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아기를 낳았지만 나라를 위해 낳은 것이 아니다. 애국하려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보면 황당함을 넘어 무식함에 열이 받는다. 오로지 애국하려고 아이를 낳는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는가?
정작 그토록 숭고한 애국심을 가진 본인은 과연 나라를 위해 아이를 낳았을까? "여보, 우리나라를 위해 아이 셋은 낳아야 하지 않겠어요?", "응당 그래야지요." 하면서 낳았느냔 말이다. 그 정도의 상식 수준이라면 결혼을 했으니 자식을 낳는 게 당연한 순서라고 여기며 일말의 숙고 없이 진행시켰을 거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하는 바이다. 언젠가 자녀에게 효도받을 생각을 마음에 품고서, '애들은 내버려 둬도 알아서 큰다'는 개뼈다귀 같은 주장을 했겠지.
다시 말하지만오로지나라를 위해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없다. 그게 이기적인가? 아니,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동물도 환경이 좋지 않으면 새끼를 낳지 않는다.
이 세상천지에 불안한 환경, 특히 주거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 몰라라 새끼를 낳는 동물은 없다.
어째서 그렇게 단세포적인 발상으로 이미 불안한 청년들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는지 모를 일이다. 40대인 기성세대로써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만일 본인이 그토록 나라를 위한다면 사람들에게 분노와 죄책감을 안겨줄게 아니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
무엇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어쩌다 이지경 이 꼴이 났는지도 설명하기 어렵다. 아주 오래전부터 서서히 서로를 갉아먹으며 잠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의 발전, 과도한 경쟁, 코로나 등의 유행성 바이러스, 남녀 혐오, 과거의 육아 방식, 저성장, 고용불안... 오로지 시청률에만 관심 있는 미디어 주제들 (금쪽이, 결혼지옥 등), 근래에는 집 값 하락을 막고 추가 상승을 부추기는 세력들까지.
자신을 위해 상대방을 '소비'시켜야 하는 사회. 물질만능주의에 속아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인지 경험하지 못한 지 너무 오래되어 버렸다. 돈이라면 부모, 형제도 버리라고 가볍게 조언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을까?
서점에는 온통 부자 되는 이야기, 혹은 집구석, 내향인, 우울증 관련 에세이.. 대체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실제로 부자가 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모두가 부자가 된다면 모두가 부자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단지 '부자'가 되기 위해서 가족도 친구도 행복도 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황당하다. 그러나 횟집 수조에 담긴 고등어처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현세대가 이전세대보다 훨씬 풍족하기 때문에 환경 탓하는 것은 변명이고 다만 개인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서라고 누군가 주장하는 걸 듣고 '환경'에는 개인의 가치관 변화도 포함한다고 답해주었다.
개인의 가치관 변화도 환경에 속한다. 자극이라는 촉매가 변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밥 굶지 않는 세대이기 때문에 괜찮은 건가?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나의 음식이 초라해 괜찮지 않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우니 괜찮은 건가? 가난하지만 희망이 있던 고성장 시대를 보낸 사람들이 현재 젊은이들이 가진 무기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서류 전형에서 탈락한 신입사원의 스펙이 연봉 8000 받는 과장의 스펙보다 높다. 예전엔 때 되면 자연히 대리되고 과장되던 시대였다. 도무지 존경할 수 없는, '라테'만 주야장천 마시는 선배 같지 않은 선배의 비효율적인 지시를 따를 바에야 아르바이트하며 살겠다고 선택하는 심정을 조금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모지리 기성세대들도 환경의 일부이다.
인간은 누구나 오늘보다 내일이 낫길 바란다.
지금은 월세를 살아도 언젠가 내 집에서 살 수 있길 바란다.
그저 먹고살기 운운하기에는 우리 젊은이들은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매슬로우의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을 위해 살도록 교육받은 세대. 만약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더 희망적이고, 더 열심히 하면 집 한 채 살 수 있다는 꿈을 품을 수 있다면 대체 누가 그런 결정을 하지 않겠는가?
안녕하세요!
폐경인줄 알고 산부인과 갔다가 임신 출산까지 하게 된 딩크족 40대의 아기 키우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