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이 10시간 같았다.
몇 년 전 나는 엄마와 단둘이 후쿠오카에 라면을 먹으러 갔었다. 무모하지만 신나는 일을 저지르고 싶은 날.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우리 모녀는 아침에 지갑과 핸드폰만을 간단히 챙겨 공항으로 떠났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자마자 라면을 한 그릇씩 먹고는 아무 곳이나 들어가 유유자적 돌아다니다가 저녁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집에 돌아왔었다.
딱히 일본 당일치기가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며칠 째 해가 내리쬐는 어느 날, 난데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뒤집에 쓰고 싶은 기분? 그냥 그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오후에는 서로의 마음 속 이야기에 감동스럽다가 저녁이 되어 날카로운 이야기를 조금 주고받았던 것 같다.
좋았지만 아쉬웠던 그런 '급작스런' 모녀 여행.
그로부터 몇 년 후, 지난주 금요일에 나는 다시 후쿠오카 당일치기에 도전했다. 멤버는 같다. 다만 11개월 아기 봄을 포함하여....(?) 적고 보니 많이 다른 것 같다?
엄마와 나, 그리고 11개월 아기와의 후쿠오카 당일치기. 나의 계획은 이랬다. 이전의 경험이 있으니 그와 비슷하게 하면 된다. 일본에 도착하면 점심으로 맛있는 것을 먹고 어딘가 유유자적 걸어 다니다가 멋들어진 곳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올 심산이었다.
계획은 특별히 짜지 않았다. 어차피 후쿠오카까지 고작 1시간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전직 항공기 승무원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던 많은 아기들을 기억한다. 우리 아기도 그와 비슷하게 밥 먹고 잘 놀다가 졸리면 아기바구니에서 자겠지 했다. 그러나....
우리 아기는 옆좌석 승객의 팔을 만지고 뒷좌석 승객과 손을 잡고 통로 너머의 승객과 까꿍놀이를 했다. 그 좁은 737 비행기에서 까르르 웃고 난리가 났다.
만지면 안 돼! 손내밀면 안돼!
아기 바구니에서 일어나면 안 돼!
늙은 엄마는 비 맞은 종이우산 마냥 힘 없이 너덜거리며 아기를 말렸으나 그는 그저 신났다. 주변 승객들은 너덜거리는 내가 가여웠는지 연신 괜찮다 하시며 나의 식사를 챙겨주시고 아기를 안아주시기도 했다. 아기를 낳은 이후에도 내 주변의 사람들은 여전히 다정하고 친절하구나. 난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봄이는 기질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굉장히 활발한 성격으로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잘 울지 않고 혹여나 울더라도 대개 10초를 넘기지 않는다. 낯도 가리지 않는 순한 기질의 아기이다. 그것이 독이 될 줄이야.
10시간 같은 1시간이었다.
여차저차 후쿠오카에 도착해 데판야끼 집에 가서 호르몬구이를 먹었다. 아기와 데판야끼라니 큰 도전이다. 염려가 무색하게 친절한 일본인들이 아기의자를 준비해 주시고 아기 식기까지 챙겨주셨다. 아기와 다니다보면 아기 용품을 챙겨주실 때 성은이 망극하여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여러분! 언젠가 아기가 커서 보답할거예요!" (???)
자연스레 예전의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 점심으로 돈코츠 라면. 아니 라멘을 먹었었지. 돼지뼈를 오랜 시간동안 고아 낸 국물에 뭉근하게 익혀진 돼지고기가 척 올라간 라멘. 정말 고소했었다. 엄마와 둘이었지만 자리가 없어 1인석에 각자 앉아서 먹었었다. 나이 든 성인 두 사람은 서로를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로지 라면의 맛에 집중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 그저 후후거리며 국물을 들이키고서 '아, 정말 맛있다. 오길 잘했어!'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11개월 아기와 합석한 순간, 음미할 여유 같은 건 없다. 그는 어른들에게 즐길 시간을 줄 생각이 없으니 사치 부리지 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그때부터 '이제는 정말로 다르구나.'하고 실감했다. 그렇다. 아기와 함께 하는 인생은 이전과 다르다. 아기는 두 사람의 삶에 끼워주는 깍두기 같은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주인이라고 할 정도로 완전히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쾌락, 욕망, 바람 같은 건 대부분 접어두어야 새로운 아기 주인님과 원활히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후쿠오카에서 호르몬 구이를 먹으며 대차게 실감했다.
그렇다.
나는 후쿠오카에서 앞으로의 내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상기했다.
43살에 생긴 새로운 역할. 나는 이제 아기 엄마가 되었다. 그동안의 삶과는 다르다. 바뀌었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앞으로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제대로 알게 된다.
자기 자리를 제대로 찾았을 때 편안하고 행복해지니까.
예전에 엄마와 둘이 갔었던 다자이후 신사의 주변 거리를 산책하려고 했으나 택시로 40분 거리라 가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아기 장난감 박물관이 있다는 쇼핑센터(라라포트)에 갔다. 아기가 자는 동안 푸드코트에 들려 게눈 감추듯 밥을 먹었다. 아기가 깨자 아기를 위한 공간에서 다른 아기들과 함께 놀았다. 저녁이 되자 건담쇼를 구경하고 공항에 돌아와 아기가 졸린 새를 틈타 공항 푸드코트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 (이게 뭐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아기는 좀 더 진상 고객으로,,
...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비행이 겨우 끝이 나서 비행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기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우이씨.
우리 모두는 기진맥진하여 마치 일주일쯤 여행한 기분이라고 고백하며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44세 아기엄마 송수연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글 쓸 때 행복한 저는 일하고 아기 키우고 나머지 시간엔 도파민의 세계로 도피하여 휴식을 취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곧 마음의(?) 여유가 생기겠지요?
비행기 옆좌석에 계셨던 아주머니가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아기가 18개월이 되면 정말로 편해진다고요. 정말 그런가요? ^^ 이런 기대를 슬며시 털어놓았더니 어떤 분이 18개월이 되면 18소리가 나온다고도 하던데 무엇이 진실인지....
편해지던 어쨌든 현재는 늦둥이 육아를 무지하게 즐기고 있기는 합니다.
다음 주에 또 만나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