확히 '엄마'라고 들리는 걸 어쩌겠어요? 5개월이 되자 왠지 벌떡 일어나 "어머니 전 이제 독립하겠습니다." 하며 뚜벅뚜벅 걸어 나갈 것 같은 기분입니다.


대못 박아도 좋으니까 별 탈없이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우리 아기야.



안녕하세요!

폐경인줄 알고 산부인과 갔다가 임신 출산까지 하게 된 딩크족 40대의 아기 키우는 이야기,

매주 금요일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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